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생각하지마. 그냥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면 되지."
어떻게 하고 싶은 일 앞에 '그냥'이라는 말이 붙을 수 있지? 그냥이라는 말은 '더 이상의 변화가 없는 그 상태 그대로'를 뜻한다. 때문에 나는 저 문장이 영 어색하게만 들린다. 나는 내 삶에 변화가 없길 원하지 않는다. 아주 역동적이진 않더라도 겨울이면 눈도 내리고, 봄이면 꽃도 피는 변화가 좋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말을 처음 들었던 때는 초등학교 1학년, 아니 그보다 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험해 본 일, 배운 것이 얼마 되지도 않는 어린 나에게 어른들은 너무 어려운 질문을 했다. 다행히 그 어려운 질문을 통과할 수 있는 답은 정해져 있었다. 대통령, 판사, 검사, 변호사, 선생님 ... 이렇게 답하면 대개 어른들이 낸 퀴즈에 대한 답을 맞춘 셈이었다.
수도 없이 들었다. “너의 재능을 찾아라. 그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된다.” 혹은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면 그게 재능이 된다.” 이에 몇몇 또래는 자신들의 재능을 일찍 찾아, 일찍 관련 특수 목적 학교로 진학을 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나는 모든 것을 웬만큼 즐기고, 웬만큼 습득할 줄 아는 아이였지, 어느 것 하나 특출난 분야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아주 없던 것은 아니다. 조각을 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미술에 관심이 있었다. 유년기에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TV에서 혹은 전시회에서 본 작품들을 따라 만드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렇게 미술 교육 한 번 없이 교내 대회, 교외 대회에서 몇 번 큰 상을 받았다. 또 피아노를 배울 때도 또래보다 빨랐고, 악보도 금방 외웠다. 피아노 연주 역시 몇 번의 대회에서 좋은 성적으로 입상했다. 이에 고등학교 진학 전까지 여러 번 예고 진학을 권유 받았었다.
물론 부모님의 반대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내 스스로 그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남들이 하는 만큼, 웬만큼만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웬만큼 하는 것으론 만족하지 않았다. 만족하지 않았기에 흥미도 떨어졌다. 그렇게 나는 어느 하나 제대로 된 재능 없는 평범한 아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긴 시간이었다. 끊임없이 재능 있어 보이는 남들과 비교하며, 움츠러들기를 반복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어려웠다. 어차피 웬만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어린 시절 어른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
이 질문이 어려웠다. 영화 보기, 음악 감상하기, 미술 작품 보기, 책 읽기로 답을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답들은 내게는 결코 충분하지 못했다. 나는 질문을 바꾸었다. 어떤 일을 할 때 가슴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끼는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했던 경험은 언제였던가? 어떤 일을 할 때 뿌듯함을 느끼는가?
나는 누군가와 내 생각을 공유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 내 이야기에 공감을 해주거나, 반대를 해도 좋다. 그것은 내 이야기가 상대방에게 읽힌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나는 여러 혼재된 생각들을 하나의 문장으로, 단락으로, 이야기로 엮어낸 결과물을 볼 때 뿌듯함을 느낀다. 순서, 배치와 같은 글의 구조에서부터 연결어, 종결 어미와 같은 작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신경 쓸 부분이 많다. 또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읽어 보며 부자연스러운 문장과 단어를 골라내야 한다. 결코 한 번에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수고로운 이 일들이 결과물로 나타날 때 뿌듯함을 느낀다. 특히 이 결과물을 누군가가 읽거나, 또 고개를 끄덕이며 피드백을 줄 때 나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 경험의 축적
이렇게 답을 찾게 된 것은 질문을 바꾼 탓이기도 하지만,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경험이 축적된 까닭이기도 하다.
