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들간에 계급을 나눈 기업
현재 내 주변에서 평가하는 스팀잇의 보편적인 이미지다. 저널과 칼럼에 익숙해진 학우들이나 책 좀 읽는다고 자부하는 고등학교 동창들은 대게 스팀잇의 체계에 대해 우려했다. 내가 스팀잇에 인사말을 올린 후 알게된 다양한 정보, 특히 태그와 보팅의 중요성 내지 꾸준한 활동을 두고 짧은 대화가 오갔을 때였다.
"태그랑 덧글만 잘 올리면 와서 보팅을 해준다고?"
학우들은 경악을 금치못했다. 글의 내용보다 어떤 태그를 사용하며 얼마나 다양한 게시글에 덧글을 남기는지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부정하지 않았다. 실체로 게시글과 상관없는 안부인사와 뜬구름 잡는 홍보를 여러 글에서 훑어봤기 때문이다.(어떤 글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보팅과 덧글은 스팀잇의 영향력과 직관 되며 계정의 가치, 즉 자본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내용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임은 틀림없는데 이래서는 컨텐츠를 위해 스팀잇을 시작한 건지, 돈을 위해 시작한 건지 알길이 없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컨텐츠 제작이 목적이지만 그에 따른 보상심리가 스팀잇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이따금씩 간단한 안부인사, 쓸게 없어서 투덜데는 글, 정신없이 휘갈겨쓴 문체, 사소한 잡담을 다룬 글에서도 적지않은 보팅과 덧글이 쌓여있었다.
"이게 스팀잇이 주장하는 창작자들을 위한 보상체계야?"
"내가 볼 때는 계급과 친목으로 싸잡아먹는 여느 기업들같은데?"
"훌륭한 사이트네. 책상에 앉아서 고상한 덧글만 올리는 비지니스라니."
"확실히 좋은 컨텐츠도 있지만 꼭 여기서 봐야할 필요성은 못 느끼겠어."
스팀잇은 밖에서 볼 때 상당히 매력적이다. 내가 만든 컨텐츠를 3자의 영향없이 받을 수 있다니 얼마나 꿈만 같은가. 하지만 직접 활동을 해보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예상했던 문제점이 고스란히 비쳐졌다. 현재 스팀잇을 이용하는 한국인 유저는 소수에 불과하다. 때문에 신규 가입자가 들어올 때마다 적지 않은 관심과 정보를 공유하며 친절을 베푼다. 뉴비는 감동받고 자신감을 가지며 활동에 전념한다. 그러나 곳 깨닫는다. 도움을 주는 건 여기까지 임을. 컨텐츠의 경쟁과 이미 자리를 잡은 고래들의 영향력은 플랑크톤이 감당하기엔 버거울 따름이다.
솔직히 처음 가입인사를 올렸을 때 상상 이상의 유저들이 환영해주고 정보를 알려줄 때마다 묘한 공허함을 느꼈다. 그리고 직감했다. 아, 이 다음은 어떠한 친절도, 도움도, 조언도 없이 심해에서 혼자 수면으로 나아가야 하는구나.
물론 비관적인 팩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팀잇은 실체로 양질의 컨텐츠를 제공하는 유저들이 바다를 누빈다. 게다가 한국에 들어온 기간도 짧기 때문에 발전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문제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개인 블로그 게시글은 항목별로 나눌 수 없어서 보기 불편하고 스팀파워가 부족하면 만족할만한 활동이나 게시글 작성도 불가능하다. 심지어 스팀파워를 돈으로 살 수 있으니 계급격차는 들쭉날쭉하다. 태그는 오로지 영어만 가능하며 블록체인의 특성 때문인지 너도나도 비판어린 시선보다 칭찬과 옹호, 공감과 호응이 태반이라 자신의 글에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사색할 기회가 적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점은 '친목'이 존재한다는 것. 뉴비는 열심히 다른 유저들을 찾아가 덧글을 남기는게 이곳에서 당연한 문화가 되었다. 그럴 수 있다. 내 것만 만들고 다른 사람 것은 보지않고서야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다만, 서로 알고 지내는 유저들의 게시글에는 컨텐츠의 양질을 떠나 덧글과 보팅을 남기는 태도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스팀잇은 영향력과 친목으로 인해 파멸할까? 위에서 제시한 문제점이 심화된다면 여느 커뮤니티사이트로 전락되지 않을까 싶지만 반대로 문제점이 강점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카테고리가 없으니 경계없는 컨텐츠를 감상할 수 있으며 긍정적인 덧글과 친목이 도리어 활동을 지속하는 회복제가 되고 한 단계 성장한 컨텐츠를 만들 수도 있다.
결국 여느 결론과 마찬가지로 스티머들의 향후 행동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과연 지금의 행태는 앞으로 모두가 고래로 성장할 수 있는 바다가 될까, 그게 아니면 일부 주인들이 다스리는 연못이 될까.
스팀잇은 도구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참여자의 몫으로 보입니다. 물론 구조적인 한계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기존 플랫폼보다는 어떤 방향으로든 "변할 수" 있다는 부분이 매력적입니다. 이런 플랫폼 성찰적인 글이 어떤 플랫폼에서 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군요...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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