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최근 다시 SNS에 여러가지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最近またSNSに色んなことをシェアし始めた。

in #kr-overseas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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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간이 많아져서 생각들을 정리해보았다. 시간이 많으면 자꾸만 속을 파고 들어가서 정리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마치 내 상처가 잘 있나 자꾸만 딱지를 건드리다 떼어버리는 버릇처럼





생각해보면 지난 몇 년동안 소중한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이 참 많았는데, 그 많은 사진들의 대부분은 SNS에 올리지 않았다. 그 시간들이 충분히 만족스러워 좋아요가 필요하지 않았고, 개인적인 시간들이었기 때문이고, 굳이 올리는 것에 위화감이 들기도 했고, 정리하다가 잠들기도 했고, '보여줘야한다 혹은 공유해야한다' 는 무의식적인 의무감이 싫었다.

무엇보다 나는 2년전부터 변호사를 고용해서 여러가지를 준비했고 작년 1월부터 재판을 시작해서 아직도 재판을 계속하고 있는데, 가장 힘들 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네가 SNS에 웃고 잘 지내는 모습들을 올렸잖아. 그거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되는 거 아니야?" 라는 말을 듣고는 심하게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나도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했기때문에 삶의 가장 밝고 빛나는 순간일수록 SNS에 공유하는 것을 주저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온 나의 생각이 귀 가장 안 쪽에 있던 불안에 가 닿았고, 그것이 펑하고 큰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다. 후회와 두려움에 집어삼켜지는 것 같았다. 비단 재판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을 이유로 지키지 못한 많은 약속들 때문이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은 여러가지를 방해했고 부쉈지만, 365일 8,760시간 525,600분 31,536,000초를 전부 함께 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 그들은 거짓말처럼 멀어져 느껴지지 않았고, 어제와 오늘 사이에는 분명 아무리 작더라도 행복이 존재했다. 그러한 행복들은 주우려고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주워담을 수 있었다. 나는 SNS에 양해와 이해와 위로를 구하듯 내 상황을 적나라하게 고백했고, 그와 동시에 가끔씩 삶의 밝은 면만 편집해서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잘 지내고 싶었기 때문에 잘 지내려는 노력들을 했고, 어떻게보면 발악이다 싶을 정도로 웃었다. 어떤 날은 웃으며 즐겁게 지내는데에 아무 노력도 필요하지 않았지만, 어떤 날은 웃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았다. 어떤 날은 울면서 연신 “ㅋㅋㅋ”를 쓰기도 했다. 그런데, 그 모든 노력들이 말 한마디에 전부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었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도 충분히 알았지만, 상대방의 의도와 별개로 그 말은 내게 너무 날카로워서 가슴을 뚫으며 지나갔고, 나는 방 문을 닫고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오랫동안 그저 울기만 했다. 왜 피해자가 웃고 사는 모습이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되는 건데?? 잘 살다가 왠 미친놈때문에 몇 년을 맛탱이 간 채로 힘들어한 것도 억울한데, 보란듯이 잘 지낼 권리마저 빼앗긴 것 같았다. 나는 마치 긴 싸움을 하고 있는데, 그 긴 싸움을 하는 동안은 웃는 것이 금지된 것처럼 느껴졌다. 웃으면 마치, 싸움에서 패하고 사형선고를 받을 것 같았다. 잘 웃는 사람에게는 범죄를 당해서 상처를 입어도 오랫동안 아파할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했다.

사람이 다치면 눈물도 나고 아프고 우울하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마음가짐,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울고 웃으며 잘 사는 것을 택했다. 앞으로도 슬픔과 우울, 기쁨과 행복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 할 것이고, 늘 웃음이 있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고, 가끔은 바보처럼 또 가끔은 살짝 손해를 보듯이 살 것이다. 무엇인가를 시작하면 완전함을 추구하는 버릇이 있지만 삶에 있어서는 불완전함을 추구할 것이다. 현실에는 완전한 사람보다 불완전한 사람이 더 많고, 나 자신도 너무나 생각이 짧고 성숙하지 못하며 그릇이 작고 불완전한 사람이니까. 완전해서 이미 꽉 차있는 것 보다는 불완전해서 늘 부족한 편이, 타인과 자신에게 보다 관용적이 되고, 내가 아는 세상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결과적으로 완전한 사람보다 더 완전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최근 다시 SNS에 여러가지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는 공개용 어카운트를 만들기도 했다.
@ sumomo_juice (그림)
@ sumomo_archive (그림 및 일상) 이다.
끊어진 연결고리들이 다시 이어지기도 하고, 기존에 있던 연결고리들이 더 단단해지기도 하고, 새로운 연결고리들이 생기기도 한다. 살아오면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입고 주저앉았지만, 난 여전히 사람들이 좋다.

