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쥐스킨트, <비둘기> : 구멍에 관한 소설

in #kr-book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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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 자존감을 구축하는 데 바탕이 되어줄 '나'는 없었다. 오직 노동에 필요한 무한한 역량만 남아 있었지만 그것조차도 이제는 사라져버린 듯했다. 자아가 없다는 것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마치 커다란 집에 홀로 남겨진 소년이 된 것만 같았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음을 알지만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다……. (...) 나는 지금까지 유난히도 낙천적이었던 한 젊은이가 어떻게 모든 가치관의 붕괴를 경험했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스콧 피츠제럴드 / 무너져 내리다

쥐스킨트의 <비둘기>는 구멍에 관한 소설이다. 습관화된 일상을 지탱하는 받침대가 와해될 때 삶에 구멍이 뚫린다. 계기는 아주 사소했다. 주인공 조나단의 일상은 방문 앞에서 마주친 비둘기의 존재에 의해 무너져내린다. 기계적 반복 가운데 별다른 이변 없이 흘러오던 삶이었다. 모든 것은 평온했고 자연스러웠다. 심지어 "그는 도대체 사건이라는 것이 일어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내적인 균형을 깨뜨리거나 외적인 일상의 질서를 마구 뒤섞어 놓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혐오하기까지 했다."(5) 그런데 바로 그 일이 일어났다! 돌연 마주친 비둘기의 존재가 조나단의 삶에 파란을 몰고 온 것이다. 머리통, 부리, 날갯짓, 다리 등 비둘기의 모든 생김새가 조나단을 공포에 질리게 했다. "그는 까무러치게 놀라 죽을 뻔했다."(16)

이로써 하루가 서서히 뒤틀리기 시작한다. 출근시간에 늦을 뻔했고 복장은 부자연스러웠으며 옷까지 찢어졌다. 일상의 면면은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다. 별다른 생각 없이 이행해오던 책무와, 감흥 없이 지나쳐오던 거리의 풍경들과, 의식 않고 살아왔던 몸의 감각들이 강렬하게 달려들어 당혹스럽다. 아직도 문앞에 있을지 모르는 비둘기 생각에 조나단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대신 부근의 싼 호텔에 방을 잡고, 보잘 것 없는 음식들로 저녁을 때운다. 비참하다. 낡고 좁은 호텔방에 눕는다. "<내일 자살해야지.> 그렇게 말하고 그는 잠에 빠져들었다."(101)

기껏해야 비둘기 한 마리의 존재에 의해, 조나단의 삶을 단단히 붙들어오던 무언가가 박살나버렸다. 고양이 발 앞의 실타래처럼, 삶이 걷잡을 수 없이 풀려나간다. 일상의 "수레바퀴는 자꾸만 다시 궤도를 벗어났다. (...) 어떤 곳을 보더라도 그가 방향 감각을 잡을 수 있도록 시선을 고정할 수 있을 만한 마땅한 새로운 볼거리는 나타나지 않았다."(52-53, 강조는 인용자) 어찌 당황스럽지 않겠는가. 이제 더 이상 일정한 범주 내에서 삶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삶에 일정한 형태를 주던 일상의 고정 장치는 곧 해석 장치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상을 이루던 요소들(책무, 풍경, 감각)이 낯설게 빛나며 그를 위협했던 것이다. 따라서 구멍은 고정 장치의 잔해 뒤에 새겨진, 질서정연하고 정형화된 삶의 흔적이다. 상실된 정체성의 그림자이다.

