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소영현은 “문학 출판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출판사의 공모가 아니라면 신춘문예를 통해 전문 비평가가 되고자 하는 공모자의 수는 점차 줄고 있다”(각주 16 : 소영현, 위의 책, 52쪽.)고 주장하면서 이 상황이 비평가가 실질적으로 출판사에 종속되어 호객행위에 나선 수동적 리뷰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한다. 비평가의 배출이 특정 학교에 집중되는 것이 비평이 학계에 종속되는 현실을 보여주는 명확한 지표라면 문학 출판사 공모로의 집중 현상은 출판자본에 비평이 종속되는 양상을 보여주는 근거로 제시된 셈이다. 하지만 실제 등단제도가 작동하는 모습은 소영현의 지적과는 상당히 다르다. 신춘문예나 신인문학상에서 응모자의 수를 정확하게 밝히는 경우는 많지 않으며 일관성도 없다. 소설이나 시 부분에서 대부분 응모자의 수와 응모 편수를 밝히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비평부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심사를 진행하는 심사위원 개인의 재량에 따라 심사평을 통해서 공개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같은 문학상의 같은 심사위원이라고 하더라도 일관된 원칙은 없다. 유일하게 공개의 원칙이 명확한 것은 중앙신인문학상으로 전체 응모작의 편수는 밝히지 않지만 예심을 통과한 8~10명 가량의 응모자의 이름과 작품명을 공개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중앙일보》에서 운영하는 중앙신인문학상의 예심통과자 규모가 상당수 문예지의 응모 인원보다 많다는 점이다. 응모자의 수가 적은 문예지는 세계사의 『작가세계』처럼 출판시장에서의 영향력이 크지 않은 중소출판사에서 운영한 것도 있지만 민음사처럼 대형 출판사가 운영한 『세계의 문학』도 응모자의 수는 비슷했다. 심지어 『현대문학』이나 『문학과 사회』처럼 문예지와 출판시장 양쪽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춘 경우에도 응모자의 수가 크게 낮았던 적이 있다. 출판사의 영향력과 응모자 수 사이의 상관관계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14개의 신춘문예와 신인문학상에서 응모자 인원수를 밝힌 경우는 전체 136회의 공모 중 50회에 불과하다. 거의 매년 응모자와 응모 편수를 표기하는 《경향신문》과『문학동네』의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응모자의 수를 잘 밝히지 않는다. 그래서 평균 경쟁률을 낸다고 해도 비교적 발표를 꾸준히 해온 사례가 과잉대표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결과는 상당히 흥미롭다. 평균 경쟁률은 21 대 1인데 신춘문예로 한정하면 26 대 1, 문예지 신인문학상은 18 대 1이다. 비평가 지망생들이 등단 매체로 출판사가 운영하는 문예지보다는 신춘문예를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문예지로서나 문학 출판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는 『문학동네』, 『문학과 사회』, 『창작과 비평』의 경우로 한정해보더라도 신춘문예에서 가장 많은 응모자가 몰리는 《경향신문》이나 《세계일보》에 비해서 낮은 편이다.(각주 17 : 세 개의 문예지 중 가장 응모자가 많은 『문학동네』가 평균 26명이고 『창작과 비평』이 22명, 가장 적은 『문학과 사회』는 평균 12명에 불과했다. 반면 《경향신문》은 평균 30명, 《세계일보》는 28명이었다. 이외에도 유일하게 8월에 응모를 받는 《중앙일보》의 경우 다른 곳에 비해서 예심 통과자 규모를 두 배 이상으로 유지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많은 응모자가 몰리고 있으리라 추정된다.) 최근 몇 년간의 경향을 보더라도 《경향신문》과 《세계일보》에 가장 많은 응모자가 몰리고 있으며 그 수가 줄어들기보다는 그대로 유지되거나 늘어났으며 문예지는 응모자 수가 증가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 수가 신춘문예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각주 18 : 2013~2017년으로 그 범위를 최근 5년간으로 한정했을 때 《경향신문》은 13년에 21명, 15년에 33명, 16년에 32명, 17년에 37명이었다. 《세계일보》는 13년에 22명, 14년에 36명, 16년에 36명, 17년에 34명이었다. 『문학동네』는 13년에 32명으로 가장 많고 14년에 24명, 15년에 26명, 16년에 25명, 17년에 25명이었다.『창작과 비평』은 13년에 14명, 14년에 22명, 16년에 24명, 17년에 25명이었다. 『문학과 사회』는 13년에 7명, 15년에 11명이었다. 소영현이 주장한 문예지 문학상으로 쏠림 현상보다는 선호도가 높은 신춘문예의 응모자 수 증가를 볼 수 있다.) 공개된 자료가 제한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신춘문예를 기피하고 출판사의 문예지로 응모자가 쏠리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많은 응모자가 몰리는 것은 《경향신문》과 《세계일보》의 신춘문예였다.
