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②

in #kr-policy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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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17년 봄에 작성한 것을 재가공한 것입니다.


분석 대상 칼럼을 검토한 결과, 다음 네 가지 특징을 중요하게 추출해낼 수 있었습니다.

​첫째, 대다수 칼럼이 세계경제포럼을 ‘4차 산업혁명’ 논의의 발원지로서 인용하며, 이 개념의 공신력과 국제적인 영향력을 드러내려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대부분 칼럼이 세계경제포럼에서 제시된 산업혁명의 역사 규정을 공인된 사실처럼 받아쓰면서 4차 산업혁명이 야기할 변화를 역사적 과정의 필연적 결과인 것처럼 서술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 4차 산업혁명을 다루는 칼럼 대부분이 우리에게 익숙한 ‘기술결정론’의 관점을 따르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을 규정할 때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자율주행자동차 등 기술 용어를 나열하면서, 이들 기술의 파고가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서술합니다. 4차 산업혁명을 ‘쓰나미’, ‘파도’, ‘물결’, ‘바람’, ‘밀물’ 등 자연현상을 가리키는 상징과 어휘를 사용해 비유함으로써 개인과 국가의 위기감을 고조하고 과거와의 단절적 계기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셋째, 칼럼의 담론 텍스트 내에서 기술적 대상과 인간은 주로 대립 관계에 놓입니다. 여기서 기술적 대상이란 19세기의 방적기나 21세기의 인공지능 등이고, 인간은 오늘날 육체적·지적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로 묘사됩니다. 대부분의 텍스트가 기술적 대상과 인간 노동자를 대립 구도로 놓거나, 기술을 단순한 중립적 도구로 바라봅니다.

​넷째,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등 해외 강대국들은 과거의 발전주의 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와 경쟁 구도 안에 놓이게 됩니다. 오늘날 미국과 독일은 여전히 한국이 한시 바삐 추격해야 할 혁신의 모델로, 중국은 우리나라를 곧 따라잡거나 추월할지도 모르는 추격자로 묘사됩니다.

​이와 같은 4차 산업혁명 칼럼 텍스트의 네 가지 주요 의미체계상 특징을, 항목별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특징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 ‘세계경제포럼’이라는 출처로부터 받아쓰기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하여 작성된 대다수 칼럼은, 2016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가 ‘4차 산업혁명의 이해’라는 주제로 열렸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최근 폐막한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의 주제는 4차 산업혁명이다. 4차 산업혁명은 다양한 기술 융합이 일으키는 혁명적 변화로 정의할 수 있다. 이를 이끌 기술로는 인공지능(AI)․로봇․자율주행차․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바이오 등이 거론된다. 다보스포럼이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로봇과 인공지능 활용이 확산되면서 앞으로 210만 개의 일자리가 생기기는 하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500만 개에 가까운 일자리가 없어진다. 기존 1차 혁명의 증기기관을 통한 기계화, 2차 혁명의 전기를 활용한 대량생산, 3차 혁명의 정보화․전산화 등과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이 코앞에 다가온 것이다. 다보스포럼은 인공지능이 화이트칼라의 직업을 대체하는 시기를 2025년,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리는 시기를 2026년으로 전망했다. (한기석, 서울경제신문, 2016년 1월 27일자)

스위스 세계경제포럼이 4차 산업혁명 논의의 발원지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서울경제신문 한기석 논설위원은 이것이 단지 국내에 한정된 이슈가 아닌 세계적 정책 의제임을 강조합니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발간한 『일자리의 미래』(The Future of Jobs) 보고서, 세계경제포럼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독일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밥 등을 인용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칼럼의 필자들 또한 위의 글처럼 세계경제포럼이 규정하는 산업혁명의 역사를 공인된 ''사실''로서 인용하며 4차 산업혁명과 그것에 따르는 일자리의 소멸 등이 역사의 진행 과정에 있어 필연적 결과인 것으로 기술합니다. 송성수(2017)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역사학계의 엄밀한 검증을 거친 개념이 아니라 세계경제포럼의 특수한 산업혁명사 관점에서 나온 일종의 작업가설임을 지적합니다. 1차 산업혁명과 2차 산업혁명이 역사학계 등에서 학술적 용어로 정착된 용어인 데 반해, 3차 산업혁명과 4차 산업혁명은 주로 미래학 관련 논자들이 제기한 일종의 작업가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4차 산업혁명의 논자들이 4차 산업의 핵심 기술과 시기 등을 정확히 제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이 사실상 3차 산업혁명의 연장에 가깝다고 주장합니다(송성수, 2017: 26-27).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개념적으로 옳든 그르든 간에, 저는 이런 기사를 읽을 때마다 한편으로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시대를 잘 못 따라가고 있으면 어쩌지'하는 중압감을 느낍니다. 고작 8, 9년 후면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 대부분을 대신하게 되고, ‘산업화’나 ‘정보화’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회적 충격을 경험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데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이 저 말고도 많지 않을까요?

