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위치로서 눈치를 보지 않는 위치를 확보하는 일, 결제 사업자들에게 암호화폐는 결제 원천사로서의 지위를 부여한다, 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결제 업체가 암호화폐를 선호하는 이유는 시대의 대세를 따라가기보다는 다른 곳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암호화폐가 결제사업에 미치는 영향 ①
이번 칼럼을 포함해 앞으로 3회에 걸쳐 암호화폐가 결제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결제 원천사, 가맹점, 그리고 사용자 관점에서 논의한다. 이번 회에는 결제 관련 사업자들이 암호화폐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를 함께 논의해 보고자 한다. 특히 국내 결제사업자인 다날에서 페이 코인을 출시한 만큼 이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할 예정이다. 논의에 앞서 필자는 해당 기업과 전혀 관련이 없으며 향후 전망은 전적으로 필자가 추측하거나 독립적으로 생각한 것임을 미리 밝힌다.
다날에서 페이 프로토콜을 출시한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대체 왜 결제 사업자가 '암호화폐'를 만들겠다고 하는 거지?"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전자결제(PG)와 부가가치통신망(VAN)을 간단하게라도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 PG? VAN? 그게 뭐하는 곳인데?
결제사업자들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PG와 VAN은 그 경계가 근래 들어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지만 논의의 편의를 위해 간단히 나눠보겠다. PG는 주로 온라인에서 결제를 진행할 때 보게 되는 '결제' 창을 제공하고 가맹점들에게 '정산' 업무를 대행해 주는 서비스다. VAN은 이러한 PG 뒷단에 붙어 카드사와 PG사 간 거래를 연결해주고 오프라인에서는 PG 없이 가맹점과 카드사 사이에서 결제를 '중계'해 주는 서비스다. 다만 이때 VAN사들은 PG와 달리 '정산' 업무를 대행해 주지 않는다.
◆결제사업자의 핵심 기능 3가지
여기서 기억해야 하는 핵심 요소는 결제, 정산, 중계 3가지다. 첫 번째, PG사나 VAN사들은 사용자들이 가맹점에서 보다 쉽고 안전하게 결제할 수 있도록 결제창이나 포스기(POS)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결제 요청·결제 정보들이 안전하게 오갈 수 있도록 암호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두 번째, PG·VAN사들은 가맹점들이 이러한 결제 건들을 통해서 정확한 금액을 받을 수 있도록 정산을 지원한다. PG는 정산 기능이 VAN사보다 더 강조된 형태다. VAN 역시 매입이라는 절차를 통해 정산을 돕지만 PG는 8개 카드사에서 받을 돈을 PG사가 직접 관리해 가맹점에 제공해주는 반면 VAN사는 8개 카드사와 가맹점이 각각 알아서 정산을 하도록 한다는 차이가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PG사와 VAN사들은 사용자와 가맹점, 가맹점과 원천사 등 여러 주체들 사이에서 거래와 자금을 중계하는 존재다. 직접 연결하는 형태가 아닌 것이다. 실제로 신용카드 결제와 정산 과정에는 최소 8개 이상 사업자가 참여하며 그 연동 형태나 계약에 따라서 더 복잡할 때도 많다.
◆중계 사업자의 한계
그런데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하는 역할에 비해서 굉장히 취약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근본적으로 결제를 중계만 할 뿐 서비스의 원천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천은 말 그대로 결제의 원천을 지칭하는 것으로, 국내 8개 신용카드사를 대표적인 해당 사업자로 들 수 있다.