내 삶을 통틀어 생각하면 나는 이 일과 관련해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했다.타인이 쓴 글을 보고, 수정하고, 기준을 세워 평가하는 일부터 몇백 장 분량의 글을 읽고 또 읽어가며 퇴고하는 일을 했다. 또 내게 생각을 요구하면 며칠을 고민한 끝에 주어진 분량에 맞춰 글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대부분 긍정적 경험이 되어 돌아왔다. 힘들게 이뤄낸 결과물에 대해 인정과 보상이 뒤따랐다. 나는 뿌듯함을 느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일들이었지만 이 경험들이 얼마간 쌓이고 나서 나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내 기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재능이 있든 그와 관련한 지속적인 경험 없이는 그 재능은 고인 물이 될 뿐이다. 물이 마르거나 물이 고이지 않도록 계속 새로운 물을 공급하는 상쾌한 경험. 재능을 살려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한다면 그 선택에서만큼은 남들의 인정이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내가 고이지 않는 물을 보며 기쁨을 얻으면 그만이다. 이것이 재능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내가 내린 나름의 답이다.
이제야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니? 라는 질문에 답을 찾았다. 나는 내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일이 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삶의 기쁨, 존재의 의미, 인생의 품격을 찾으려고 고민하는 모든 분들의 건투를 빈다.
그 무엇도 의미 있는 삶을 찾으려고 분투하는 그대들을 막아서지 못할 것이다.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中)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네 번 읽고 나서야 비로소 과연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찾게 된 첫 번째 답을 나름대로 기록했습니다.
청년기의 핵심 과제는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삶의 청년기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깊이 고민하고 찾은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저는 이 공간이 그 준비의 시작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여전히 제게는 질문이 많이 남아 있고, 답을 찾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평생 하고싶은 일이라는 게 이거다 싶었는데 다시 고민되는 순간이 찾아오더라구요. 그래도 지금 또 다시 그 답을 찾기 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힘내세요! 응원하겠습니다.
"답"을 찾아나가는건 평생에 걸쳐서 찾아야할 것인 것 같습니다 .. ! 사람 인생사에 "답"을 찾으려고 하는것이 욕심일까요 ?
@nps0132 한 질문의 답은 또 다른 질문을 낳고 그렇게 평생에 걸쳐 나만의 답을 찾으며 사는 것이 삶이겠지요? 공감합니다. 혹 욕심이더라도 내 삶이기에 욕심 부려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답도 내가 정하는 거니까요. 댓글 감사합니다 :)
@bintimes 자신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사람만이 그 다음 답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응원과 댓글 감사합니다! :)
그렇죠..! 저도 그냥이라는 말이 항상 너무 어색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그냥"이라는 말이 있을 수 있지?!
사실 진짜 가슴 뛰는 일을 찾으라는 것도 저는 잘 모르고 하는 소리 같아요. 누구에게나 가슴 뛰는 일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어떤 사람들은 소소한 행복함을 더 좋아할 수 있으니까요 :)
아니, 그나저나 스팀잇이 완전 천직이신데요?!
앞으로 좋은 글 많이많이 부탁드립니다.
가슴 뛰는 일, 소소한 행복 그 어떤 것이든 삶의 주체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좋죠! 하지만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소소한 것인지 가슴 벅찬 순간들인지 알기 위해서도요! (사실 일상은 대부분 소소한 행복들로 채워질 때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스팀잇이 천직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생존 신고 하겠습니다! 댓글과 응원의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
제가 무얼 좋아하는지 알게 되기까지 참 힘든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명확하게 내가 무얼 좋아한다고 자신할 순 없지만요.
ooooing님은 일(경험?)을 하면서 무얼 좋아하는지 찾게 되신 것 같네요. '나름의 답'을 내릴 수 있었음을 축하드려요. 앞으로 이 공간에서 좋은 글 자주 써 주세요. 공감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의 내면에 있던 이야기를 하나씩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그에 대한 확신도 생기는 것 같아요. 제 경험에 비춰 본다면 ‘경험’은 분명 중요한 것 같아요. 댓글 감사합니다. :)
응원 할게요!
응원과 댓글 감사합니다:)
oooooing 님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 이라는 질문을 좀 더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꾸고 이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이 너무 멋있습니다. 멋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질문이 저에게도 무척이나 어렵게 여겨졌었기 때문일거에요. :-0
부족한 글이지만 magical-salt님께서 답을 찾으러 가실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좋겠어요. 답을 찾는 과정을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ㅎㅎ
저도 요즘 많이 묻는 질문이에요. 언급하긴 유시민 작가의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자신의 답을 찾으시길 응원하겠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