나는 역시, 연결되어 있고 싶다.




考えてみると、ここ何年間大切な人々と大切な時間をたくさん過ごしたのだが、だいたいはSNSに公開していない。シェアして「いいね」などをもらわなくも満足できる時間だったし、プライバシーな時間だったし、わざっと加工して見せるようで違和感を感じたときもあったし、寝落ちして投稿タイミングを逃すときも多かったし、見せる・共有する という無意識に存在する義務感みたいなやつが嫌だった。

なによりも、私は2年前から弁護士と長い戦いをしていて、未だに終わっていないのだが、そういう中で身内の人に「あなたがSNSに笑っていて楽しそうな姿を見せているんじゃない。それが裁判に不利に作用したりはしないの?」と言われて酷く傷ついたからでもあった。そういう考えをしたことがないと言うと嘘だろう。だから一番明るくて輝く瞬間ほどSNSに公開できなかったわけだ。しかしその考えが他人の口から出て私の耳の奥側に入った時、潜んでいたスイッチがプチッと押されて不安がドカーンと音を立てながら爆発し、私は後悔と心配に侵食されてしまった。裁判も裁判だけど、今まで外傷後ストレス障害とうつ病を理由にして多くの約束を守れなかったからである。彼らは色んなことを邪魔しては壊したけど、だからといって365日8,760時間525,600分31,536,000秒を全て一緒に過ごしたわけではない。たまに彼らは嘘みたいに遠くなって影も見えなかったし、昨日と今日の間には必ず些細な幸せが存在した。そういう砂利みたいな幸せは拾おうとすればいくらでも拾えた。みんな挨拶するときに「元気?」と言う。私は元気だと嘘を付くのも、正直に元気ではないと言うのも嫌になってきて、元気になるために様々な努力をした。ある日は自然に笑って過ごせたし、ある日は笑わないとすぐにでも泣きそうで足掻くように笑って過ごした。「笑」または「w」を打つのはあまりにも簡単で、顔は泣いているけど指は笑っている時も多々あった。私はSNSに了承と理解と慰めを求めるかのように赤裸々に自分の経験と状況を告白しながらも、時々「生(せい)」の明るい部分だけを編集して投稿した。なのに、そういう努力が一言で否定されたと感じた。もちろん、そういう意図があったわけではないというのはその場で十分わかっていたが、その言葉が私には心を貫通してポッカリと穴を空けるほど鋭かった。部屋の扉を閉じて音も立てず何日もただただ泣いていた。

なぜ笑ったら裁判に不利になるの?変態に会って、信じられないことをされて、何年もかけて築いてきたお城が崩壊したのも十分苦しいのに、日常をシェアする権利さえ奪われたように感じた。よく笑う人、笑うことが好きな人には「苦痛の賞味期限」がある。その期限が切れると、もう痛い辛い苦しいと言ってはいけない。期限切れの感情はさっさと捨てるべきだ。そう言われているような気がした。

人は傷付くと涙が出たり、痛くて辛くて苦しくて鬱にもなる。とても自然な現象である。しかし、その傷と向き合う姿勢は自分で選択できる。

私は泣きたい時は泣きながら、元気で幸せに笑顔で生きると決めた。苦しい経験はすべて、他人の気持ちを理解できる優しい人に成長させてくれるんだと思って受け入れたい。そう思ってもやっぱり痛いときは無理して強がらず痛いと言って泣きたい。私はこれからも悲しみと鬱、喜びと幸せを言葉と絵で表現したいし、笑える日常のために色々工夫したい。たまには馬鹿みたいに、たまには少し損するように生きたい。何かを始めると完璧を求める傾向があるけど、人生においては抜け目を大事にしたい。現実には完璧な人より完璧ではない人が断然多いし、私も器が小さくて考えが浅い不完全な人間だから。私は抜け目があった方が、もっと寛容になれるし、新しい物事や知識が受け入れやすくて人生が鮮やかになるんだと思っている。