비평가 지망생들은 출판사가 운영하는 문예지보다 신춘문예에 더 몰리고 있다. 문예지의 신인문학상 공모가 대부분 한 달 이상의 간격으로 진행되는 데 반해 신춘문예는 연말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신춘문예로의 쏠림 현상은 심사위원들이 공개하는 응모자의 수를 통해 보이는 것보다 더 심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원인을 몇 가지 추정해볼 수 있는데 하나는 비평이 학계에 종속되는 경향이다. 비평이 학계에 종속되는 현실에서 대학에 비해 등단 지면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 인식되었을 수 있다. 상당수 비평가가 최종적으로 안착하는 장소가 대학이라는 점, 일부 학교에서 비평을 박사학위 취득 과정의 일부로 인식하는 경향 등을 고려한다면 등단지면 선택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이는 작품의 출판을 위해서 출판사와의 연결이 중요한 시인과 소설가와 달리 대다수가 비평집을 발간하지 않는 오늘날 비평가들의 경향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논문의 수로 정량화된 대학의 연구 평가에서 비평과 출판이 충분한 점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비평가들에게 출판사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작다.
다른 하나는 문예지 신인문학상이 신춘문예에 비해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점이다. 같은 기간 동안 신춘문예가 배출한 비평가의 수는 문예지 신인문학상을 통한 경우보다 두 배 이상이었다. 이는 신춘문예에 비해 문예지의 신인문학상 응모자의 수가 더 적었던 것도 한 이유이겠으나 문예지가 수상자를 잘 선정하지 않는 경향과 관련이 있다. 상대적으로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창작과 비평』이 예외적일 뿐 문예지들 대다수는 수상자를 잘 선정하지 않는다. 응모자의 수가 한 자릿수에 머물러 평가 자체가 어려웠던 상황도 있었으나 매회 20명 이상의 응모자들이 안정적으로 유지된 『문학동네』도 10년간 4명의 수상자를 선정했을 뿐이다. 『문학과 사회』는 2010~2014년까지 5년간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았고 『현대문학』은 최근 4년간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았다. 신인문학상을 운영하는 동안 단 한 명의 평론가만 배출한 『세계의 문학』과 같은 경우도 있었다. 문예지에서는 응모자 수가 보여주는 경쟁률보다 실제 수상 가능성이 훨씬 낮은 것이다. 이는 응모자들이 문예지를 기피하는 한 요인일 수 있다. 신춘문예와 문예지가 수상자를 선정하는 비율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이들이 각각 문단에 영향력을 끼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예지가 작품의 게재와 담론의 유통을 통해서 문단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데 반해 신춘문예는 신인 발굴을 통해서만 문단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문예지에 비해 신춘문예가 수상자 선정의 필요성이 훨씬 큰 것이다. 2012년 『문학과 사회』의 신인평론상 심사평은 이 차이를 잘 보여주는데, 심사평에서 응모작에 대한 평가를 간략하게 넘어간 뒤에 『문학과 사회』가 지향하는 비평의 목적과 방향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이들에게 개별 응모자의 역량이나 성과보다는 『문학과 사회』가 추구하는 문학적 가치의 재생산이 신인상 운영의 핵심적 목표다. 응모자 개인의 역량과 별개로 문예지의 문학적 지향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수상자를 선정할 이유가 없다. 이는 다른 문예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계에서의 위치가 더 중요한 응모자들로서는 당선 가능성이 더 높은 신춘문예를 더 선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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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장에 대한 비판적 논자들의 예상과 달리 비평가의 등단에서 출판사 쏠림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신춘문예가 가장 중요한 등단의 통로 기능하며 이 위상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비평가의 등단에서 주요 문예지나 대형 문학출판사의 영향력은 크게 작용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문예지와 대형 문학출판사들의 영향력은 대학만큼이나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으나 그 방식이 예상과는 다른 모습일 뿐이다. 이들이 등단에 끼치는 영향력은 소속대학이나 등단지면 같이 쉽게 확인되는 요소가 아니라 비평의 내용에서 확인된다.
