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승 만감

in #kr-writing6 years ago

개통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초록빛 산뜻한 수서발 고속열차에 실려 여정을 채근하는 밤, 빗발이 어리더니 몇 줌의 빛이 터널 속으로 빨려갔다 나오고 나서는 이내 가속도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열흘 남짓, 고전 티벳어를 연찬硏鑽했던 계룡산 자락의 어느 대학에서 동대구역까지 대중교통만으로 3시간 남짓 만에 이르렀다. 예수재림을 외치며 나를 바라보는 전도사의 눈빛을 빗겨 길을 재촉했다. 짐 진 어깨는 빠질 것 같은데 환승센터 위의 여행자에게는 지금 신도 부처도 없다. 흐느적거리며 플랫폼으로 굴러들어갔다. 예약해 둔 승차권을 스마트폰의 어플리케이션으로 열었다. “삑-“ 한 해가 멀다하고 좋아져만 가는 세상에 몇 마디 말을 보태면서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을 켰다. 옆 차의 ‘칼치기’에 가슴 졸이고 뒷 차의 추월에 없는 머리를 쥐어 뜯을 일 없이 전자책을 보고, 문자를 보내고, 생각을 다잡는 나만의 선원. 대중교통 안은 이렇게 일상이 되었다.

운전면허증이 더 이상 ‘자격증’이 되지 않는 시대에 몇 시간 넘도록 버스와 기차에 실려 다니는 일을 자청하는 나를 학부시절의 한 도반은 ‘게으르다’는 한 마디로 시덥잖은 내 이유를 박살냈다. 하지만 진심이다. 대한민국의 도시 간 및 시내 대중교통 연결망은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자비롭고도 은혜로우니, 국가고시인 1종보통면허시험 실기분야에서 다섯 번 연거푸 떨어질 정도로 공간감각 맹탕한 구보승驅步僧으로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 참, ‘구보승’ 이라는 단어는 면허증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뚜벅이 스님들을 위한 내 신조어다. 버스와 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마지막에는 뛸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 이 단어 저 편에는 셀 수 없는 걸음들로 불교사의 고개를 넘나들었던 기라성 같은 구법승에 대한 패러디의 속정도 담겨있다.

전차와 버스와 두 다리를 주축으로 종종 택시를 이용하는 구보승에게 여행은 여가가 아니라 작전이다. 시간, 운임, 환승을 비롯한 여러 조건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최선과 최악을 고민하다 보면 차선과 차악의 상황과 현실 사이의 타협속에서 이동’작전’을 결행하고나면 클리셰마냥 이불로의 퇴각으로 이 ‘작전’을 종료시키기 일 쑤 였다. 피로는 언제나 복병이었다.

수업과 목탁의 간극에 쫓겨 다니던 대학원생 시절, 과제발표 날 학교로 향하는 세 뼘 반의 급행버스 좌석은 언제나 최고의 편집실이었다. 스위스 유학 시절, 보이지 않는 국경선을 품고 있던 레만호(Lac de Leman)를 품고 움직이던 통학기차 안은 서툴렀던 내 불어와 그보다 더 서툴렀던 사람을 대하는 낯을 연마케 한 감사한 탁마의 넉넉한 터 였다. 네모 반듯한 알루미늄 차 안에서 혼자 염불도 아닌 유행가도 아닌 노래를 흥얼거리며 혼자 갔다면 만날 수 없었을, 사람들의 진한 내음들이 기차와 버스 안 에서 승복 깃 끝에 베여들었다. 동진출가란 이름으로 만나지 못했던 세간을 그 작은 몇 칸 속에서 채워나갔다.

사미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햇중 시절, 고도古都에 있던 캠퍼스 한 켠의 수행관에 입방했던 우리 큰방 대중들의 걱정거리 중 하나는 윗반 눈에 뛰지 않는 우리들 만의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구족계를 수지한 지 몇 년 된 비구부터 갓 수계한 사미까지 여러 연배와 승납의 대중 가운데에선 부득이 소임과 학업을 함께 하는 분들도 계셨기에, 이를 둘러싼 소공사는 종종 진지해지기 마련이었다. “중이 차가 필요한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라면서, 말을 탔다는 이유로 문수보살님께 혼났던 삼국유사의 경흥스님 이야기를 들먹거리던 구보승 그룹 가운데, 자신만의 네 발 달린 기름말이 없는 이는 마침내 나 혼자 뿐이다.

그럼에도 구보승의 길을 오래도록 포기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저 두 발로 땅을 걸어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셨을 부처님과 경전을 이고 지며 불퇴전의 신념으로 초원과 사막을 건너 다녔을 여러 구법승에 비하면 너무나 편리한 세상이라 이런 결심조차 겸연쩍지만 말이다. 우리의 땅을 걷고, 우리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은 채, 점과 점 사이의 선을 백안시 한다면 붓다의 말은 영원히 도솔천의 말로 남아버리는 것은 아닐지 무섭다. 근두운은 서유기에는 있었을 지라도 대당서역기에는 없다. 사중寺中의 주차장 한 켠을 메운 저 맥락없는 라틴어와 불어와 영어의 이름을 가진 자동차들이 누구를 위해 산골짜기 절에까지 왔는지 또 누구를 향해 바퀴를 굴려 향해갈지 모두가 지켜봐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몇일 전 구보승 생활 최대의 위기가 곧 찾아왔다. 은사스님과의 일상적인 안부통화 가운데 스님께서 별안간 1종보통면허의 유용성에 대해 언급하셨다. 이 은근한 면허취득의 압박은 한 동안 이어질 듯 하다. 이제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