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기: 나는 태국에서 7년을 이방인으로 살았다 Feat. 7년간의 고난과 성장

in #kr8 years ago


▲ 카파도키아의 대자연속에서!

안녕하세요 @brianyang0912 입니다.

현재 저는 터키의 카파도키아라는 지역에 와 있습니다. 카피도키아는 지리적으로 터키의 중심에 위치해있습니다. 이곳에선 ATV, 트래킹, 열기구 등의 다양한 액티비티를 할 수 있으며, 열기구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곳으로 여정을 떠난다는 것은 항상 두렵기도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모로코란 나라를 가기 전에 혹시 모를 사고가 두려워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행자 보험을 들었고, 터키에 와서는 행여나 사기를 당하지 않을까 여행사를 통해 재차 가격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지금은 괜찮지만 오래 전 맨 처음 맨손으로 태국에 갔을때, 그곳에서 겪은일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한국어를 제외한 어떤 언어도 구사하지 못하였었고, 친구, 친지한명 없었던 그곳에서 7년을 살다 보니, 참으로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러한 과거의 위기들이 하나의 추억이 되기도, 교훈이 되기도 하였고, 어느새 태국은 저에게 제 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터키 여행을 하면서 당시의 상황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7살, 태국으로 떠나다

이 이야기에 대해선 이미 몇번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17살이란 나이에 저랑 연년생인 남동생 한명과 태국으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당시엔 태국이 어떤 국가인지도 몰랐고, 어디에 있는지도, 어떤 언어를 쓰는지도 잘 인식이 되지 않은 채로 무작정 영어를 배우겠다는 목표로 태국의 한 국제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학교의 규모는 정말 작았고,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총 120명이 안되는 작은 학교였습니다.

제 의지로 유학의 길을 갔기에 처음에는 작은 사소한 것들에 감사를 하며 살았었습니다. 그렇게 영어를 하지 못해 정규반에 들어가지 못하고, ESL (English as Second Language)라는 영어심화학습과정을 하면서 6학년 학생들과 수업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제 한국에 있던 친구들은 여느 고등학생과 같이 야자를 하고, 방과후 학습을 하느라 분주하던 때에, 저에겐 마치 시간이 멈춘마냥 진보없는 교육을 받아야만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행복했었습니다. 언어를 배우고자하는 욕구가 컸고, 실제로 눈에띄게 언어실력에 대한 향상이 있었습니다. ESL을 한 6개월 후, 그렇게 저는 정규반수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학기는 이미 한국친구들보다 한학기가 늦춰져있었고, 유학의 시간은 점점 버거워져만 갔습니다. SAT라는 시험이 부담으로 찾아왔으며, 학교에선 제가 원하는 커리큘럼을 제공해줄 형편이 안되, 이것에 대한 마찰이 몇번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 둘 친구들의 대학소식을 듣게되고, 대학문을 놓고, 그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없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슬슬 지치고 외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 군대때문에 태국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떠나는 날 공항으로 마중나온 친구들!

졸업, 그리고 대학교

국제학교였고, 외국인 학생들이 좀 있는 학교였지만, 학교의 규모가 너무 작았습니다. 제 나이 또래의 학생은 1~2 명뿐, 그리고 학교의 규모가 작다보니 친구들이 없었습니다. 태국에서 고1~고3이란 3년이란 시간을 보냈지만, 태국어는 관광객이 구사할법한 언어정도만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이방인이 아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학교라는 틀 속에서 영어만 구사하면 태국이란 세상 속에서도 충분히 이방인이 아닌 일반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나름 태국에선 가장 좋다는 명문대, 그리고 국제학부과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엔 외국인보단 압도적으로 많은 태국친구들이 있었습니다. 태국에 온지 3년만에 처음 접해보는 내 나이또래의 태국 친구들, 처음엔 어떻게 다가가야하리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 무리속에선 저는 완전한 이방인이었고, 이방인으로 살아갔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대학교 첫 오티때, 태국은 일반적으로 수십년간 이어져온 전통적인 관례에 따라 오티를 진행합니다. 한국처럼 술판을 벌리지는 않지만, 다양한 게임과, 선배들과의 시간, 레크레이션 등으로 진행되지만, 레크레이션은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입학을 하기 전부터 전 또다시 저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그 새로 접했던 문화는 온몸에 닭살이 돋을법한 그런 문화였습니다

알수없는 장단에 모두가 미친듯이 춤을 추는 것이었고, 단합을 위해 다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이상한 언어(?)를 외치며 읏쌰읏쌰 하기도 햇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얼굴에 분칠을하고, 낙서를하고, 각설이같은 옷을 입고 춤을 추는 그 시간이 저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 그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되었고, 태국생활 3년만에 본격적으로 태국이란 나라에서 살게되었습니다. 태국어가 하나도 안됬던, 태국어로 내이름 석자만 써도 칭찬받았던 그때가 대학교 1학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생활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 최초로 학교 총학생회장 선거에 나갔습니다!

