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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kr-history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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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의욕도 없는,
아직 인간이 되고픈 20대 인간 언저리 index입니다.'

1945년 9월 2일, 주축국의 패전으로 인류역사의 비극인 세계 2차 대전은 끝나게 됩니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1961년, 한 독일인이 이스라엘의 법정에 서게 됩니다.
이유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2차 대전 당시, '유대인의 이주와 운송'에 대한 실무를 담당했던 나치의 무장 친위대 중령이었던 칼 아돌프 아이히만, 주축국의 폐전이후 남미로 도주했던 그는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에 이해 아르헨티나에서 납치되어, 이스라엘로 오게 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철학자가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을 참관 합니다. 이름은 한나 아렌트, 독일 출신 유태인으로 나치의 홀로코스트의 손길을 피해 프랑스를 통해 미국으로 탈출한 사람입니다.
전 세계인이 경악했던 전쟁 범죄에 대한, TV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된 공개 재판을 참관하며, 한나 아렌트는 깊은 철학적 사유에 빠지며, 칼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평론과 재판의 참관기를 책으로 남깁니다.
책의 이름은, <예수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부제는 악의 평범함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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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여사의 생존 모습, 골초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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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당당했습니다. 자신에겐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은 없으며, 자신은 잘못한 것 또한 없고, 자신은 상관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명령을 따른 사람일 뿐이다. 라는 태도로 일관했다고 합니다.
책의 저자인 한나 아렌트 역시, 수많은 학살을 도운 아이히만이 사악하지 않다는 점을 주요하게 기술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평범하고,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인 아이히만(심지어 나치가 홀로코스트를 당 방침으로 결정하기 이전에는 아이히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운송담당이라는 직책을 활용해 일부 독일계 유대인들을 유럽 밖으로 이동 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물론 해당 시기에 아이히만에게 도움을 받은 유대인들은 아이히만이 개인적인 선량함이나 유대인에 대한 동정 때문에 행한 게 아니라 지극히 '관료적'으로 처리했다고 증언했다고 합니다.)이 어떻게 엄청난 학살에 도움을 주었는가? 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질문을 합니다.
질문과 사고 끝에 아렌트가 내린 결론은 '악의 평범함' 입니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함을' 라는 것이 입니다.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함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행한다면, 일상적으로 보였던 그 행위는 악이 될 수도 있다. 입니다.

물론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던 아이히만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죄로 사형 선고를 받고 1962년 5월 31일 교수대를 통해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형이 선고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은 신을 믿으며 살아왔고, 신을 믿으며 죽을 것'이라고 외치며,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죽었다고 합니다.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은 수많은 논쟁을 불러오게 됩니다.
특히 역사학자들이 아렌트의 주장에 대해 가장 많은 반론을 제기하게 됩니다.
역사학자인 베티아 스탕네트는 '악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라고 주장하며, 아이히만은 아렌트의 주장대로 착하고 선량하지만 비판적 사고 없이 자신의 일을 행한 '평범한 사람'이 아니며, 오히려 강한 반유대주의 성향과 인종 분리에 집착한 급진적 나치당원이었고, 그는 홀로코스트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람이다. 라는 사실 들과 함께, 그가 법정에 한 말은 죄를 무마하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하다. 라는 말로 아렌트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반론합니다.
물론 아렌트는 해당 반론에 대해서 아이히만의 거짓말을 단순한 책임 면피를 위한 거짓말이라기보다는 현실감각을 없앤 사고와 언어의 무능으로 본다고 이야기며, 사실에 대한 해석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무고를 주장하며 그의 사형을 반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이히만에겐 분명히 죄가 존재한다. 하지만 어떻게 평범한 사람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악당이 되었는지 우리는 알아야한다.' 가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서 하고픈 이야기였다고 합니다.

강력한 권위(나치당)가 어떻게 개인(아이히만)의 판단 능력을 앗아갔으며, 그 속에서 개인은 권위가 주는 조그마한 권위 속에서 어떻게 악으로 변화하는가.
권위는 거창하거나 비범한 방식이 아니라 그저 개인이 추구하는 이상의 방향성을 살짝 바꾸는 것(아이히만의 경우는 직장에서의 출세)으로 평범하게 행하는 일상적인 행위를 인종 학살과 같은 범죄에 참가하게 만들고, 그 학살에 대한 무관심을 만들어내게 되었는가?
악의 평범함은 그런 것 입니다.
일본 제국 시절, 국가신도를 통해서 일왕을 만세불변의 신으로 숭배하게끔 하면서, 교육현장이 학교에 도입되어, 형이 자살특공대의 일원으로 끌려가는데, 동생은 형을 향해 만세를 부르며, 자랑스러워하는 비극을 만들어 냈습니다.
자살특공이라는 말도 안 되는 행위가 숭고한 희생과 애국심으로 포장하고 자살특공으로 죽은 사람의 가족들이 자살특공으로 죽은 사람을 자랑스러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비판은 매국노로 몰아 비판하는 사람이 오히려 악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권위란 그런 것입니다.
악이란 그런 것입니다.
악당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악당이 될 수 있습니다.
항상 끝없이 비판하고 경계해야합니다.

이러한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함'은 당시에는 논쟁만 불러오고 끝나는 듯 했습니다만, 시간이 흘러 후속연구를 통해, 한 가지 실험을 통해 진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실험이 바로 그 유명한 1971년 사회 심리학자이자 스탠퍼드 대학교 정교수 필립 짐바르도 박사의
<스탠퍼드 교도소>(The Stanford Prison Experiment) 실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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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힘내세요!!

이 글의 요즘의 행태와 너무나도 같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악의 평범함..
비판적인 사고와 행동..이미 저도 많은 부분 그러한 것 같네요. 조금씩 경계해야 겠어요. 평범하게 늘 경계~~
<스탠퍼드 교도소> 역시 그러했군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항상 의심하고 또 경계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