2008~2017년 사이 비평 등단작들은 총 96편(각주 19 : 《동아일보》는 80매 분량의 장평과 15매 내외의 단평을 함께 받았었는데 이 글의 분석 대상인 97편에는 소설 단평 3편이 포함되어있다. )으로 이중 소설을 대상으로 한 것이 61편, 시를 대상으로 한 것이 32편, 메타 비평이 3편이다. 비평의 종류는 작가론이 58편, 주제론이 25편, 작품론이 13편이었다. 비평의 대상으로 가장 많이 다루어진 소설가는 황정은이며 시인은 김행숙과 진은영이었다.(각주 20 : 소설가를 다룬 평론의 수는 황정은이 7편, 한강이 6편, 김연수, 김애란, 편혜영이 각각 5편, 김사과가 4편, 김중혁, 배수아가 3편, 김숨, 김훈, 박민규, 박솔뫼, 윤성희, 윤이형, 이장욱, 조경란, 조해진, 천운영, 최제훈, 한유주가 2편, 강형숙, 권여선, 김엄지, 김영하, 박형서, 백가흠, 이기호, 정용준, 정이현, 조갑상, 최은영, 황석영이 1편씩이다. 시인은 김행숙, 진은영이 5편, 심보선, 황병숭이 3편, 강정, 김민정, 김선우, 송경동, 이근화, 이현승, 장이지, 정재학이 2편, 고두현, 김경주, 김기택, 김미월, 김사인, 김수영, 김승일, 문동만, 박상수, 박판식, 백무산, 신해욱, 오규원, 유홍준, 이기인, 이병률, 이성복, 이수명, 이영광, 이이체, 이제니, 이준규, 장석원, 정소현, 정찬, 정한아, 조연호, 최동호, 최종천, 하재연, 함기석, 허수경, 황규관, 황인찬이 1편씩이다. 비평가가 주텍스트로 다뤄진 경우는 김현이 2편, 강동호, 권혁웅, 신형철, 조정환, 함돈균이 1편씩이다.) 시 비평에 비해서 소설 비평이 주요 작가들에 집중되는 경향이 훨씬 강했는데, 단평을 포함해서 총 61편의 소설 비평에서 분석의 대상이 된 작가는 32명에 불과했다. 반면에 시 비평은 32편에 불과했지만 분석의 대상이 된 시인의 수는 47명으로 오히려 소설가보다 그 수가 많았는데, 한 작가가 여러 글에서 반복적으로 분석되는 경향도 훨씬 적었다.(각주 21 : 61편의 소설 비평에서 다뤄진 소설가는 32명에 불과하지만 작가가 다루어진 횟수는 74회에 달해서 평균적으로 한 작가가 2편 이상의 비평에서 분석되었던 셈이다. 반면 시 비평에서는 47명의 시인을 67회 다루었다. 시 비평 쪽이 더 다양하게 분석이 이루어진 것이다.) 소설 비평의 사례를 본다면 신춘문예에서 비평가들은 새로운 작가나 문단에서 저평가된 작가들보다는 이미 상당한 문학적 평가가 이루어지고 주목받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작업을 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소설 비평이 그 편수가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소수의 작가들에 논의가 집중 되어 있는 것이다. 시 비평의 경우 상대적으로 다양한 시인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지만 문단의 평가에 따른 편중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평들에서 주요 문예지와 출판사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비평들에서는 문예지에 게재된 글이나 작품보다는 출판된 단행본을 위주로 인용하는 경향이 크게 두드러진다. 수상작들에서 분석된 작품의 출처를 정리해보면 총 265종의 도서가 354회에 걸쳐서 사용되었는데 이 중에 문예지는 총 51종이 57회에 걸쳐 인용되었다. 단행본 형태로 이미 묶여있는 작품들이 주로 분석대상이 되어 작품을 접하는 통로로서의 문예지의 역할이 축소되는 경향이 수상작들에서도 나타난다. 그런데 문예지가 인용되는 경향을 보면 몇 개 주요 문예지에 집중되어 있다. 『창작과 비평』이 13회로 가장 많이 인용되었고『문학동네』 9회, 『문학과 사회』가 7회,『현대문학』이 6회 인용되었다.(각주 22 :이외의 문예지로는 『자음과 모음』이 4회, 『21세기 문학』, 『작가세계』, 『실천문학』이 각 3회, 『문학사상』, 『세계의 문학』이 2회, 『문예중앙』, 『문학들』, 『시인세계』, 『아시아』, 『한국문학』이 1회씩이다.) 각 문예지들이 문단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수상작들에서 거의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주요 문예지들을 중심으로 주목받는 작가들의 원고 게재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과 관련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이는 주요 문예지의 감식안을 통해서 선별된 작가들로 비평가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문예지를 통해서 작품을 접하는 경우가 적을지라도 문예지가 작가를 선별하여 소개하는 영향력 자체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문예지보다 단행본 인용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수상작들에서 가장 많은 도서가 인용된 출판사는 문학과지성사다. 문예지 『문학과 사회』를 포함해서 총 72종의 도서가 인용되었다. 창비는 59종이 86회, 문학동네는 45종이 60회, 민음사는 19종이 26회, 자음과모음은 11종이 13회 인용되었다. 