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일기17 - I Still Hear You

in #kr-youth5 years ago


몇 주만에 본가에 방문했다. 사실 가면서도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예전에는 주말마다 집에 갔는데, 그게 이제 한 주씩 늘어나고 그러다가 잘 안가게 되었다는 친구의 말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가기 싫은 마음때문인지 가는 길이 엄청 어두컴컴하고 뭔가 쾌쾌하다. 그렇게 도착한 집은 사실 지금 엄마아빠가 살고 있는 집이 아니라 지금 집으로 이사오기 전에, 약 15년 전에 살았던 마포 집이었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이사를 많이 다녀 동만 달라졌기때문에 일명 106동이라고 부르던 집이었다. 어쨌든 집에 가니 거기였다. 자연스럽게 내 예전방에 들어가 자려는데 이럴수가, 온 방에 모서리마다 엄청나게 큰 벌레가 있었다. 무슨 내셔널 지오그래피 아마존에 사는 희귀한 벌레 시리즈에서나 봤을 듯한 통통한 벌레가 사이즈가 확대되어 거의 초등학교 1학년 만해져 벽에 찰싹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벌레 주위로 실물사이즈의 개미들이 마치 왕을 모시듯 우글우글 돌아다녔다. 내 방이 정글에 엄청나게 오래 방치된 오두막같아보였다. 침대와 벽 사이에도 무슨 아이만한 키의 애벌레가 침대를 밀어내고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잠을 도저히 잘 수 없을 것같아 (사실 들어가기도 힘들었다) 다른 방에서 자기로 했다. 이미 시간이 많이 늦어 아빠에게 얼른 안자냐는 한 소리를 들을까봐 급하게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엄마와 아빠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오셨다. 엄청나게 큰 생크림 케이크를 같이 들고 생일 축하한다는데, 알고보니 그 날이 내 생일이었나보다. 서프라이즈, 깜짝파티 아니면 큰 케이크 이런건 내 생일에 부모님께 기대해본 적이 없어서 너무너무 감동받았다. 비록 늦은밤이라 케익에 불끄기만 했지만 너무 감동이었다. 얼마나 감동받았는지 그 벌레가 우글우글한 방으로 돌아가 자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아빠에게 내 방에 벌레를 잡아주면 거게서 자겠다고 말하며 아빠를 앞세워 방에 들어갔다. 여전히 초등학생 크기의 애벌레가 구석구석마다 붙어있었고 다른건 몰라도 침대를 밀어낸 그 주황색 애벌레만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아빠는 성큼성큼 밀린 침대까지 가서 벌레 바로 앞까지 얼굴을 가져다 대며 보고도 여기 벌레가 어디있다는 건지 모르겠고 개미 한 두마리면 괜찮다고 하며 마치 내가 유난을 떤다는 것처럼 말했다. 방금 아빠 코앞에 사람 얼굴이랑 똑같은 크기의 얼굴을 가진 애벌레가 있었는데 모르다니! 저기 있잖아! 하면서 소리치다가 잠에서 깼다. 깨고 나서도 이 방 벽과 천장이 만나는 이음새에 꿈에서 본 엄청나게 큰 벌레가 있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금 누워있는 침대 뒤에도 그런 벌레가 있을 것같은 느낌이 들고 막. 심장이 방방 뛰었다. 저번주에 꾼 바퀴벌레 꿈보다 더 무시무시했다. 새벽 세 시였다. 눈을 감으면 내가 안보는 새에 집에 그 큰 벌레가 자리할 것 같고, 눈을 감으면 꿈에서 다시 그 벌레를 만날 것 같고. 악몽도 이런 악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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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셨군요. 축하합니다. 아마도 네셔널 지오그래픽급으로 생일축하 받으신듯 합니다. 벌레까지 총출동할정도였으니까요.

사실 생일이 아니에요 꿈에서만 생일~~~~~
생일축하를 벌레로 받는다니 실제라면 까무라쳤겠어요....

벌레들이 생일축하한다고 쇼를 할수도 있을텐데요. 꿈속이니까요.

꿈 이야기가 엄청 생생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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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시죠?
시국이 시국인지라 소식 들은지 오래된 분들 안부가 괜히 궁금해집니다. 항상 조심하세요. :)

너무 오랜만에 들어와서 이제서야 봤네요. 잘 지내고 있습니다 :) 벌써 스팀잇에 발길을 끊은지 일년이 훨씬 넘었다니 너무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