1차 산업혁명을 기계제 생산과 증기기관, 2차 산업혁명을 대량 생산과 전기, 3차 산업혁명을 전자공학과 정보기술, 4차 산업혁명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시기(Baweja, et al., 2016)로 규정하는 세계경제포럼의 이행 가설은 칼럼에서도 공인된 사실처럼 널리 통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정은 ‘산업혁명’의 각 단계에서 특정 기술과 에너지원이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전제한다는 점에서, 제 2물결의 에너지 체제가 지속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도래한 제 3물결과 이것이 사회 시스템에 가져오는 변화를 논했던 토플러식 ‘제3물결론’과도 유사해 보입니다(토플러, 1990). 다시 말해 ‘제 3물결론’과 ‘4차 산업혁명론’은 기술 변화가 사회 구조의 총체적 패러다임 변화를 이끄는 동인이라는 관점을 공유합니다.

국내 주요 신문 칼럼의 필자들은 이러한 세계경제포럼의 4차 산업혁명의 기술주의적 이행의 규정을 손쉽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근거로 활용하면서 기술에 의한 사회의 변화를 강조합니다. 흥미롭게도 세계경제포럼의 이와 같은 기술주도형 경제혁명의 역사 서술은 2016년 12월에 발표된 『지능정보사회 중장기 종합대책』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새로운 사회상을 가리키는 정책 용어인 ‘지능정보사회’는 세계경제포럼의 4차 산업혁명 규정에서와 동일한 기술적 요소인 ‘지능정보(AI)기술’에 기초하여 규정됩니다. 지능정보기술이란 인공지능 기술 및 데이터 활용기술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러한 기술이 “산업 구조의 대대적 변화”와 “경제·사회 전반의 ‘혁명적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입니다(관계부처 합동, 2016). 이처럼 기술이 경제와 사회 전반의 변화를 초래한다는 식의 단순한 인과론적 서술은 다음 항목에서 논하려는 ‘기술결정론’의 관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2) 기술결정론과 자연의 유비적 숙명론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로 지칭되는 일련의 변화는 ‘쓰나미’, ‘파도’, ‘물결’, ‘바람’, ‘밀물’ 등의 자연 현상에 유비되곤 합니다. 칼럼의 필자들은 4차 산업혁명을 ‘쓰나미’에 묘사하면서 현재의 기술변화를 엄청난 강도의 피할 수 없는 변화로 일반 독자가 인지하게끔 유도하는 효과를 유발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에 따라 현재는 앞으로의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야만 하는 매우 급박한 시점이므로 다른 일로 꾸물댈 시간이 없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레 이어집니다. 이상훈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의 칼럼을 볼까요?

ICT의 세계는 기술 파도가 쉼 없이 중첩돼 거대한 쓰나미를 만들며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 ICT 제1의 파도는 1980년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이었다. 제2의 파도는 1990년대 인터넷, 월드와이드웹(www), 브로드밴드에 의한 사이버 공간 생성과 거대한 ‘매개 장터’의 출현이었다. 2000년대에 시작된 ‘모바일 빅뱅’과 스마트폰 범용화로 촉발된 제3의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연이어 새로운 파도를 만들어 내고 있다. 모바일 빅뱅으로 촉발된 사물인터넷(IoT)으로 말미암아 물리적 공간과 사이버 공간의 ‘초연결성’이 확장되고, IoT에서 점화된 빅데이터는 클라우드 기반 위에 AI가 더해지는 ‘초지능성’의 진보로 나아가고, 이렇게 중첩된 기술 파도는 이미 슈퍼 쓰나미급으로 확대돼 몰려오고 있다. (…) 세계 최고 수준의 지능정보국가 실현을 도모하는 국가미래 정책을 추진해야 할 중대하고 급박한 시점이 지금이다. (…) 우리가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대분기, 즉 ‘위대한 행운의 기회’를 선점하고자 한다면 더 이상 꾸물거릴 시간은 없을 것이다. (이상훈, 전자신문, 2016년 4월 17일자)