국제학교는 다행스럽게도 보딩스쿨이었습니다. 학교 내 기숙사가 있어 그곳에서 생활을 하고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제 시간에 밥이 나오고, 잠잘 곳이 제공되었고, 제 책상, 라커, 침대 등이 제공되었습니다. 사실 상 학교생활만 하면 다른 것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을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스스로 독립을 하면서 제 상황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스스로 집을 구해야만 했고, 밥도 해먹어야했고, 모든것을 혼자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나름 내공이 생겨 척척할 수 있는 일들이지만 그때는 그게 너무 어려워 태국한인커뮤니티에 학교를 가는 방법, 어디서 살아야 되는 등의 질문을 했던 적이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정말 좋은 태국친구들이 생겨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었고, 그들과 학교에서 생활하고, 학교 밖에서도 생활을 하면서 점점 저도 태국문화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항상 그랬습니다. 태국은 습성상 한 과에 80명 정도의 학생이 있다고 치면, 여러개의 그룹을 나눠 그들끼리 무리를 지어다니는 습성이 있습니다. 마치 한국의 중,고등학교때와 같습니다. 친한친구 몇명과 그룹을 만들고, 그들과 밥을 먹고, 게임을하고, 술을먹고, 여행을 가고 이렇습니다. 운이좋게, 저도 이러한 그룹에 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한류의 여파로 한국인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고, 당시엔 꽤나 인기가 많았었습니다.
하지만!

태국어를 하나도 못해, 그만의 시간에 적응을 해야 했습니다. 8명이 둘러앉아 100마디의 태국어로 이야기를 하면, 그제서야 영어로 한마디를 하고, 그다음에 다시 100마디의 태국어를 서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해를 하지 못하면서도 문맥상 알아듣는 척 하며 간간히 버텼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태국어 정규 교육과정을 밟아본 적은 없습니다. 태국어를 택시기사한테 배웠고 ,친구들한테 배우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환경이 행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당시엔 이것 조차 위기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저는 친구였지만, 이방인이였으니까요.

비교, 그리고 위기


▲대학교 입학 오리엔테이션때

한국친구들의 대학 입학소식이 전해진 것은 제가 고등학교 3학년때였습니다. 국제학교의 2학기는 5월달에 끝났고, 한국의 고3은 12월에 끝났기에, 한 학기를 친구들의 첫 대학생활을 멀리서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 마음이라는게 간사한게, 그러한 것들이 질투나고 부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여전히 고등학교 신분이었고, 나도 대학을 가야지라는 생각으로 SAT공부를 열심히 했었습니다. 다행히, 3번 봤던 SAT시험 중 한 과목에서 대박이 터지면서 대학교를 갈 수 있는 폭이 넓어졌습니다. 그렇게 두곳을 지원하였고, 저도 꽤 나름 괜찮은 곳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의 대학교 첫 학기 모습을 보면서, 저도 그런 모습을 상상했나 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나눌만한 친구들이 없엇다고 생각을 했엇나 봅니다. 대학교에서는 태국친구들과도 잘 지냈지만,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미친듯이 외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선 이미 군대를 가기 시작한 친구들이 생겼고, 나 혼자 뒤쳐지는 느낌과, 왜 나는 그들과 같은 대학교 생활을 하지 못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위기에 몰아 넣엇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이런일이 있었습니다.

대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도중, 집에 혼자있는게 정말 외로워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리고 미친듯이 걷기 시작합니다. 가보지 못했던, 처음봣던 길들을 걸어가게 되었고, 이상한 골목길을 따라 갔습니다. 골목길은 점점 더 좁아지기 시작했고, 더러웠고, 위험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무작정 직진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한 계단이 있었고, 계단에는 작은 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문구가 붙어져 있었는데 그 문구는 마치 모든 위기를 날려버릴 만한 말이었습니다. 이 문을 열고 나가면 카오산로드 (Kaosan Road)가 나옴. 마치 해리포터에서 벽을 뚫고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 문을 열고 나가자 한 당구장이 나왔고, 그 당구장 1층은 카오산로드 맞은편 이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놀랐고, 이로 인해 한번의 위기를 또 다시 극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2013년 시국선언 태국 반 정부 시위당시!