이렇다 보니 PG와 VAN사들은 그들만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사업 초창기에는 단순히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고 안정성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충분했지만 기술 발달과 함께 경쟁이 심화된 현시점에서는 타사 대비 경쟁력 확보가 어려워진 것이다. PG사는 핵심 경쟁력이 단순히 낮은 수수료 확보에 머물게 되면서 사실상 치킨 게임에 접어든 지 오래다. VAN사들은 VAN 리베이트가 합법이던 시절까지는 리베이트 규모가 핵심 경쟁력이었으나 리베이트가 금지된 현재에는 서비스 안정성과 같은 모호한 가치만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이에 따라 PG사와 VAN사들은 카드사와 같은 결제 원천사들과 관계에서 철저하게 '을' 위치에 있다. 소비자, 그리고 가맹점들은 8개 카드사를 전부 연동시켜 주길 원하기 때문에 PG·VAN사로서는 8개 카드사 모두와 연동하는 게 필수불가결하지만 가맹점과 소비자들로서는 어느 PG·VAN사를 선택하든 서비스 차이를 체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고착화하면서 PG·VAN사들은 서비스 운영 비용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중계 수수료는 다양한 명목으로 계속 인하돼 수익이 급감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 때문에 결제 사업자들은 '을' 위치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결제 원천으로 기능하고자 계속해서노력 중이다. 하지만 기존 신용카드 업계도 이미 레드오션인 데다 간편결제 시장의 성장과 함께 등장한 네이버 페이, 카카오 페이, 그리고 스마일 페이 등으로 결제 사업자들은 더욱 설 곳을 잃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암호화폐'는 결제사업자들에게는 '을'을 벗어날 새로운 기회로 여겼을 것이다. 특히나 휴대폰 결제 서비스라는 새로운 결제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는 다날로서는 더욱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 새로운 결제 수단, 새로운 결제 원천, 새로운 기회
결제 사업자에게 있어 암호화폐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출처=셔터스톡
▲ 결제 사업자에게 있어 암호화폐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출처=셔터스톡
암호화폐의 등장은 결제사업자들로 하여금 이전과는 새로운 결제 수단이 등장했음을 의미했으며 동시에 스스로가 원천사가 될 수 있다는 꿈을 품게 해줬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암호화폐가 신용카드 결제를 대체한다는 얘기인 것인가?"
이 질문에는 어디까지나 필자 의견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싶다. 이보다 여러 결제 수단 중 하나로 자리 잡는 상황을 예측하며 동시에 현재 이 분야에 뛰어든 결제사업자들도 신용카드를 대체하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으리라 예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제사업자가 암호화폐라는 새로운 결제 수단의 원천 사업자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은 3가지 이유에 기인한다.
첫 번째는 경쟁력 확보다. 앞서 간단하게 설명한 것처럼 현재 결제사업자들은 사업 그 자체의 차별화 포인트 없이 단순 영업력이나 수수료 경쟁력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암호화폐라는 새로운 결제 수단의 원천사업자가 된다는 것은 타 사업자 대비 차별화되는 경쟁력을 확보하게 됨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경쟁력은 향후 암호화폐가 실제 결제 현장에서 얼마나 많이 사용되는지에 따라 매우 달라질 것이다.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수도 혹은 정말 게임 체인저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거의 동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 사이에서 어떤 특정 업체만 가능한 서비스가 있다면 이는 분명히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과거 페이코가 사업을 확대해 나가던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냥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되는데 왜 페이코를 사용하겠어? 앱을 하나 더 깔아야 되는데 사용자들이 쓸까? 하지만 결제사업자로서 PG와 VAN을 겸업하는 KCP는 페이코를 뚝심있게 밀고 나갔고 현재는 페이코가 KCP의 강력한 무기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암호화폐가 페이코처럼 결제 업계 주류가 될지는 향후 지켜봐야 할 문제지만 차별화 요소로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다날은 휴대폰 결제서비스 영역에서 보여주고 있는 확고한 시장점유율과 달리 PG 시장에서는 아쉬운 성적을 거두고 있는 만큼 반전의 계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자금력 확보다. 결제사업자 처지에서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이를 결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원천사가 된다면 대규모 자금을 상대적으로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 작년 초 유행했던 리버스 코인공개(ICO)를 통해 결제 사업자 외에도 많은 회사들이 상당한 자금을 코인 발행 대가로 획득했다.
대다수 업체들은 각 회사 암호화폐를 미리 구매한다면 훗날 더 큰 가치로 다양한 자사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 선전했지만 현실은 참담한 수준이다. 다날의 페이코인 또한 이러한 비판을 피해가긴 어렵다고 보인다. 특히나 페이코인은 결제수단으로 활용을 목표했던 만큼 초기 440원을 돌파했던 코인 가격이 현재 100원대에서 머무르는 것은 가격 하락 측면에서나 가격 변동 측면에서나 모두 아쉬운 부분이다.
