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잡기20-1]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김원영)

in #zzan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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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어느날, 지인이 좋은 강연회가 있는데 참석하지 않겠느냐고 넌즈시 물었다. 년말 마무리로 정신없이 바빴고 또 관심두지 않은 것은 바로 거절하는 편인데 그 사람이 많이 급해 보여 '저자 책 사주면요.'라고 조건을 달았는데 당장 사다 내자리에 처억 올려 놓은 걸 보면 청중이 모자랄까봐 꽤나 걱정이 됐던듯 하다.

그래서 생전 처음 보는 김원영이라는 분의 책을 읽었고 강의도 들었다. 늘 깨닫는 거지만 세상에는 참 치열하게 사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빠르게 돌아간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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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타고 소회의실에 들어오신 분은 책을 쓴 변호사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고, 평범해 보였다. 1시간 30분에 걸친 강연에서 무슨 말을 얼마나 전달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삶을 살아왔고 살아갈 거라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몸으로(골형성부전증)으로 연극을 한다니 놀라는 정도.

강연은 그 정도로 끝났는데 중간밖에 못 읽은 책을 최근에 마저 읽자니 그의 노력과 성장이 가깝게 느껴진다. 그의 말대로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우아하게 직집보행할 수 없는 한심한 다리로 세상을 살아내기에 얼마나 많은 벽과 시선과 모멸감과 자기 담금질로 피로해 있을지.

질문을 하나 던져 보자.
임신을 해서 기쁜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의사가 말한다.
"아기가 심각한 기형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개의 부모들은 눈물을 흘리며 낙태를 선택할 것이다. 자신들도 감당할 자신이 없지만 세상에 내던져질 아이에게도 못할 노릇이다.
그런데 이미 그렇게 태어난 사람, 혹은 사고로 장애를 입게 된 사람들은 이 '잘못된 삶', 이 책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실격당한 삶'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책에서는 산부인과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어떤 장애아의 부모와 태어난 아기가 자신과 똑같은 장애를 지닌 것을 좋아한 다른 부모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타자의 시선이 아닌 나의 몸, 운명, 삶, 실존에 대한 수용을 전제로 해야 잘못된 삶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장애인이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일은 하나의 국면이 아니라 긴 삶의 시간 동안 그것을 '써 나가는'일이 될 것이며 자발적으로 정체성을 작성해 나가는 일을 의미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믿음을 고쳐 쓰고 또 고쳐 쓰면서 매일매일 장애를 수용(149)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그동안 장애를 수용한다는 말의 의미를, 내가 무한히 강해져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살았다. 부모는 약하다. 그들은 자녀를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자녀가 온전히 자기 모습으로 이 세상에서 당당히 살아가며 그 역경을 돌파하는 모습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가 '잘못된' 자녀를 낳았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고,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런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도 생각한다(그 생각 때문에 또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된 삶'이라고 규정된 나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조건을 받아들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말로 창각장애나 골형성부전증, 연골무형성증이 객관적으로 좋은 가치를 가졌음을 우리 부모에게, 나 자신에게, 이 사회에 입증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을은 분명(사람들의 통념과 달리) 얼마간은 객관적으로도 산물적인 가치를 갖지만, 설령 이러한 질병과 장애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부정적인 경험에 불과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수용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애쓰는 모습이야말로 나 자신에게, 나의 부모에게, 이 사회에게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보이는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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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일간지에 저자의 컬럼이 실렸다.

책에 대한 사족은 쓸데 없다.
장애에 대한 인식을 다르게 갖게 한 김원영씨가 지치지 않고 잘 살길 응원한다.

김원영 / 사계절/ 2019/ 16000원/인문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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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u curate 🐣🐣🐣^^

저자는 타자의 시선이 아닌 나의 몸, 운명, 삶, 실존에 대한 수용을 전제로 해야 잘못된 삶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장애인이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일은 하나의 국면이 아니라 긴 삶의 시간 동안 그것을 '써 나가는'일이 될 것이며 자발적으로 정체성을 작성해 나가는 일을 의미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믿음을 고쳐 쓰고 또 고쳐 쓰면서 매일매일 장애를 수용(149)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잠님이 정리해주신 이 문단만으로 강연회는 물론, 책까지 읽고 싶어지네요. 타자의 시선이 아닌 수용하는 시선으로 모든 생명을 바라봐야겠습니다. 물론 2020년에 꼭 읽을 책으로 실격당한 자를 위한 변론도 넣어두고요! 값진 책 추천 감사드립니다.

따스한 2020년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도잠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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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라니. 제목 한번 멋지게 나왔습니다. 지치지 않고 이 세상 이시대 함께 같이 살아봐요. 도잠님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저자 스팀잇으로 초대!

장애는 다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과 다르게 신체적으로는 조금 더 힘들지는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더 성숙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잠님과 같은 마음으로 작가님을 응원합니다^^

맞아요. 장인 어른 건강으로 마음이 바쁘실텐데 긴 댓글을 달아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