술, 그리고 그 문화 속에서의 이방인

저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당연히, 에 대해선 아주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1살 때까지 을 마셔본 적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기독교인으로써 절제해야 될 것이라 생각을 했고, 마시게 된다면 죄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21살이되던해 1월 1일부터 무슨바람이 불었는지, 나도 열심히 놀아보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됬습니다. 그때부터 정말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태국에선 태국인으로 사는 것 보다 이방인 으로 사는 것이 더 나을 때가 많습니다. 국가에서 외국인에게 차별을 주지 않으며, 태국 국민들도 아주 개방적인 사고와, 외국인이라면 오히려 더 잘 대접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대접을 받을땐 이방인으로 사는게 좋지만, 이방인은 결국 이방인일 뿐이죠.

클럽을가고, 디스코를 가면 그때만큼은 이방인이었던 것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도, 이러한 것들때문에 같이 가기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을 넘어 더 가까운 친구였지만, 이러한 것들에 마음이 맡는 친구들과는 더욱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들은 졸업한지 한참 지났지만, 지금도 자주 연락을 합니다.

이방인으로써 받는 위험한 그러나 달콤한 제안들,

영화 집으로가는길을 보신적이 있나요? 영화를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극중 전도연씨가 마약인줄 모르고, 물건을 배달하다 마약운반책으로 잡히게되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방콕에서 한창 이러한 일들이 있었을때가 있었습니다. 한인커뮤니티를 통해 물건을 운반해주면 큰 돈을 지불해주겠다라는 말과 함께, 항공권과 호텔까지 다 제공해 준다는 조건이 이리저리 떠돌때가 있었죠. 이러한 말들은 지인을 통해 제게도 온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들리는 이야기들, 누구는 다녀오고나서 한번에 300만원을 벌었다더라, 5번을 다녀왔다더라, 해외여행을 돈받고 다녀온다더라.

물론, 이것이 누구도 그냥 해외여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다들 괜찮다라고 위안을 하고 한창 이런일들이 성행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군입대를 압둔 직전이었기에, 저도 이러한 일을 단 한번만이라도 하고 여행도하고 돈도벌자라는 위험한 생각을 했었지만, 다행이 하지 못했습니다.


▲ 사정 상 비자런 당시 캄보디아 포이펫에서!

태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게 얼마나 어렵나(?)

태국 정부는 이방인들에게 관대한 척 하지만, 정말 보수적입니다. 특히 비자 시스템이 그렇습니다. 비자를 쉽게 내어주지 않으며, 비자를 받는 절차가 정말 복잡합니다. 비자를 받고서도, 3개월 마다 한번씩 거주지 확인을 해야 하며, 태국 비자를 소지하고 태국영토 밖으로 나가려면 Re-Entry라는 비자를 받고 나가야 합니다. 만약, 이럴 어길 시 비자가 취소되며 벌금을 내야합니다.

사실 상, 태국 정부는 이방인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엘리트 카드라는 것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합법적으로 비자와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주기도 합니다. 돈있는 이방인은 그야말로 특별한 대접을 받고, 돈이 없는사람에게는 보수적인 정권이기도 하지요. 엘리트 카드라는 것은 발급받기도 힘들지만, 한번 발급받으면, 공항 픽업, 골프회원권, 무료 마사지, 노 비자혜택, 등등의 혜택을 줍니다.

비자가 있어도, 비자 유지하기가 여간 쉬운게 아니지만 비자를 받기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더욱 어려운 길을 택합니다. 바로 Visa-Run인데요, 비자 트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사람은 태국에 입국시 3개월간 관광비자를 발급받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관광비자를 가지고 태국에서 거주를 하며, 3개월 만료시, 당일치기로 인접국인 캄보디아의 국경을 넘어 다시 3개월을 연장하는 수법입니다. 예전엔 이걸 태국정부에서 용인을 해주었지만, 지금은 이를 엄격하게 관리해 이러한 것들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들었습니다. 이방인으로써, 불법적인 일을 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쉬운삶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태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이방인입니다.

태국에서 좀 더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레 태국어실력도 늘고, 피부도 검게 탔으며, 태국인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 같습니다 (태국인 싱크로율 80%). 길을 걷다보면, 저에게 길을 물어보는 태국 아주머니도 계시고, 그리고 그럴땐 그냥 웃으면서 길을 알려드리고 저는 한국사람입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어딜가서 어디에서 오셨어요?라는 말을 듣지 못할때도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인 이방인입니다. 태국엔 수많은 이방인이 있지만, 그 중 한국인 이방인 입니다.

