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일기] "재현아. 너도 리영희 선생처럼 될 수 있을거야"

in #drug5 years ago (edited)

#2019년 8월30일 중독자의 회복일기

KakaoTalk_20191001_224322750.jpg 20여년만에 만난 의표형. 오른쪽.

의표형. 내가 스무살 때 잠깐 알았던 형이다. 어떤 계기로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너무 세월이 흘러서 잊어버렸는데 아무튼 알게 됐다. 그 때 그 형은 신입 교사가 된지 얼마 안된 사람이었고, 나는 대학을 휴학하고 등록금 때문에 이런저런 돈벌이를 하면서 보낼 때였다. 내가 서빙을 보던 밥집에 형이 친구들과 놀러오면, 냉장고에서 사장 몰래 음료수 하나 더 꺼내어 챙겨줬던 거 정도가 기억난다.

그형과 딱히 만날 수 있는 지점이 많지 않았던 걸까. 연락은 소원해졌고 나는 신문사 기자가 되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나는 오랜 기간 형을 잊고 있었지만, 형은 다른 내 많은 지인들이 그러는 것처럼 멀리서 나를 응원하며 지켜보곤 했다고 했다. 그런 형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만나자고 한다. 이유는 안들어봐도 안다. 응원해주고 싶은 거겠지. 내가 너무 안됐으니까. 주변에 이런 분들이 많다.

형은 아직도 초등학교 교사였다. 스파게티집에 가서 맛있는 요리를 사주셨다. 꽤 예쁘게 정원을 가꾼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앗싸. 오늘은 맛있는 저녁을 먹겠구나.' 요즘은 맛있는 거 사주는 사람이 제일 좋다.

형은 내가 쓰고 있는 마약일기를 유심히 읽었다고 했다. 자신도 생각해보지 못한 마약중독자들의 삶에 대해 더 알게되어 고맙다고 했다. 의표형은 나의 어린 시절부터 봐왔기에, 내가 기본적으로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사는 사람인지 잘 알것이다. 내 성실한 삶의 태도를 그는 보았을 것이고, 그래서 먼발치에서 청년 허재현을, 혹은 잘 성장한 허재현 기자를 진심으로 응원해주었을 것이다.

그런 허재현이 마약을 했다는게 의표형은 당연히 믿겨지지 않았지만, 동시에 허재현을 익히 알고 있기에 분명 감춰진 어떤 사연이 있을 거라고 그는 추측했다고 한다. 내가 쓰는 마약일기는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마약=허재현'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매개체가 되고 있는 듯 했다. 의표형은 "너의 일기는 우리 사회에 정말 큰 쓰임이 될거야"라고 응원해주었다.

학교 선생이라 그런가. 의표형은 내게 베푼 두시간 남짓한 시간을 최대한 알뜰하게 따뜻한 충고로 채우려 노력했다. 그는 아주 훌륭한 상담사같았다.

"재현아. 넌 어떤 기자가 되고 싶었어? 롤모델이 있었어?"
"리영희 선배처럼 되고 싶었지."
"왜?"
"멋있잖아. 기자로서도, 사상가로서도."

그런데 나는 마약을 해버린 기자다. 어딜 가서 리영희 선배 이야기를 꺼내겠나.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영원히 비웃음 당할 거다.

"재현아. 그런데 형은 너가 리영희 선생처럼 존경받게 될 수도 있을 거 같아."
"그래?"
"이전에 내가 리영희 선생을 한번 본적 있어. 2003년에 인권운동사랑방 창립기념식에 리영희 선생이 오셨었어. 그때 짧은 강연을 하셨는데 리영희 선생이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참회를 하는거야. 감옥 옆방에서 서준식 선생이 고문수사에 항의하며 단식투쟁을 하는데 아무것도 함께 해줄수 없는 것이 부끄러웠다면서 사과를 하시더라고. 사람들 앞에서 용서를 비는 리영희 선생이 나는 참 존경스러워 보였어. 재현아. 자신의 과오를 평생 되돌아보면서 성찰하고, 용서를 구하는 그런 모습이야 말로 정말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삶이야. 지금 재현이 너는 너의 실수를 스스로 성찰하고 사람들 앞에서 항상 용서를 구하고 있잖아. 너무 위축될 필요 없어."

물론, 좀 논리적 비약이다. 어떻게 리영희 선생의 과오와 내가 저지른 마약범죄를 비교할 수 있나. 하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것 같았다. 어떤 삶의 태도로, 평생을 살 것인가. 그에 대한 방향을 의표형은 알려주고 싶었으리라.

의표형은 나와 헤어지기 직전, 꼭 끌어안아주었다. 형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또 한 20년쯤 후에 보게 될까. 그때까지 의표형이 건강했으면 좋겠고, 나도 건강했으면 좋겠다. 20년만에 다시 만나도 스스럼없이 편안한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지인이 있다는게 나는 얼마나 복받은 사람인가. 의표형에게 너무나 고맙다. 아이들에게 얼마나 좋은 선생님일지 안봐도 알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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