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ridasnail 께서 마련하신 공모전의 원래 의의와는 크게 상관없을...잡담에 가까운 글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아이들에게 무얼 가르쳐야할까 고민한다는 차원에서 오래전에 써둔 글을 정리해 올려봅니다. : )

반지의 제왕과 현차주식

Screen Shot 2018-05-10 at 9.42.33 AM.png

반지의 제왕 이야기는 절대반지 파괴라는 목표하에 결성된 반지원정대로 시작하는데, 원정대 모두가 공유하는 다층정 감정이 바로 절대반지를 향한 욕망과 두려움이다. 무한한 힘을 가졌으나 내재된 사악함이 결국 소유자와 세상을 파멸로 이끌기에 반드시 파괴되어야 할 절대반지. 원정대 멤버 모두 반지의 유혹에 홀릴 뻔한 위기를 겪지만 여차여차 그들은 운명의 산에 도착해 기어이 반지를 파괴한다.

얼마전 이 중간계 절대반지의 아우라에 필적할 물건을 현실세계에서 부러 찾는다면 바로 돈이 될거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십수년 전 현대차 주식을 사모으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장교로 군복무를 시작했던 나는 처음으로 월급이란 걸 받기 시작했고 시간도 아주 많았기 때문에 당시 유행하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랄지, "마케팅 천재가 된 맥스"랄지, 하여간 각종 재태크, 마케팅 등 경제 전반에 걸친 다양한 책들을 읽었다. 그러면서 그저 돈은 안쓰고 모아서 은행에 저금하는게 답이라고 생각해왔던 멍청한 자신을 책망하며 돈은 똘똘하게 굴려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라고 해도 좋을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리곤 과거의 나와 결별하겠다는 나름의 선언적 의미로 주식 계좌를 열고, 얼마 안되는 월급을 쪼개 현대자동차 주식을 조금씩 사모으기 시작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주식 계좌를 확인하는 시간과 빈도가 늘어갈수록, 주식 가격에 환호와 낙담을 오갈수록, 그전까지 믿어 의심치 않았던 돈의 가치 중립성 이랄까.. 그런 것이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더이상 나에게 돈은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면 그만인 그저 '책상 위의 물건' 따위가 아니었다. 돈은 나를 잠식해가는 절대반지가 됐다. 몇년이 지나 신의 도움이라고 할 밖에 없는, 골룸에게 손가락을 물어뜯기는 정도의 충격적 사건을 겪고 나서야 ~~자세한설명은생략한다~~ 겨우 절대반지에서 벗어났다.

그 후로 나는 돈을 달리 생각한다. 물론 돈(화폐) 자체는 가치가 없고 얼마든지 컨트롤 가능한 유용한 도구일 뿐이라는데 이론적으로 동의한다. 게다가 자본주의가 그나마 현실세계에서 작동하는 유일한 유의미한 이데올로기인 현대사회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돈(자본)이 작동하는 방식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로 직무유기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기 때문에 현상적으로 경험할 수 밖에 없는 돈의 악마성도 아이들에게 충분히 가르칠 생각이다. 그래서 그 무엇이든 돈으로 환원 가능할 듯한 이 사회에서 돈에 쉬이 가려지곤 하는 가치들과 사람들을 보는 눈을 길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