이방인에 대한 대우는 다릅니다. 태국 사회 전반에서 묻어 나오는 이러한 다른 대우는, 국력 등에 비례해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일본인과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선, 대하는 자세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상 일본은 태국 경제 깊숙히 침투해 있으니까요. 한번은 이런일이 있었습니다

일본인 친구가 있습니다. 수줍고, 사교성도 뛰어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태국에서 생일 파티를 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생일 선물을 챙기는 것은 본인 자율이지만, 생일파티를 하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직접 선물전달을 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1학년이었던 어느날, 그 일본친구의 생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랑 대화조차 해보지 않은 친구들이 그 친구에게 선물을 주는 것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다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인에 대한 인지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이는 대부분 문화적, 엔터테인먼트와 관련된 것 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수십년간 태국에 직,간접적인 경제적 발전이 도움을 주었기에, 이들은 일본인들을 경제적인 파트너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결론

사실 오늘 이야기는 제가 현재 있는 카파도키아에 대해서 써야 했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ATV, 트래킹 등의 많은 액티비티를 하면서 나눌 것들이 정말 많거든요! 하지만, 무작정 계획없이 떠난 여행에서, 하나하나 일일이 사소한 것 조차 모두 찾아야 하는 이러한 모습을 보며, 태국에 맨 처음 발을 딛었을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었습니다.

태국에서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사고도 많았고, 위기도 많았고,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시간들을 뒤돌아 봤을때 결국 그 시간들은 후회할만한 시간들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이방인이지만, 앞으로도 이방인이겠지만, 그 태국사회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으려고 합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 또 다른 이방인으로 살지는 모르지만요) 네! 저 이제 곧 다시 태국에 돌아갑니다. 아마 다음달 중순쯤에 다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제가 위기때 큰 위로가 되었던 말을 나누며 오늘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모두 활기찬 월요일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한번은 제가 태국에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짐을싸고 무작정 한국으로 돌아가려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 혼자 정체되있는 것 같았고, 외롭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그곳에 있던 시간들이 시간낭비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때 제가 아는 형이 이런 조언을 해줬습니다.

브라이언아, 너가 지금 하는 이 고민들은 너가 미래에 되돌아 봤을땐 고민 거리들이 아니야. 너가 지내온 그 시간들이 모두 소중한 시간들이거든. 너가 지난 삶 속에서, 위기라고 느끼는 그것들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냥 단순하게 한가지만 보면 좋겠어. 0이라는 숫자와 100이라는 숫자 사이에서, 너가 얻은 것이 100이 아니어도, 95가 아니어도 괜찮아. 그 시간 속에서 너가 얻은것이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라면, 100중에 3이더라도, 100중에 10이더라도 그것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삶이야. 결국 너는 남들보다 더 잘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었잖아. 그러니, 앞으론 그러한 것들에 대해 신경쓰지마.

이 말 한마디가, 수개월동안 저를 침체되게 만든 그 위기들을 모두 해결해 주었습니다!

내일은, 카파도키아의 명물! 열기구 투어와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에 대해 나눠보겠습니다 :)
왜 카파도키아에 꼭 와바야하는가에 대해 나눠보겠습니다!


▲ 어메이징 카파도키아! 내일 좀더 세세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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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부럽습니다 가보는것과 사는 것의 차이는 있겠죠 ㅎㅎ 싸와디캅!

태국에서의 이방인으로 사는게 쉽지 않아보이네요. 처음 유학하시고 마음고생을 하셨긴하지만 그만큼 많이 단단해지신 것 같아요^^ 무작정 정처없이 모르는 길을 걷다 어두침침한 곳에 카오산로드로 통하는 문을 발견하셨다니 간접적으로 읽는 글임에도 그때의 느낌이 전해져요 :) 곧 태국으로 다시 돌아가신다니 생활 잘 하시구 여행기 기다리고 있을께요 ^^

타지에서의 삶 항상 응원합니다!
힘들었던 시절들이 지금은 좋은 추억으로만 기억되시길..
호주에서 적응하기 힘든 시기에 아무생각없이 앞으로만 걸어가보자 하고 걸어갔었던 저의 과거도 오랜만에 생각나네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얻은것이 1이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그것이 가장 밑바닥에서 나늘 받쳐주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기억하고 싶은 글이네요^^

일본에서 어렸을때 유학한 제친구가 생각나네요. ㅎㅎㅎㅎㅎ글 잘봤습니다.

