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14년만에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앞으로 공연자의 삶을 살고싶기 때문에 더는 야매(!)로 떼울 수 없다고 생각해서다. 그러고보니 스무살때 대학 동기들과 밴드를 결성했었는데 그 이름이 야매밴드였다. 나는 출신부터 야매이긴 하다. 학원에 등록한지 한 달이 되었는데 매일 두 시간씩 연습하고 있다! 와. 나도 이렇게 칠 줄은 몰랐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삼십대 중반에 하루에 두 시간씩 뭔가에 투자한다는 것이 얼마나 사건인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작심삼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일단은 한달간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연습하는 곡이 많아서인지 두 시간이 그냥 훌쩍 간다. 그리고 학원을 나올 때면 뭔가 뿌듯하다. 오늘은 잉여인간이 아니구나.
뭐 하나에 미쳐봤어! 라고 말할 때마다 스무살의 피아노가 생각난다. 미대 진학해서 그림은 안 그리고 동네 피아노 등록해서 하루에 최소 5시간씩 쳐댔던 시기가 있었다. 미대 옆에는 음대 건물이 있었고 지하에는 피아노 연습실이 있었는데 나는 그 곳에서 살았다. 이듬 해에 음대 복도를 '자연스럽게' 걸어가는데 저 멀리서 피아노과 신입생이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이라고 내게 90도로 인사를 건넨 적도 있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뭐라고 했게. "연습 열심히 해. 대학 왔다고 너무 놀지는 말고." "네 선배님!" .... 나 그때 체르니 100 치고 있었다. 찡긋.
그때 다녔던 피아노 학원 원장 선생님은 중후한 중년 남성이었는데, 레슨 중에 "잠깐 나와볼래?" 하고 들려주는 그의 연주는 정말 끝내줬다.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없는 그 조그마한 공간에서 음들이 울려퍼질때 나는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그 유명하다는 에브게니 키신의 독주회도 다녀온 적이 있지만, 피아노를 가장 감동적으로 감상하는 방법은 연주자의 '바로 옆에서!' 듣는 것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피아노를 오래 쳐온 사람들은 건반 위에서의 손가락의 움직임이 마치 물수제비처럼 가볍고 산뜻하다. 그것과 비교하면 내 손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로 건반 위를 움직이고 있다.
수업이 끝나면 신입생답게 술은 안 먹고 매일 피아노학원으로 직행했던 나에게(술은 고등학교때 하도 많이 먹어서 흥미가 없었음) 동기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묻곤 했다. "너 여자 꼬시려고 피아노 배우냐?" 그때는 정말 1%도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박신양이 TV드라마에서 문이 열리네요~ 라며 한동안 대유행했던 피아노 프로포즈를 보고 난 이후에야 뭔가 결심이 섰다. 군인 때 휴가를 나와서 짝사랑하던 친구를 데리고 종로 어느 피아노 까페에 들어갔다. 나는 쇼팽 녹턴을 쳤다. 아, 그렇게 떨릴 수가. 까페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나는 연주를 시작했다. 아무도 안 듣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연주가 끝나고 나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이 정도면 게임 끝 아닌가? 라고 거만한 표정으로 우리 테이블로 걸어간 나에게 그 아이가 했던 외마디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수고했어."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애기야 가자, 라는 대사를 준비하고 있던 나는 모자를 푹 눌러썼다. 그래, 그 모자. 생각해보니 그 우스꽝스러운 밤색 모자가 문제였어.
여튼, 피아노에 대한 열정이 절정으로 향해가던 중에 군대를 갔다. 그때 1년간의 진도가 얼마나 급속도였냐면 바이엘 -> 체르니100 -> 유키구라모토 -> 쇼팽녹턴2번 -> 무려 리스트의 사랑의 꿈!이었으니까. 아우. 그때 군대만 안 갔어도 지금쯤 쇼팽 에튀드를 치고 있을지 누가 알어!? 아무튼, 훈련소에서 썼던 일기장을 보면 온통 피아노 이야기 뿐이다. 모두가 밤마다 애인을 그리워할 때 나는 오로지 피아노만 생각했다. 유격 훈련을 하며 운동장에서 먼지를 가득 먹을 때에도 드뷔시의 <달빛> 첫 마디가 귓속에 계속 맴돌았다. 무신론자이지만 오로지 피아노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교회를 택했다. 그걸로도 부족해서 성가대까지 지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가대 연습이 끝나고 청소 시간이었다. 피아노가 있는 조그만 방이 있었다. 무인도에 표류해 한달 동안 굶다가 진수성찬을 발견한 짐승처럼, 나는 찰나의 순간 방문을 걸어잠그고 피아노 건반을 약 20초 정도 만질 수 있었다. 그때의 황홀감을 잊을 수 없다.