왜 하필 비둘기인가 하는 질문에 우리는 사후적으로만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일단 일이 한번 일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조나단에게 어린시절에 겪은 트라우마가 있는가? 비둘기라는 동물에 결부된 보편적 상징성이 있는 것인가? 혹시 조나단이 살아온 문화권의 관습적 심상인 것인가? 등등. 트라우마는 차라리 증상이 나타나는 그 시점에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여 구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천적인 관점에서 이는 딱히 중요한 질문은 아니다. 언제나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범위 바깥에서 사건은 다가온다. 뒤늦게야 균열이 흘러왔던 자취를 되짚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요점은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비둘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하자면, 삶의 특정한 순간에 구멍을 마주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정말 사소한 원인에 의해서 말이다. 조나단이 그랬듯이 구멍의 존재는 상처이거나 혼란, 회의와 고독으로 나타난다. 그 기분 아래서 우리는 으깨짐을 겅험한다. 당연히 이런저런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암묵적으로 이해해온 바로 그 '나'가 알 수 없는 압력 아래 폐허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복하건대 <비둘기>는 구멍에 관한 소설이다. 절망 속에서 직장으로 출근한 조나단은 점심시간이 되자 공원에서 빵조가리와 우유 등으로 부실하게 식사를 한다. 그런데 벤치 어딘가에 걸려 바지가 찢어졌다. 조나단은 그것이 단순히 바지가 찢기는 소리가 아니라 "지진으로 땅이 갈라진 것처럼 그의 속살이 찢겼거나, 벤치가 부서졌거나, 공원이 쫙 갈라져서" 나는 소리라고 느낀다. 그는 스스로에게 소리친다. "<이 구멍을 막을 수 있도록 지금 즉시 뭔가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너는 파멸하고 만다!>" (71-73, 강조는 인용자) 확실히 그는 위협받고 있다.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던 그의 일상이 "찢어졌다," "구멍이 뚫렸다." 구멍은 블랙홀과도 같다. 그 앞에서 일상을 지탱하던 근본 골격 전체가 빛을 잃고 산산조각난다. 이제 조나단은 자신이 "몸뚱이 전체가 자기 것이 아닌 것 같았고 (...) 작동이 멈췄거나 줄이 끊긴 꼭두각시"(93)라고 느낀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참담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래서, 앞서 이미 인용했듯이, 조나단은 좁은 호텔 방에 누워 다음날 자살하리라 우울하게 다짐한다.

그렇다면 쥐스킨트의 <비둘기>는 한 남자의 정체성이, 일상이, 삶이, 세계가 무너지는 비극 소설일 뿐인가? 그것은 상식적으로 보기에 말도 안 되는 계기로도 인간이 몰락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인가? 마침표가 확실하게 찍히기 전까지는 누구도 의미의 결말을 알 수 없다. 확실히 조나단은 지극히 '하찮은' 조우로 삶 한가운데 뻥 뚫려버린 구멍 앞에서 절망했다. 그러나 호텔에서 묵은 그날 새벽 어떤 일이 일어난다.

조나단이 묵은 그날 밤, 악천후가 닥쳤다. 천둥 번개를 동반하여 비가 쏟아졌으나 세상을 쓸어버릴듯이 폭탄처럼 한번에 터져드는 그런 악천후는 아니었다. 뜸을 들이면서 긴 시간 동안 뇌우가 울려퍼졌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시간 동안 조나단은 "죽음의 공포로 느껴지는 경악"을 체험한다. 그런데 별안간 사방이 조용해진다. 조나단은 그 침묵이 뇌우보다 무섭다고 느꼈다. "위든, 아래든, 반대편이든, 밖이든 방향을 잡을 수 있을 만한 것이 몽땅 없어진 것으로 느껴졌다. (...) 그가 어디에 있고, 또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 줄 수 있었겠지만 그런 것들은 캄캄한 어둠과 침묵 속으로 다 없어져 버린 듯했다." 여기서 조나단은 그 자산이 구멍 한가운데에 겹쳐지고 있다. 혼란은 절정에 달한다. 그가 습관처럼 유지해오던 '나'는 완전히 증발한다. 그는 이제 자신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때의 '자신'은 결코 통상적인 의미의 조나단 자신이 아니다. 그것은 텅 빈 자기 자신이다. "자기가 침대에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 누구의 침대고, 어디에 있는 것인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103)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났다. 어디선가 빛이 들어왔고, 창밖으로는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조나단은 웅크린 채로 한참동안 그 소리를 듣다가, 옷을 입고 밖으로 나선다. 비는 오지 않는다. 조나단은 집으로 가기 위해 걷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두 개의 묘사가 있다. 하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가 아스팔트에 고인 물을 밟다가 맨발로 가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는 부분이다. 다른 하나는, 그렇게 걸을 때마다 물이 사방으로 그의 바짓가랑이로 튀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다. "정말 신나는 짓이었다. 그는 어린아이들이 하는 그런 지저분한 유희를 다시 되찾은 대단한 자유라도 된다는 듯이 즐겼다."(107) 전자는, 조나단이 기억하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묘사와 일치한다(6). 그리고 후자는, 절망한 와중의 그가 아무데서나 자유롭게 살며 똥을 싸는 거지를 보았을 때의 묘사와 일치한다. 거지가 싸는 똥은 바짓가랑이와 사방에 튀고 있었다. 이 두 대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조나단의 구멍이 다시 꽉 채워졌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조나단은 마침내 구멍을 열린 채로도 둘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그토록 꺼려했던 "지저분한 유희"마저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자포자기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체험하고 있는 것은, 소설에서도 분명한 단어로 표현되고 있는바 "자유"이다. 조나단은 구멍을 열어둔 채로도, 확고하고 명확하며 안전해-보이는 정체성을 강박적으로 추구하지 않고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조나단은 긴장하며 집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간다. 그렇게 걸음을 재촉하는 가운데 "갑자기 공포가 사라져 버렸다." 마침내 집앞 복도에 도착했다. "복도는 완전히 비어 있었다. 비둘기는 흔적도 없었다. 바닥의 오물도 다 치워져 있었다. 깃털도 없었다. 붉은색 타일 위에서 바들바들 떨리던 작은 깃털도 보이지 않았다."(109) 이렇게 소설은 끝난다. 복도는 "비어 있었다." 비둘기는 "흔적도 없었다." 요컨대, 구멍을 무언가로 채웠기 때문에 조나단이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조나단은 반복해서 비어 있음을 발견한다. 구멍은 빈 채로 남겨져 있었고, 다만 조나단은 그것에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됨을 은연중에 알게 되었던 것이다.

