
Illustrated by @thecminus
"나 물어볼 거 있어."
"밥 먹을 데부터 찾고."
"아니, 걸어가면서 얘기해."
"그래, 그럼. 뭔데?"
"너 저번에 말한 오래 좋아한 사람 있었잖아."
"아니, 그 얘기는 하지 말자고..."
"왜?"
"이제 지금 니가 제일 좋은데 굳이 뭐하러 걔 얘길 꺼내야 해? 걔 생각도 안날만큼 좋은데."
"난 그냥 궁금해. 예전의 니가."
"그럼 다른 과거를 물어봐."
"싫어. 니가 사랑했을 때 어땠는지 궁금해. 니 말처럼 오늘의 너도 너지만, 어제의 너도 너였고 그 순간들이 모여서 오늘의 니가 된 거잖아.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를 알고 싶어. 적어도 내가 품어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 아냐. 그리고 지금의 널 있게 한 사람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 얘기니까."
"휴..."
"정말 말 안 해줄 거야? 니가 진짜 싫으면 강요 안 할게."
"그걸 들어서 니가 얻는 게 뭔데? 우리가 얻는 건?"
"음.... 약간의 성취감과 정복감? 그리고 관계 개선?"
"뭔 소리야, 이건 또.... 도대체 이런 얘기를 해서 관계 개선은 왜 되는 건데?"
"니가 얘기를 하도 안 해주니까 내가 열불이 났어. 얘기를 해주면 좀 풀리겠지? 이 답답함이? 그런 의미에서?"
"입이 문제다.... 그래서 뭐가 궁금한데?"
"오 말해주는 거야?"
"아 빨리 물어봐."
"니가 걔 많이 좋아했다며. 근데 걔가 너 두 번 찼고. 걔가 널 왜 싫어했어?"
"겨우 그거야?"
"응."
"싫어했던 건 아니고, 그냥 안 좋아했던 거지. 나를 친구 이상으로 보지 못했으니까."
"그럼 친구 같아서 깐 거야?"
"그렇지. 지가 지 입으로 그렇게 말했으니까."
"걔 성격은 어땠어?"
"그냥 싸가지가 없었어."
"아 진짜? 나는?"
"넌 싸가지 있지."
"크크. 그렇구먼. 그래서 어떤 면에서 싸가지가 없었는데?"
"혼자 있기 싫어해서 날 곁에 둔 거?"
"그게 왜 싸가지랑 연동이 되는 건데..?"
"내가 생각하는 예의가 아니었어. 자기 빈 구멍 메꾸려고 남 마음대로 휘두르는 거 말이야. 물론 걔가 자기 상태를 몰랐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하는 말이지만."
"그걸론 부족한데..."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뭐 결혼 상대로 생각하니 자기는 어땠을지 생각했니, 그런 말들을 했으니까."
"여지 주면서 오히려 널 고통스럽게 했구나. 근데 걔가 왜 좋았던 거야? 니가 걔 상태에 대해서 몰랐을 리도 없고."
"사람 좋은 데는 이유 없어. 난 그때 걔 모든 게 좋았어, 그냥. 지금 널 보는 것처럼."
"이 말은 살짝 기분 상하는데..."
"거봐, 이런 얘기 해서 관계 개선이 될 리가 없다니까."
"그냥 걔보다 더 좋다고 해주면 안 되냐? 바보."
"당연히 지금 느끼는 내 감정은 더 좋지. 현재가 좋은 게 최고야. 내가 지금 뭐 과거에 살고 있냐. 그리고 내가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냐? 맨날 삐딱선 타."
"미안."
"또 새침해졌다. 저기 들어가자."
"잠깐만, 나 아직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뭔데, 또?"
"니가 예전에 걔가 성격이 더러웠다고 그랬잖아. 근데 항상 그러진 않았을 거 아냐? 항상 그랬으면 정신병자지."
"맞아. 근데 아마 항상 그랬어도 난 다가갔을걸."
"엥? 진짜? 그럼 내가 이제부터 맨날 까칠하게 굴어도 넌 나한테 아침밥 해줄 거야?"
"내가 널 계속 사랑한다면?"
"호오..."
"걔가 짜증 나는 일이 있어서 나한테 화를 낼 때, 쓸데없는 일로 투정 부릴 때에도 난 걔가 좋았어. 너무 좋아서 상처받고 싶었다 해야 하나. 아니, 상처받아도 좋았어."
"그때마다 무슨 생각 했어?"
"그냥 처음엔 마음이 너무 아팠지. 근데 그런 일들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걔가 진짜 미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근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 내가 그런 투정과 짜증을 나한테 부리는구나. 화도 나한테 내는구나.'했지."
"완전 호구 아냐."
"화가 나도, 짜증이 나도 낼 사람이 없는 걔가 나한테 기댈 수만 있다면 좋다는 생각이었지. 그 아이의 가시가 날 향해서 내가 좀 찔려도 걔 상처가 무뎌지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 거 있잖아, 왜. 가시 나 있는 장미를 꼭 한 번은 만지고 싶은 거. 아파도 다가가고 싶은 존재였지, 걔는. 원래 상처받은 애들이 칼을 쥐고 있는 법이거든. 참고로 지금 너한테도 다 적용되는 사안이야."
"기분 나쁨으로 하려 했다가 참았어."
"넌 얘와는 다른 사람이고 우리는 서로 사랑을 하고 있지. 그때의 사랑 모양하고는 아주 다르지. 중요한 건 난 걔를 놓았다는 거야. 또 난 너에게 최선을 다 할거고."
"호구 같아, 너.
"넌 내 호구 같은 면모가 좋아서 사귀는 거 아니냐."
"마찬가지로 나도 너 좋아하는 데 이유 없어."
"따라 하네."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그때의 걔보다 나 더 사랑해?"
"하.... 결국 그거야?"
이후 나는 말을 안 했고, 삐친 그녀와 나는 곱창집으로 들어갔다. 둘 다 옷을 좋아하는 우리는, 꽤 차려입고 만나면 고깃집으로 발길을 옮기지 않는다. 서로 싫어하는 냄새가 몸에 밸 걸 알면서도 들어간 이유는 그냥 곱창이 먹고 싶어서였다.
노란 기름이 튀어도 끝까지 잘 먹고 나온 우리는 손을 잡고 오래 걸었다. 지나가는 별들을 보며, 지나갔던 별들에 대해 오래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