현대문학은 7종이 7회 인용되었는데 특이한 점은 전부 문예지와 문학상 작품집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현대문학이 문예지 이외에 한국문학 출판시장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은 점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도서 인용은 한국문학 출판시장에서 각 출판사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중소출판사나 한국문학 출판시장에 집중하지 않는 출판사들의 경우 대부분 잡지나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인용할 뿐이다.(각주 23 : 인용된 도서의 수는 랜덤하우스가 5종, 실천문학이 5종, 세계사가 4종, 21세기 문학이 3종, 갈무리 3종, 천년의 시작이 3종, 문예중앙이 2종, 문학사상이 2종, 산지니가 2종, 생각의 나무가 2종, 서정시학이 2종, 열림원이 2종, 해토가 2종, 문학나무, 문학들, 문학세계사, 문학수첩, 삶창, 세계일보, 시와시학사, 아시아, 예담, 중앙북스, 중앙일보, 푸른사상, 학고재, 한계레출판사, 한국문학사가 각 1종씩이다.) 한국문학 출판시장에서 각 출판사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각 장르별 인용 양상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소설의 경우 문학과지성사가 가장 많은 32종이 인용되었지만 이는 문학동네의 28종이나 창비의 27종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소설은 총 112종이 인용되었는데 이들 세 개의 출판사에서 출간된 도서가 전체의 70%가 넘는 87종이다. 이외에 자음과모음에서 발행된 7종과 민음사에서 발행된 6종을 합하면 100종으로 이들 5개 출판사에서 발행된 소설이 전체의 90프로에 달한다. 한국문학 출판시장 중 소설 장르에서 가장 강력한 출판사 다섯 곳의 영향력이 비평에 그대로 투사된다. 시의 경우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문지시선을 발행하는 문학과 지성사다. 전체 83종 중 문학과지성사의 시집은 31권이다. 전체의 40%에 육박하는 양인데 소설에서 어떤 출판사도 30% 이상을 점유하지 못했었다는 걸 생각하면 시 비평에서 문학과지성사의 영향력은 독보적이다. 그 뒤를 이어 창비가 19종, 민음사가 12종, 문학동네가 6종 순이다. 시 장르에서 후발주자인 문학동네의 위치를 보여주는 결과였다. 이처럼 시 비평도 출판시장에서 출판사들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수상작들의 도서 인용 경향은 한국문학 출판시장의 축소판이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수상작들의 양상을 보면 기성의 문단제도와 문학출판시장의 재생산이라는 기능에 충실하다. 비평의 대상이 되는 작가들은 문단에서 이미 주목받고 그 평가가 누적된 이들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문학적 권위와 상업적 판매의 역량을 갖춘 소수 대형 출판사의 편집진에 의해서 검증된 작품들에 관심이 쏠려 있다. 이러한 양상은 안타깝게도 출판사나 문예지가 끼친 동질화의 압력 때문이라고 설명하기 어렵다. 특정 문예지나 출판사에서 출판된 작품이나 등단한 작가를 대상으로 한 비평만을 선별한 경향은 나타나지 않으며(각주 24 : 창비신인평론상 수상에서 가장 많은 작품이 다루어진 출판사는 문학과지성사였으며, 『문학과 사회』의 신인상에서는 창비에서 출판된 작품이 가장 많이 다루어졌다. 『문학동네』는 자사의 책이 가장 많이 인용되었지만 창비나 문학과지성사의 도서가 쓰인 사례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특히 비평가 대부분을 배출한 신춘문예에서의 작가, 출판사 쏠림 현상과 문예지 신인상에서의 양상은 아무런 차이가 나지 않는다.(수상작 이외에 후보작들도 선별한 작가와 작품은 거의 유사하다.) 신인 비평가들은 기성의 문학장의 한계를 확장해내는 대신에 이미 검증된 작가와 작품을 통해서 자신들의 문학적 역량을 증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등단제도가 일종의 구성원 선발 작업으로서 특정한 문학적 지향을 가진 또 다른 내부자를 생산하는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음을 감안하더라도 수상작들의 이러한 경향은 비판적으로 검토해봐야만 하는 문제다. 문학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거나 문학장의 경계를 갱신하는 비평의 본연적 기능이 기능부전 상태임을 보여주는 주요한 증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비평은 문예지 편집위원들의 기획특집이나 주제 서평 등을 청탁받아서 생산된다. 특히 이는 지면선택권이 제한적인 젊은 비평가들의 경우에 더 두드러진다. 실질적으로 등단을 거친 신인 비평가들에게는 문단의 새로운 구성원으로서 적응하고 그 안에서 인정받기까지 자기 주도의 비평을 할 기회가 없다. 그리고 그 기회를 가질 수 있을 때까지의 적응 과정에서 문단의 일원으로 동질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문단뿐 아니라 모든 집단에서 작동하는 사회화의 작용이다. 등단 이후의 적응과 그로 인한 동질화는 과거에도 나타났던, 그리 새롭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오늘날 이것이 더 큰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문학적 재생산이 처한 위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학관을 주창하기 위해 새로운 문예지를 만들어내는 일이 비교적 현실적이었던 시절과 달리 점차 축소되고 있는 문학출판시장에서 가장 위태로운 것은 바로 문예지다. 