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만큼 순수한 사랑이 있을까? 세상에 눈 뜨고 이성을 느끼면서 가슴에 들어오는 사람을 향한 감정은 순백색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상대가 순수를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사랑은 파경을 맞는다. 이 영화에서도 서연이 방송반 선배에게 자췻방에서 정조를 잃었다고 판단한 승민은 그녀와 이별한다.
세월이 흘러 15년 만에 다시 만나는 과거의 연인은 함께 집을 지으면서 추억으로 여행을 떠난다.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지만 그 때 순수했던 감정을 아프게 회상하면서 영화는 이어진다.
서연이 자신의 실수로 못 이룬 사랑을 가슴 아파 하며 '좆 같아, 모든 게 좆 같아' 하며 푸념하는 장면은 시간을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의 절망적 표현이다. 자신을 순수하게 사랑해준,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에 대한 애틋함이 절규로 변한 것이다.
세 가지 시간을 사는 우리들
시간은 우리 앞에서 흘러가지만 가버린 시간이 회상 속에서 불려나와 지금 현재를 살기도 한다. 그래서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현재에서 미래로 일직선을 이루며 흘러가는 것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인간의 시간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했다. 인간은 과거의 현재, 현재의 현재, 미래의 현재를 산다고 했다. 나는 현재를 살지만 과거를 살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멀리 와 있지만 과거의 추억으로부터 고통받기도 하고 애틋한 감정으로 인해 행복해 하지 않는가! 나는 과거의 나이면서, 현재의 나이면서, 미래의 나이다.
사랑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알랭 바디우는 사랑은 건축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 만들어가는 존재의 창조 같은 것! 사랑은 둘의 사랑이다. 플라톤 이래 주류 서양철학사에서 사랑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내가 타인과 동일자로 되는 것. 그러니깐 타인은 곧 나여야 한다는 생각. 이것은 폭력이다. 타인은 타인일 뿐이다. 타인은 결코 '나' 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바디우는 기존의 사랑의 관념을 전복하면서 사랑은 둘이다, 라고 말한다. 둘이서 창조를 향한 여정에 오르는 행위가 바로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은 건축이다.
그러니깐 바디우에게 있어서 사랑은 찾아 나서야 할 것이 아니라 건축을 하는 행위다.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이야기. 사랑은 창조이고 진리라고 바디우는 말한다. 사랑을 찾지 마라! 당신이 사랑을 창조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첫사랑은 다시 돌아 온다.
승민과 서연의 조우는 고통일까 그리움일까? 둘이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까? 엎질러진 시간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지만 이들이 통과해 온 아름다웠던 추억, 가슴 아픈 추억 모두가 이들의 삶의 역사를 이룰 것임으로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여행은 이들에게 삶의 용기를 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 온 역사를 부정할 수 없으니깐.
승민이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떠나면서 서연에게 받은 선물을 다시 돌려주는 장면은 순수의 시대가 끝났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첫사랑의 순수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씬이기도 하다. 서연이 다시 레코드를 듣는 장면을 보라. 첫사랑은 언제까지나 음악처럼 반복해서 재생될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영원하다는 말은 맞다.
저는 일부로 안 봤습니다. 마음이 뒤숭숭해질거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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