위에 인용한 글은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무엇보다도 ICT 기술 변화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이라는 첫 번째 파도, 월드와이드웹과 브로드밴드에 의한 두 번째 파도, 모바일 인터넷을 통한 세 번째 파도에 이어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 인공지능으로 점점 확대되는 네 번째 파도가 중첩된 ‘쓰나미’가 4차 산업혁명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연결성’ ‘지능성’ 등 4차 산업혁명의 특징에는 ‘초’라는 접두사가 붙어 있다보니 매우 강력한 변화라는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듭니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기술 진보가 경제와 사회 시스템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단순한 인과론적 서술이 그 뒤를 잇습니다. 이 같은 급박한 기술변화의 상황 속에서 ‘지능정보기술’ 개념을 중심에 두고 “지능정보국가”라고 하는 미래 국가상을 설정하면서, 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에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 ‘급박’하게 서둘러야 한다고 재촉합니다. 아직 그 정체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무언가가 닥쳐오고 있다는 ‘위기감’을 환기시키고, 정확히 무엇을 서둘러야 하는지에 관한 언급은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이 같은 서술방식은 자연 현상의 유비를 통한 숙명론과 기술결정론을 부추깁니다. 이 칼럼은 4차 산업혁명을 ICT 기술의 파도가 휩쓸고 또 다른 파도가 중첩되어 새롭게 등장하는 거대한 자연 현상으로 보며, 그러한 4차 산업혁명의 기술 파고가 인류의 경제․사회 시스템의 거대한 변화를 예고한다고 주장합니다. 기술결정론은 기술이 사회적 힘과 무관하게 중립적으로 발전한다는 가정, 기술이 사회 변화를 초래한다는 주장, 과학과 기술이 자율성을 갖는다는 입장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Wyatt, 2008: 167), 대부분의 학문 분야가 복잡성과 상호 작용을 염두에 두는 오늘날에는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관점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스스로를 기술결정론자라고 나서서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결정론적 관점은 여전히 우리의 사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바처럼, 1980년대 ‘제3의 물결’이나 ‘정보사회’를 논했던 미래학자들의 대부분 논의가 바로 이러한 기술결정론의 대표적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다음 한 비판적 기술연구자의 논의는 숙명론적 기술주의의 실체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흔히 미래학자로 분류되는 앨빈 토플러와 다니엘 벨의 제3물결론과 정보화사회론은 (…) 먼저 첨단기술이 현대사회의 성격을 규정함을 전제한 후에, 인류의 역사가 제1물결=농업사회, 제2물결=산업사회, 제3물결=정보화사회로 변천해 왔음을 주장한다. 정보화사회에서는 기존의 기계 기술(mechanical technology)이 지적 기술(intellectual technology)로 대체됨에 따라 경제활동, 사회구성, 정치형태, 생활양식, 가치판단의 기준이 급격한 변동을 겪는다(송성수, 1995: 15)

정보화사회론은 정보기술로 인해 경제, 사회, 정치가 변화한다는 기술결정론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처럼 기술 패러다임 이동으로 인해 사회 구조가 급격히 변화할 것이라는 주장은 4차 산업혁명론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지요.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로 등장하는 드론, 3D 프린터, 로봇,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공유경제 플랫폼, 인공지능, 합성 생물학 등은 모든 사회가 동등하게 보유하거나 똑같은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며,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효과를 가져다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기술의 구체적인 발전 양상이나 효과 등은 개별 사회와 개인에게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중립적인 기술의 발전이 모든 사람에게 이상적인 미래를 보장해준다는 전형적인 기술결정론의 논리”(송성수, 1995, p.16)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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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헌>

관계부처 합동. (2016). 「지능정보사회 중장기 종합대책」.
송성수. (1995).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송성수 편역, 『우리에게 기술이란 무엇인가』. 녹두. 13-47.
송성수. (2017). 「역사에서 배우는 산업혁명론: 제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여」. 과학기술정책연구원 STEPI Insight vol. 207.
슈밥, 클라우스. (2016). 『4차 산업혁명』. 송경진 역. 새로운현재.
이상훈. (2016. 4. 17). “새로운 ICT 파도, 제4차 산업혁명을 위하여”. 전자신문.
토플러, 앨빈. (1994). 「제3의 물결」. 원창엽 역. 홍신문화사.
한기석. (2016. 1. 27). “4차 산업혁명 맞을 채비 하고 있나”. 서울경제신문.
Baweja, Bhanu et al. (2016). “Extreme automation and connectivity: The global, regional, and investment implications of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UBS White Paper for the 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 2016.
World Economic Forum. (2016). The Future of Jobs : Employment, Skills and Workforce Strategy for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Global Challenge Insight Report. http://reports.weforum.org/future-of-jobs-2016
Wyatt, Sally. (2008). "Technological Determinism Is Dead ; Long Live Technological Determinism". Edited by Edward J. Hackett, Olga Amsterdamska, Michael Lynch and Judy Wajcman, The Handbook of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 Third Edition. MIT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