最近またSNSに色んなことをシェアし始めた。Instagramには公開用のアカウントを作った。@ sumomo_juiceと@ sumomo_archive の二つで、それぞれ絵と日常で使い分けている。途切れてしまった縁がまた繋がったり、既存の縁がもっと深まったり、新しい縁と繋がったりする。今まで数えきれないほどたくさんの人に傷付いて挫折してきたけど、私は相変わらず人が好き。やっぱり、繋がっていたいん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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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omo
#직장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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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스팀시티에서 처음 보았지만 저에게 남은 수모모님은 밝음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물론 글들을 보며 이런저런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됐지만요.

밝음을 지녔다는 건 아마 제대로 보신게 맞을거에요. 제 어머니가 정말 긍정왕에 낙천적이고 수많은 역경과 핍박 속에서도 밝음을 잃지 않고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어머니가 제게 그런 면을 많이 물려주신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삶이 주는 시련 앞에 의연하지를 못하죠. 그래서 이렇게 약한 소리도 하고 어리광도 피우고 합니다 ㅜ

“왜 피해자가 웃고 사는 모습이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되는 건데??”
무슨 재판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나라에는 ‘해괴한 법의 잣대나 관념’이 적지 않더군요.
특히 인권이 거론될 경우에 그렇습디다.

우선, 학교폭력에 대한 논란에서 가해학생 편을 드는 ‘또라이 인권론자들’이 있습니다..
교과부의 ‘가해사실의 학생부 기재 방침’에 친전교조 교육감들이 반대를 했었지요.
“가해학생의 대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지랍니다.

잔혹하고 상습적인 성범죄자에게 ‘물리적 거세’를 도입하는데 대한 반론도 있었습니다.
문명인이기를 포기한, 아니 인간이기를 포기한 강간범에게 “문명인의 잣대를 대야한다”는 게 이 나라 인권론자들의 주장이지요.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서는 “거론 자체에 경기를 일으키는” 세력들도 있구요.

그런 거 볼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이 나라, 상식이 통하는 사회, 맞어?”

제가 진행하고 있는 재판은 일본인을 대상으로 일본의 사법부와 함께합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에도 ‘해괴한 법의 잣대나 관념’이 곳곳에 있지요. 그래서 더 이 재판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사례하나 늘리는 것만으로도 일본에서 세금 내고 사는 사람의 인권, 여성의 인권,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이 조금은 나아질거라 믿으며...

아, 그렇군요.
그런 믿음에서 하는 소송이라면 인생의 많은 것을 기울일 가치가 있겠지요.

“소기의 성취 이루기를” 온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으로 즐거운 사람이 아니죠. 즐겁다,괴롭다,슬프다는 것은 느낌이고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죠. 어찌보면 자신의 순간 순간 일어나는 감정을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사람이면서 그 감정을 스스로 자족할수 있는 사람이겠죠.

자존감이라는 것도 다른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것도 아니죠.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혹은 그런 상황,세태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스스로 번뇌를 느끼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오로지 s모모님의 마음이죠. 그 마음이 직접원인이고 다른 것들은 모두 간접원인일 뿐이죠. 재미있고도 어려운 것이 마음의 주인은 나인데 그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도 나의 마음이죠. 그래서 인생은 sea of heartbreak이죠. 하지만 see of heartbreak가 되면 자신의 마음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번뇌를 보지 못하고 번뇌에 빠져서 그번뇌가 좋든 싫든 탐닉?하면서 본다고 착각하기 때문이죠.

과거는 지나가서 없고 미래는 오지않아서 없습니다. 오직 현재만 있을 뿐이죠. 그래서 오!늘~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삶에 충실하려고 노력할 뿐이죠. 그 삶은 지금의 마음살기이죠. 험학(험하고 학대하는 자신의 마음)한 과거로 지금의 마음에 殺氣를 띄우지 않는게 좋죠.

그래서 오!늘~ 이라고 하는군요. 전 번뇌와 雑気 가 정말 많은 인간인 것 같아요.

재미있고도 어려운 것이 마음의 주인은 나인데 그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도 나의 마음이죠.

그러게나 말이에요!
음악 잘 듣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