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례가 없다는 것을 새로운 기본값으로 받아들이기

  • 부제 - 코로나19로 바뀐 대한민국을 보기

코로나19 사태는 대한민국에 인식의 전환점을 마련해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내부에 많은 정치적 갈등과 논란이 혼재하지만, 시스템은 적합한 수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는데도 시스템이 적합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적합하다’는 말은 어떤 의미로 이해해야 하나? 적합함은 확실함과 다르다. 확실함이 수학적 앎에 어울린다면, 적합함은 과학적 앎과 관련된다. 특히 적합한 앎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잘 써먹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며, 잘 작동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출판된 책에서 데카르트가 추구한 확실함 스피노자가 추구한 적합함 사이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데카르트는 적합한 관념이 아니라 확실한 관념을 원했습니다. 확실성을 추구한 거죠. 내가 인식한 것이 확실한지 아닌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적합한 것과 확실한 건 차이가 있죠. 적합성은 확실성에 못 미칠 수도 있습니다. 가령 책장을 만들 때 나사를 박는다고 해보죠. 알맞은 도구인 드라이버가 있어야겠죠. 만약 나사못 홈에 잘 맞으면 확실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적합한 도구라고 하면 치수가 좀 달라도 돼요. 심지어 힘만 있으면 나사못을 때려 박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적합하다는 건 실천적인 대응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앎을 얻을 때 확실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 작동하느냐, 적절히 잘 써먹을 수 있느냐, 그런 걸 추구한 겁니다. 이런 차이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관심사의 차이를 잘 보여줍니다. 확실한 앎을 얻을 수 있느냐와 적합한 앎을 얻을 수 있느냐는 목적에서 차이가 납니다.” - <생각의 싸움>, 동아시아, 2019, 349쪽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판적-실증적 태도이다. 증거를 수집하고,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검증하고 교정하는 과정. 이것이 과학을 의미있는 활동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가설은 아무리 대담해도 좋지만, 실증에 의해 뒷받침되는 비판에 개방적이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과학철학 개론서에 다 나올 법한 이야기이니, 이쯤에서 멈추고.

그렇다면 왜 이토록 많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으며, 시스템이 적합하게 가동되지 않는다고 난리일까? 내가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선례 없는’ 사건이었다는 점에 있다. 선례가 있었다면? 만일 우리가 그토록 떠받들어 왔던 선진국에서 코로나19 사태를 처치하는 선례가 있었고 매뉴얼이 있었다면? 그토록 깊이 각인된 노예근성으로, 선진국을 배우면 되었다. 설사 그들이 제공한 매뉴얼이 잘 작동하지 않더라도, 그건 그들의 잘못이지 우리 책임이 아닐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사건은 오히려 그동안 선진국이었던 나라들이 우리만 지켜보며 빨리 매뉴얼을 내놓으라고 요청하고 있다. 지금 많은 전문가들이 당황하는 지점이 이곳이다. 전문가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이미 알려진 것을 빨리 습득한 전문가와 아직 모르는 것을 제일 먼저 알아내는 전문가. 전자를 후진국형이라 한다면, 후자는 선진국형이라 부를 수 있으리라. 요컨대, 대한민국은 지금 선진국형 상황을 겪고 있다.

코로나19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에서도, 예술 창작에서도, 기술 발전에서도, 여러모로 선례 없음을 겪고 있고 만들고 있다. 이는 국뽕이 아니다. 사회가 전체적으로 고르게 발전하는 게 아니라, 부문마다 발전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감안하면, 또한 이른바 ‘레거시’(전통)가 혁신의 발목을 잡는 부문도 제각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병은 선진국 진입을 향한 성장통이다.

이 전례 없는 상황에 당황하면서 대한민국은 지금 혼란스러워 한다. 불쑥 커진 몸에 맞게 인식 수준을 성장시켜야 하는 과제를 요란하게 풀어가는 중이다.

나는 과학자 세종대왕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국민 누구라도 이해하고 이토록 빠르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수단인 한글이라는 발명품을 안겨주었기에.

오늘 3.1운동 101주년 기념일이다. 한국인의 급한 성질은 변화와 발전 앞에서는 항상 이롭게 작용했다. 빨리빨리 문화가 결국은 다이나믹 코리아의 동력이었음을, 더 이상 자기 비하를 하지 않고 스스로 이룩하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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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을 계기로
한단계 더 높은 단계의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