그리고 그 문예지에서도 비평은 가장 적은 수요를 가지고, 가장 많은 대체제와 경쟁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급속히 축소된 비평의 토양은 제한된 지면과 그 지면으로 편입되기 위한 적응과 동질화에서 이탈할 가능성을 줄인다. 과거와 같은 제도적 장치라고 해도 그것이 순기능을 유지할 수 있던 균형상태는 이미 깨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청탁 없이 자기만의 문학적 문제의식을 내보일 수 있던 등단작조차 기성문단의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은 심각하게 보아야 할 현상이다.
물론 신인 비평가들이 어떤 작가와 작품을 대상으로 선택했다는 것만으로 그들이 기성의 문학을 재생산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동일한 작가나 작품에 대해서도 그에 대한 문학적 평가와 인식의 틀을 갱신함으로써 문학의 새로움을 확보해가는 것 역시 비평의 주요한 기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이 문학적인 것이며, 문학적 가치의 준거는 무엇인지, 문학장을 객관화하고 그 경계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비평의 핵심적인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하다. 기성의 문단 밖에서 새로운 문학적 가능성을 구체화하거나 혹은 중요한 현상이지만 문학적인 것의 외부에 놓여있다고 믿어져 온 것을 호명하는 비평을 찾아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학적인 것의 오래된 경계 외부에 놓인 새로운 가능성이 문단 중심부에 의해서 이미 호명되고 그곳을 통해서 먼저 소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문단의 중심부를 구성하는 주요 출판사와 문예지에 국한된 작가와 작품만을 탐색할 때 비평가는 기존의 문학장 내부만을 배회할 뿐 그 경계 밖에 서 있을 순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문학비평가들이 수행하는 비평의 영역은 한국의 문학 독자가 서 있는 장소보다 더 협소하다. 웹소설 같이 출판시장 외부로 확장하지 않더라도, 문학출판에서 상당한 규모를 차지하는 외국 문학은 비평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으며, 시와 소설 이외의 장르들이나 출판물 역시 비평의 외부에 놓여있을 뿐이다. 이는 비평이 그 사유의 대상으로 하는 문학적인 것의 범주가 실제 독자들의 읽기 경험보다 협소한 범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비평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문학적인 것을 갱신하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외국문학을 전공한 이들조차 비평가로 활동할 때 한국의 독자와 문학적 읽기의 경험을 구성하는 외국문학을 대상으로 한 비평을 쓰지 않는다. 독자의 문학 읽기와 비평의 개입 사이에 견고한 장벽이 쌓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평의 협소화에는 제도의 주체로써 기성 문단의 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자의 읽기로부터 멀어지는 비평을 선발하고(각주 25 :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까지 심사평들에서 문화비평이나 외국문학 비평들에 대한 언급이 나타났으나 그 이후에는 사라진다. 2010년 문학동네 신인상과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서는 최종후보작 중 외국의 시나 에세이를 대상으로 한 비평이 있었다. 최소한 한국문학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는 글이란 이유만으로 탈락시키지는 않았다는 걸 보여주지만 동시에 이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음으로써 응모작들의 비평 대상을 협소화하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다양한 비평적 접근들이 문단 이외에 다른 출구를 찾도록 만들며 비평의 자기 갱신을 제한했다.) 문단의 성원으로써 훈련하는 장소가 문단이기 때문이다. 비평가들이 최종적으로 안착하는 공간인 대학 역시 비평의 협소화에 영향을 끼쳤는데, 비평의 경계를 넓힐 수 있는 적극적 비평 활동 대신에 연구와 병행하거나 부수적인 행위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로 활동 영역을 제한하는 현실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대학에서의 비평가 양성 과정이 기성의 문학적 경계를 넘어서도록 추동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의 문학비평은 문학적인 것의 경계를 확장하고 문학장을 갱신하는 대신 출판과 대학이라는 구조의 바깥을 사유할 가능성을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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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년이면 나나가 십만명. / 나나가 십만번은 반복되는 정도의 시간. / (중략) 공룡보다 느리게 끝나는 경우라는 것도 있을지 모르겠네. 어느쪽이든, 세계가 끝나는 순간이란 천천히 당도할 것이므로 나나에게는 이것저것 제대로 생각해볼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아직은 있을 것입니다. - 황정은, 위의 책, 226~227쪽.