비행기만 보고 살 줄 알고 지원했던 공군이었는데 정작 2년간 생활할 자대 배치는 산 속이었다. 하늘 위로 전투기가 지나가면 우리는 우와.. 전투기 존내 빠르네.. 라고 감탄하다가, 우리 공군이잖아!? 라고 정체성을 서둘러 자각하곤 했었다. 전체 인원이 100명도 안되는 가좆같은 분위기었고 거기서 온갖 군상들을 다 만났지만 피아노 치는 사람은 1명밖에 없었다. 그 조그만 공동체에도 교회는 있었고, 교회가 있다는 것은 그 안에 피아노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유일하게 피아노 치는 1명은 전역을 앞둔 병장이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그 병장에게 반주법을 1시간동안 전수받고(오쟁, 잘 들어! C코드는 도,미,솔 이야. 오케이?) 2년간 교회에서 반주를 맡았다. 순수하게 4비트로만 연주했지만 어쨌든 내 반주에 맞춰 사람들이 매주 노래를 부르는 것이 참 신기하더라. 이어지는 목사의 설교는 지루했고, 병사들은 의자에 앉아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적어도 이 교회에서 주님은 목사의 설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피아노 반주 속에 존재한다고. 낄낄낄... 군대 이야기 끝. 휴. 아니, 하나만 더! 전역하기 전 9개월동안 나는 무려 '지뢰제거반'에 차출되어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파견 생활을 했다. 그때 생명수당이라고 10만원..ㅋㅋㅋㅋ을 더 줬는데 나는 병장 월급과 생명수당을 차곡차곡 모아 전역 후에 10년 된 중고 야마하 업라이트 피아노를 내 방에 들일 수 있었다.
전역하고나서는 어쩐지 피아노에 대한 예전의 열정이 다시 불러오기 되지 않더라. 찔금찔금 치다가 말기를 6년 정도. 최근에 피아노를 내 작업에 끌어들이고 나서야 다시 시동이 걸리고 있다. 예전에 어디선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삼지 말고 취미로 두라고 했던 글귀가 기억나는데 나는 반대로 말하고 싶다. 직업으로 삼아야 취미가 롱런하는 것이라고. 순간의 열정은 삶의 미묘한 환경 변화에도 금방 뒷전으로 밀려버리곤 하니까.
피아노 연습 이외에 굉장히 오랜만에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 좋은 점은, 갈 곳이 생겼다는 것이다. 자택근무를 하는 프리랜서나 각종 백수들은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이다. 아 나도 어디론가 정기적으로 갈 곳이 생겼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반갑다. 학원을 끝나고 세종대로 사거리를 막 퇴근한 직장인들과 섞여 걸을 때면 (나는 이 길을 좋아한다), 나도 외딴 섬에 표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도시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 이유가 결정적인지도 모르겠다.
간만에 주절주절 길게도 썼다. 누가 읽을까 싶지만 ㅎ
나도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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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와 대단하시네요!
저도 해야지 해야지 했던것들을 @thelump님처럼 실천에 옮겨야 겠네요
이 정도면 전생에 피아노와 무슨 인연이 있는 게 아닐까요. '피아노에 미쳐버린' 주인공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멋있습니다!
전생에 최소 멜로디언 정도는 되었던 것 같습니다.
넘나 재밌네요 ㅋㅋ
감사합니다 텍슨님..:)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더럼프님이 연습하시는 곡을 꼭 들어보고 싶어졌어요.^^ 응원합니다.
학원에서는 현재 반주법 기초 배우고 있어요. 야매가 아닌 정식으로 ..ㅋㅋ 뭔가 그럴싸해지면(?) 요기에다가도 한번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가의 응원! 특히 힘이 뿜뿜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