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론. 포르노에 관한 추가논의

in #kr-writing6 years ago (edited)

보론 1. 포르노는 정신을 오염시키는가?

포르노가 정신을 오염시킨다는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특히, 포르노가 실재의 의도적 왜곡과 과장, 봉합에 의존한다는 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른다면 말이다. 포르노가 실제 성행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주장이 있다. 이것은 분명 타당한 지적일 것인데, 포르노의 문법이 전제하는 성적 관계의 완전성이 마치 실재인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면 현실의 삶과 부조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포르노 배우의 연출된 행위를 현실에 옮기려는 시도들을 떠올려 보라).

그러므로 역시나 포르노가 인간의 정신을 오염시킨다는 판단은 타당한 것일까? 우리는 이 문제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두 가지 논점이 있다. 포르노가 '현실'과 상충한다는 표현과, 포르노가 정신을 '오염'시킨다는 표현의 전제야말로 진정 의심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포르노가 현실과 상충한다는 표현은 현실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타당한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대부분의 공론장은 오히려 가상공간에 있으며, 갈수록 우리가 '가상'으로 판단했던 것과 '현실'이라 판단했던 것 사이의 간극이 줄어들고 있다. 물론 피와 살이 존재하는 것은 '이쪽 현실'이다. 그러나 흔한 상상을 해보라. 언젠가 정신을 가상현실에 심을 수 있게 된다면 어떠한가?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인터넷의 발달은 이미 현실의 경계를 애매모호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아니면 적어도, 지금의 추세를 극단까지 밀어붙인다면 말이다. 존재론적 조건은 항시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염두에 둔다면 포르노가 현실과 상충한다는 표현은 보다 예리하게 가다듬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실재의 본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다고 말해져야 한다. 물론 지나친 단순화는 왜곡이다.

두 번째는 포르노가 정신을 오염시킨다는 표현인데, 이 판단의 문제점은 '정신'을 완벽하고 순수한 어떤 실체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순수하고 올곧으며 완전할 수 있는 정신에 외부에서 불순물인 포르노가 끼어들어 망친다는 식의 함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에 '오염'되어있지 않은 정신이 존재하는가? 순수 정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어떤 종교적 당위성만을 주장하게 된다. 정신분석은 이미 이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숙고할만한 견해들을 제시해왔는데, 인간의 정신은 이미 분열되어있고 어긋나있으며 온갖 기묘한 것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정신분석이 인간의 정신을 무질서한 혼란의 '잡탕'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정말 기묘한 사실은 그토록 왜곡되고 분열되어있는 인간의 정신이 자신만의 문법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사실이었다. 아무튼 정신은 이지러져있고 이미 온갖 외부적인 것들과 뒤섞여있으며, 인간의 본질이라 할 만한 것은 인간 자신 내부에 순수한 상태로 보존되어있지 않고 오히려 ‘바깥’에 있다. 가령, 사유는 언제나 자신을 초과하는 것의 영향 아래 있지 않는가? 의식은 언제나 무의식의 분출에 의해 절단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현대철학이 외치는 '탈중심화된(decentered)' 주체의 의미였다.

따라서 우리의 논의로부터 윤리적 판단을 끌어낼 수 있다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주장에 국한되어야 한다. 포르노는 그것을 잘라내고 조작하여 완전한 성적 관계가 가능한 것처럼 상연한다. 그러나 실재는 분열과 갈등으로 가득하다. 인간의 성적 관계 또한 마찬가지이다. 만일 성적 관계에 대한 포르노의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그 관계는 쉽게 파탄날 것이다. 하지만 불완전성이란 숙명이라는 사실을, 오로지 완전성을 향한 불완전성의 과정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수만 있다면, 주체적 판단 아래 포르노를 즐기는 일이 무슨 문제겠는가? ― 첨언하자면, 그것이 인권과 같은 보편적 가치와 충돌하지만 않는다면(가령 데이트폭력이나 몰래카메라, 아동포르노 등을 상기하라).

우리는 스피노자가 보여준 윤리적 단언을 다시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다(Sed omnia praeclara tam difficilia, quam rara sunt)." 포르노적인 것은 실패와 불가능, 상처와 머뭇거림의 가치를 절하함으로써 삶을 밀실 속에 유폐시키려는 경향성이 아닐까. 어렵게도, 인간에게 늘 얼마간의 환상이 필요하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보론 2. 포르노와 성적 흥분

포르노에 수반되는 성적 흥분이 곧 인간의 성적 흥분의 일반적인 양상으로 이해 되어서는 안 된다. 포르노는 삶의 유기적 고리들을 끊어내어 독특한 상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극대화하여 이형(異形)의 욕망을 만들어낸다. 다만, 나는 여기서 '정상적' 성생활이라는 기준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이트에 의해 이미 간파된 바 인간의 성적 욕망은 처음부터 도착적이다. 이성 간 성기삽입만이 성생활의 유일하게 정상적 모습일 수는 없다. 애초에 키스, 애무, 항문성교, 페티시즘, 동성애 등 이 모든 요소들은 처음부터 인간의 자연에 속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다형도착(多形倒錯)적 성욕은 포르노가 만들어내는 성적 흥분과는 상이하다. 포르노는 실제 인간관계를 구성하는 갈등과 분열, 다채로움과 탈(脫)성욕적인 요소들을 모두 지우고 하나의 흠 없이 매끄러운 성행위를 삶의 중심에 놓으려 하기 때문이다. 특수한 부분만을 잡아채고 나머지는 생략함으로써 끊임없이 부분의 전체화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인식 수준에서의 강요에 있다. 포르노를 이미지의 폭력이라 부를 수 있다면 의도적으로 축소된 삶을 전체로 오인하끔 유도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포르노에서 드러나는 성적 욕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세심한 이론적 틀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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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출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프로이트에 의해 이미 간파된 바 인간의 성적 욕망은 처음부터 도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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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가 '현실'과 상충한다는 표현과, 포르노가 정신을 '오염'시킨다는 표현의 전제야말로 진정 의심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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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실재의 본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다고 말해져야 한다

Can I use this quote in my posts?

Well, sure you can but I wonder if you can speak in korean. Can you?

포르노에관하여 흥미있게 서술해 주셨군요. 포르노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포르노를 보는 자가 마음 안에서 그것에 포로가 될수 있다는게 문제겠지요. 지나친 육체 감각에 의한 탐닉심으로 정신이 지배될수 있는 문제즈음?

영성적 차원에서의 견해입니다. 대개 집착/탐닉은 그 사람 존재 자체의 온전한 깨어있음을 방해시킬수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