이 글을 쓰고 있던 사이에 결과가 발표된 2018년의 신춘문예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비평가가 되었다. 등단제도에 대한 우려스러운 양상들을 살펴보는 사이에도 제도는 계속 작동하고 있다. 위기의 징후, 아니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해도 제도는 갑작스럽게 멈추지 않는다. 긴 시간 등단제도와 출판, 대학이 만들어온 문학의 경계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며 이를 통과해서 그 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제도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비평의 위기에 대한 진단이 오래도록 이어진 것처럼 제도 역시 앞으로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천천히, 공룡처럼 멸종해갈 수 있다. 점차 협소하고, 동질화되어가면서 비평은 느리게 사라져 갈지 모른다.
하지만 멸종을 향해가는 긴 시간은 우리가 제대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도 함께 주고 있다. 그동안 비평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이 무엇이고, 이제는 비평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 비평의 무엇이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비평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다시 비평을 가능하게 할 일들을 준비할 시간이 말이다. 이미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가지게 되기도 하지만, 아직은 무언가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쥐고서 새로운 비평과 비평가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행스럽게도 최근 젊은 비평가들이 문학장의 갱신을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글들을 찾아볼 수 있다.(각주 26 : 문학장의 갱신에 대한 최근의 주목할 만한 비평으로는 한영인의 「문학성(文學性)에서 문학성(文學+城)으로, 그리고 그 밖으로」(『문학과 사회 – 하이픈』 봄호, 문학과지성사, 2017.)가 있다.) 그 논의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지, 얼마나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으나 최소한 그것을 위한 토양을 쌓아가는 일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지난 10년간의 비평 등단작과 비평가들을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필자의 등단은 2015년이므로 분석대상에 포함되었다. 필자의 등단작 역시 이 글에서 살펴본 위기의 징후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다. 오늘날의 비평이 놓여있는 자리를 고민하는 일은 곧 자기반성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 거칠게나마 오늘날 비평의 경향을 살펴본 것은 개개의 비평이 가진 한계를 지적하는 일과 달리, 개인으로 환원되지 않는 현상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나의 미숙함이나, 혹은 비판적으로 읽힌 다른 비평가의 문제라 치부할 수 없는 비평가인 우리의 문제를 보아야 했다. 우리가 직면한 상황이자, 우리가 해온 행동들의 결과를 말이다. 문제는 비평이 문학장을 협소하게, 독자의 눈보다 더 협소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비평이 문학장을 새롭게 넓히고 갱신하는 대신, 대학과 출판의 경계 안에서만 배회하고 있다. 비평의 위기는 독서의 대상에서 사라져 가거나, 문예지 지면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비평이 문학의 경계를 열린 체계로 상상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고민은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김요섭, 「등단제도는 누구를 비평가로 만들었는가?」, 『내일을 여는 작가』 72호, 한국작가회의, 2018, 57~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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