소설은 여운을 남기기 위해 여기서 끝나는 편이 적절하다. 그러나 문제가 삶이라면, 구멍의 체험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삶은 여운을 남기고 끝나는 법은 없다. 무언가를 기다리듯이, 지지부진하게, 또한 물리도록 계속될 뿐이다. 우리가 그렇듯이 아마도 조나단 또한 구멍을 영원히 열어둘 수는 없을 것이다. 수련이 아닌 일상을 유지하는 한 어쩔 수 없다. 정체성의 환상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으로서만 살아갈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아갈 때 인간은 더 이상 인격일 수 없다. 그러나 이 소설이 가르쳐주는 바에 따르면, 무엇인 채로 살아간다고 해서 곧 인격인 것은 아니다. 인간적 자유를 가지고 생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아마도 구멍과 더불어, 그리고 환등(幻燈) 아래를 지나가듯이 물밀려오는 정체성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정체성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에도 옷처럼 입고 살아가며 때때로 바꿔입고 또한 벗어던진 채로 지낼 수도 있는 방법을 배우는 일. <비둘기>의 경우 조나단이 구멍을 체험하고 나아가 구멍을 삶의 요건으로 끌어안는 데서 막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언급했듯이 현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정체성은 필수불가결하다. 그럼에도 하나의 정체성이 절대적이고,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삶에 대한 관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이 소설에는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나아가 이것을 배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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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흐트러짐이 삶에 주는 충격을 말하나 보네요. 의미를 깨닫는다 해도 일상은 그다지 변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 같네요. 대부분의 삶은 사실 그렇게 버라이어티하지는 않겠죠.

아, 분명 삶의 끈질긴 지속성을 나타내는 걸로도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저는 그 반대로 읽었습니다. 사소한 충격에도 흐트러질 수 있을 정도로 삶의 양식이란 게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걸로요. ㅎㅎ 꼭 겉보기에 버라이어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때의 사소한 순간이 나아가는 방향을 크게 바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까? 또는 우리가 무감각한 것일지도 모르고요. 실제로 삶이 버라이어티하게 변한다 해도 그걸 인지해서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테니 일종의 방어기제로서... 문학은 그 단단한 표면을 꿰뚫고 존재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드러내어 주는 능력이 있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ㅎㅎ

요 며칠 좀 바빠서 정독은 늦게 했네요. 공모전에서도 수상하셨죠? 예상은 했지만 ㅎㅎ 축하합니다!

과분한 상을 받은 것 같지만 스팀잇 글쓰기에 용기와 격려들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이미님께도 스린이에게 관심을 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ㅎㅎ

사소해보이는 일로도 안정적이던 삶이 흔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소설입니다
주인공의 강박적인 생각들이 인상깊었어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비슷한 느낌을 주더라고요
어딘가가 매우 예민한 ㅎㅎ

동의합니다. '비정상적인' 예민함이 불러오는 '비정상적인' 광경들이 자주 등장하는듯 해요. 그 예민함은 병리적이라기보단 우리가 일상에서 무관심하거나 은연중 숨기는 것들에 대한 발견의 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ㅎㅎ

작은 일상의 흔들림이 누군가에게 감당하기 힘든 흔들림으로 다가 온다...
좋은 글 인듯....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고, 더위 조심하세요
시간 나시면 웹툰 연재 중이니 휴식차 한번 봐주세요!!
https://steemit.com/kr/@nalumsiss/2

감사합니다^^ 웹툰도 잘 감상하겠습니다!

축하합니다. 제3회 스팀잇 책리뷰대회 좋은리뷰로 선정되셨습니다. 창작지원비 1 SBD를 상금으로 드립니다. 다음에도 멋진 책리뷰 부탁드려요~~~ ^^
제3회 스팀잇 책리뷰대회 1주차 booksteem & kr-book 큐레이팅 첫주 보고 및 소감 + 2주차 공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