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운 것에서 내가 남기고 싶은 것

in #kr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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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포인트를 전 과목 A+로 졸업한, 미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천재적인 장군이었던 더글라스 맥아더가 어떻게 말년에 크게 실수해 몰락한 과정을 살피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그는 서구의 장군이었지만 어려서부터 동양 문화권을 접한, 전후 일본 최후의 쇼군이나 불리었거나 또는 한국 군정의 통치자였던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상당히 비서구적 장군이었고 그가 이끄는 군 조직 역시도 카리스마 있는 독선적 보스 옆에 YES맨들이 득실거리는 전형적인 아시아 조직이었다.

내가 알기로 비서구 문화권에 민주주의는 없다. 그것은 요식일 뿐이며 결국 그 본질은 뛰어난 한 명의 보스의 카리스마를 중심으로 가신들이 결집되는 구조다. 그나마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성숙되었다는 한국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조직은 보스의 능력이 정점에 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며 때로는 도리어 의사 결정 권한이 나뉘어져 있는 서구적 조직을 위협한 사례도 많다. 카르타고의 한니발이나, 켈트족의 베르킨게토릭스 등 로마의 주적들을 포함하여, 중국을 포함한 많은 비서구권 국가들의 흥망성쇠는 명군의 존부로 결정되었고 우리는 그 역사적 변곡점에 있던 지도자들의 이름을 대부분 기억한다.

반면 세계를 지배한 영미의 지도자들 이름은 제법 상식이 있는 사람들조차도 소수의 이름만을 알고 있을 뿐이며 로마 집정관들의 이름은 대부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언어부터 정신 세계까지 모든 것을 뿌리부터 지배하는, 세계의 패권을 쥔 분명한 승자는 서구이며 추후에도 그것이 바뀔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비서구 문화권의 역사에는 인물론적 IF가 많다. 소위 "그가 죽지 않았다면."이다. 오고타이 칸이 죽지 않아서 몽골군이 서진을 계속했다면, 영락제가 조금 더 오래 살아 환관 정화의 해외 원정을 지지했다면, 연개소문이 조금 더 오래 살아 당나라의 침략에 오래 맞설 수 있었다면 등등 그 사례는 많다. 반면 서구의 역사에는 IF가 많지 않다. 그들은 달리 압도적인 능력을 가진 보스가 등장하지 않아도 그 시스템의 힘으로 다른 문화권을 윽박지를 수 있었으며,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적당한 인물들을 뽑아내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지도자의 죽음과 무관하게 계속 조직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지나간 위인들의 삶은 물론 주변인들을 관찰할 바에 따르면 그러하더라. 사람의 지성은 쭉 영민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어떤 일을 반복하면 그 능력은 계속 올라갈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대문호들이 위대한 저작을 쓰는 시기는 한정되어 있고, 위대한 조각가들의 마스터피스는 꼭 원숙한 시기에 완성되는 것만도 아니다. 사람은 사람이지 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 능력도 필연적으로 쇠퇴하게 되어 있다.

그나마 예술가라면 작품의 퀄리티와 같은 문제에 그치지만 조직의 지도자라면, 그 능력의 쇠퇴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된다. 특히나 필히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그 권력이라는 속성과 결합되면 더욱 그렇다. 나라를 구한 경제학도였던 포르투갈의 독재자 살라자르나,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 인민들의 염원을 짓밟고 반동적 제왕체제로 복귀한 원세계도, 젊은 시절만 보면 그 지성의 원대함이 언제까지나 샘솟듯 나올 것 같은 천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말년은 우둔하기 짝이 없었다. 박정희 역시도 유신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과 자녀들 모두 비참함을 겪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수의 인물이 힘을 쥐게 하는 보스 정치에는 한계가 있다.

민주주의의 실질을 정확히 믿는다는 것만은 아니다. 특히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대중들을 선동하여 집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나는 각자가 권한과 책임 하에 상호 견제를 할 수 있는 조직 구동원리로서의 민주주의의 실체가 있다고 믿으며, 그런 점에서 시진핑 독재 이전의 중국 집단 정치 체제나, 제왕적이며 권위적인 지도자가 등장할 수 없고 상호 간 타협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했던 서구의 의회제도를, 보스의 카리스마에 의존해야 하는 조직 문화보다 "우월한" 개념으로 인식한다.

이에 따라 나는 권위를 세우는 것을 의도적으로라도 지양할 생각이며, 보스의 카리스마를 세우지 않고도 성공해온 조직들을 계속해서 연구할 생각이다. 일견 독재자로 알려진 나폴레옹이나 스탈린이 결국 전쟁에서 상대편을 압도할 수 있던 이유로 나는, 편견과 달리 그들 면전에서 "야"라고 부르며 때로는 욕도 할 수 있는 오랜 친구들이 그들의 참모로 있었던 것에 주목한다. 1인자 모택동이 죽은 뒤에도 어쩔 수 없이 2인자 밖에 할 수 없었던 등소평도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태생적으로 거만한 인간으로, 내 어머니는 내가 세 살 때 이미 당신의 자녀에게 겸손을 달라고 신에게 기도했다고 한다. 그런 인간인 내가 어쩌다 성공한다면, 틀림 없이 사람들이 내 권위를 인정해주기를 바랄 것이고, 나이가 더 들어버리면 아마 전부가 다 내 실력이라고 착각하며 나빠지는 머리만큼이나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 나쁜 귀만 가지게 될 것이다. 멍청한 성공이 어떠한 파멸을 야기할지 명백하기에, 독단과 카리스마로 크게 성공할 바에는 차라리 평생 구멍 가게나 하는 것이 낫다.

고작 한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있는 정도의 조직 구성원들만을 갖춘 내가 이러한 포부를 밝히는 것도 참으로 웃긴 일일 것이다. 그래도 굳이 말하면, 내가 남기고 싶은 것은 보스로서의 성공이 아니라, 리더나 또는 철학을 남길 수 있는 구성원으로서, 설령 자신이 세운 조직에서 내 스스로가 축출된다고 해도, 그 조직은 지속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아시아 문화권에서 그런 것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겠지만 일정 궤도에 올라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다면, 소수 사람들이 권위를 세우고 승진을 보상으로 생각하며 위로 올라갈수록 무능해지는, 그래서 아주 똑똑한 보스가 운 좋게 등판하지 않는 이상 퇴보가 필연적인 한국 문화권의 기존 조직들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적어도 지적 유희이자 조그마한 임상 실험으로서, 이 연구는 실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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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맨에 의존하지 않는 체계가 지속성이 높고 안정적이긴 한데.. 문제는 1. 내가 키맨이면 다르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고, 2. 키맨이 적당히 유능하기만 해도 키맨 중심 체제가 더 효율이 높죠.

중단기적으로는 말씀하신 부분이 맞고 장기적으로는 결국 키맨이 없어도 돌아가는 조직 시스템이 더 우위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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