근래에는 이러한 코인의 변동성을 회피하고자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대두된 상황인데 이 부분은 추후 암호화폐 결제에 대해 가맹점 관점에서 논의할 때 보다 상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더불어 가격 하락과 변동성을 차치하고 가격이 고정된 형태의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때에도 암호화폐를 발행한 업체로서는 이득이 있다. 현재 다양한 간편결제 업체들이 선불 충전금을 통해 얻고 있는 이득과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국내 간편 결제 업체들이 보유한 충전금 잔액은 1조5000억원을 넘었다. 이 자금을 각 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연 이율 1% 기준으로 보면 150억원의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암호화폐를 발행하여 운영하는 것 또한 이와 유사한, 아니 그보다 큰 이득을 보유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간편결제 기업들은 현재 미상환 잔액 대비 자기자본 비율을 20% 이상 유지해야 하며 10% 이상 안전자산을 보유해야 하지만 암호화폐 발행 기업들은 이러한 규정조차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글로벌 시장 진출이다. 국내에서는 어느 가맹점에서나 어떤 결제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너무나도 편리하고 안전하게 사용하지만 외국에 나가 보면 결제가 생각보다 불편한 곳들이 매우 많다.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다소 열위에 속한 나라들은 물론이고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이나 미국, 서유럽 등에서도 결제가 불편한 때가 많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타 국가에 비해 보다 발달한 국내 결제 시스템을 기반으로 외국 진출을 추진했던 결제 사업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결제라는 것은 단순히 시스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의 금융 시스템은 물론이고 법적인 이슈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보니 대부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제이티넷이나 코밴, 그리고 나이스정보통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VAN사들이 외국 진출을 모색했으나 나이스정보통신을 제외하고는 그 경과가 좋지 못한 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암호화폐는 글로벌 진출에 교두보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진출하고자 하는 국가에서 암호화폐를 허용하기만 한다면 사업자가 발행한 암호화폐를 바탕으로 보다 손쉽게 결제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감한 도전, 그러나 아직은…
결제 사업자들에게 암호화폐는 아직 시작 단계에 있는, 위험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출처=셔터스톡
▲ 결제 사업자들에게 암호화폐는 아직 시작 단계에 있는, 위험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출처=셔터스톡
블록체인, 그리고 암호화폐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많은 기업들의 백서나 로드맵을 보면 이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세상의 부조리를, 그리고 비효율을 어떻게 바꿔 나갈지 일장 연설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대다수 프로젝트들은 사업을 앞으로 어떻게 할지, 돈을 어떻게 벌지도 모호한 말과 어려운 용어들로 슬쩍 넘어간다.
그런데 사실 블록체인 업계도 결국은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다. 이 사업을 통해 좋은 일을 하겠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블록체인에, 암호화폐 사업에 왜 뛰어드는지가 명확해야 한다. 기존 사업보다 무엇이 더 좋아서 이 사업을 하는지, 이 사업을 하는 게 왜 저 기업에 이득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에서 이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지 등 이러한 점들이 명확하고 실현 가능성이 있을 때 비로소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암호화폐와 가장 관련성이 높은 결제사업 분야에서 기존 사업자들이 암호화폐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를 필자 나름의 시각으로 분석해봤다. 하지만 국내 대표적 사례인 다날을 볼 때 아직 많은 부분에서 시작 단계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암호화폐를 통한 결제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며 이를 통한 글로벌 진출도 역시나 아직은 아쉬운 수준이다.
앞으로 가맹점 관점에서 암호화폐 도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점, 그리고 반대로 가맹점들이 암호화폐를 수용하기 어려운 점과 사용자 관점에서 바라보는 암호화폐 결제 등을 논의할 것이다. 결제 원천사, 가맹점, 그리고 각 사용자 관점에서 바라보는 암호화폐를 통해 해당 사안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 폭이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박정현 LG유플러스 VAN사업담당 매니저]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0/01/27654/
저자는 '지급'에 해당하는 내용을 '결제'라고 썼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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