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공

in #kr-buddha6 years ago

무기공

젊은 스님이 미얀마의 한 명상 선원에 있을 때, 한 한국인 띨라신(여성 출가자)이 찾아왔다.
그녀는 다른 스승에게 공부를 하고 있는데 자기가 사다함과를 성취했다고 한다.
젊은 스님은 호기심이 일어 물었다.
“오, 대단합니다. 어떻게 수행하여 그런 경지에 도달했습니까?”
강한 정체성의 얼굴을 한 그녀가 설명을 시작했는데 말이 끝이 없었다.
“난 위빠사나 16단계 지혜를 차례로 통과했습니다.”

위빠사나 16단계 지혜는 청정도론에 나오는 것이다.

  1. 정신과 물질을 분석하는 지혜
  2. 원인과 조건을 식별하는 지혜
  3. 이해의 지혜
  4. 일어나고 사라짐의 지혜
  5. 무너짐의 지혜
  6. 공포의 지혜
  7. 위험의 지혜
  8. 역겨움의 지혜
  9. 해탈하기를 원하는 지혜
  10. 깊이 숙고하는 지혜
  11. 상카라에 대한 평온의 지혜
  12. 수순하는 지혜
  13. 종성의 지혜
  14. 도의 지혜
  15. 과의 지혜
  16. 반조의 지혜

그녀는 16단계의 지혜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이 단계를 모두 밟아야 도과에 이를 수 있으며, 자신은 그렇게 해서 깨달음을 성취했다고 한다.
젊은 스님은 그런 교리적인 것에 믿음이 없었다.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단계를 경험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냥 건너뛰고 바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지. 꼭 그렇게 모든 단계를 다 경험해야만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다. 그럼 중국의 선사들은 뭐란 말인가? 그들은 대체로 언하에 대오하던데. 이런 단계를 밟을 시간도 없이 바로 깨달음에 들어가던데.”
젊은 스님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으나 차마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마타가 강한 성향의 여인이었다.
사마타가 강한 사람들의 특징이 마음으로 어떤 상태를 만들어 들어가는데 선수들이다.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렇게 해서 도과를 성취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어느 날 가부좌를 하고 앉았는데 감각이 끊어지고 생각도 끊어진 경지에 들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의식이 있습니까?.”
“의식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 그 상태에 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그 상태에서 나와서 시계를 보고 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깨달음이라고 어떻게 확신합니까?”
“나를 지도해주시는 사야도께서 그것이 깨달음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녀는 자주 그런 상태에 들어갔고 그녀의 스승은 그녀가 사다함과에 도달했다고 인정해주었다고 한다.
젊은 스님은 선어록에서 보았던 ‘흑산의 귀신굴’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그것이 깨달음이 아니고 ‘무기(無記)’라고 말해줄 수 없었다.
그녀는 쎈 언니였고,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 같아서였다.

젊은 스님은 자신이 믿는 스승에게 가서 그녀에 대해 물었다.
“그녀가 여기에 와서 자신의 깨달음에 대해 설명했습니까?”
“자신의 깨달음을 인가해달라고 와서 자세히 설명하더구나.”
“그것이 깨달음입니까?”
“깨달음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기 상태이다.”

젊은 스님이 한 명상 선원에서 인도네시아 스님을 만났다.
그도 한국 띨라신처럼 위빠사나 16단계를 차례로 경험하고 도과를 성취했다고 주장했다.
젊은 스님은 그 인도네시아 스님에게 물었다.
“그 깨달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감각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진 상태에 들어갑니다.”
“그 상태에서 의식은 있습니까?”
“의식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나와서 시계를 보고 압니다.
의식이라도 있다면 삼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의식도 없는 상태는 무기다.
그는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런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젊은 스님은 그에게 말했다.
“반테, 그것은 깨달음이 아닙니다. 무기(無記)입니다.”
인도네시아 스님은 그것이 깨달음이라고, 스승이 인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스님에게 충고했다.
“여기에만 있지 말고 돌아다니면서 여러 스승들에게 점검을 받아보십시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후 그가 인도네시아 스님을 다시 만났을 때, 그 인도네시아 스님은 그것이 깨달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청정도론이나 아비담마를 잘못 읽으면 삼매와 같은 어떤 마음 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깨달음은 말 그대로 깨달음이다.
어떤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인식의 전환, 각성, 의식의 질적 변화 같은 것이다.
선방에서도 고요함, 평온함, 텅 빔, 행복감, 희열, 빛, 등을 경험하고서 깨달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깨달음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때다.

by 석무념 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