좋은 내용 감사드립니다 ~^^ 팔로우 보팅하고 갑니다.

태국 정말 좋아하는데... 현지 이야기 들으니 또 다른 면을 알게 되네요.

지난 삶의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도 그러한 용기로 돌파하시길 기원합니다.

개인적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여행도 자주했고 좋아하는 나라가 태국이라 재미있게 읽었어요!! 한 달 정도 한 번 살아 보고 싶은 나라로 늘 꼽아왔었거든요- 지금 외국에 살면서 공감되는 내용도 많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이방인으로 사는게 정말 쉽지 얺았을듯 해요 특히 언어적인 장벽이 가로막혀 있으니ㅠㅠ 저같았으면 도중에 돌아왔을텐데 대단하세요 고생하셨네요
터키의 액티비티도 기대중입니다 ㅎ

브라이언님의 생생한 태국정착기 흥미롭게 봤어요. 어린 나이에 유학생활을 시작하여 힘들었을듯 ㅠㅠ
카파도키아 열기구투어 포스팅도 기대할께요^^

Brian님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것 같아요. 저 역시 어린 시절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살았기에 말씀 하나하나에 느껴지는 무게가 남다르게 다가오네요. 근데 왜 유학할 나라를 태국으로 정하셨는지.. 그 후엔 독일에 거주하시는 걸로 전에 봤는데 어떤 사연이 또 있으실까 궁금하기도 하구요^^
아, 이런 이야기들 전 무척 좋아해서, Brian님 블로그에 더 자주 와야겠어요ㅋㅋ

태국은 이방인에게 관대하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깊게 파고들면 보수적인 측면이 있군요. 얼마나 수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셨을지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제 생각이건데 정말 친하신분들 빼고는 무언가 보이지않는 경계선이 그어질것 같습니다. 자신과 다르다는건 본능적인 거부감을 유발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그 상황을 이겨내시고 현재 자신만의 자리를 만든 브라이언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 본인만의 길을 걸어가시길 응원하겠습니다. 그 길은 다름은 있을지언정 틀림은 없을겁니다.

너무너무 멋지신것 같습니다!

진심으로멋지고부럽네요 팔로할께요~^^

태국말도 잘 하시겠써요 ^^

어린 나이에 타국으로 건너가셔서 말도 안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한다는게 결코 쉽지 않다는걸 저도 충분히 이해한답니다.
저는 나이들어서 영어도 잘 안되면서 영어가 안되는 러시아 시골동네에
가서 2년간 살았던적이 있는데 정말 힘들었답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ㅋㅋㅋ 웃음이 나지요.
하지만 브라이언님은 스스로 도전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있는 상태로 갔기에
저보다는 충분히 잘 견뎠으리라 봅니다.
나중에는 저처럼 웃으면서 이방인으로서의 삶도 추억으로 되새길 날이 있을것
같습니다. 힘내시고 남은 여행도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태국 멋쟁이ㅎㅎ
응원합니다~ 여행도 안전하게 잘 하시구여~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태국이라 ㅎㅎ 좋은곳에 사시네요 고등학교때 부모님하고 푸켓 간 기억이 있네요 ㅎㅎㅎ

아는 형님이 정말 좋은 조언을 해주셨네요... 그 자세를 저도 많이 배워야할 듯 합니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지낸다는 것이 흥미롭지만 동시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감히 글로나마 짐작해봅니다

철저한 이방인이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외로움을 극복해오셨을 브양님의 모습을 보니 아들보듯 장한(?) 느낌이 듭니다. 브양님처럼만 자라준다는 보장만 있다면 아무 걱정없이 제 아들도 어린 나이에 유학좀 보내보고 싶네요. 물론 이것도 부모의 욕심이겠지만.. ^^ 브양님께서는 다양한 경험만큼 사람을 성장하는 게 없다는 말을 몸소 보여주신 케이스네요

카파도키아 열기구 진짜 꼭 가보고 싶었는데...내일 기대합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브라이언님의 삶 이야기는 참 먹먹하네요.
당연히 부모님과 같이 가셨으리라 생각했는데 연년생 동생과 함께 둘이서 유학생활을 유지했다니 대단합니다.
사실 저 또한 17살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그런 제안이 들어왔었습니다. 이모가 미국에 사시기에 그곳에서 유학생활을 한번 해보지 않겠냐는 부모님의 제안이었죠. 4살 어린 제 동생도 함께요. 전 그냥 막연한 두려움이 들어 가지 않겠다고 말씀드렸고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제 동생은 떼를 쓰며 가지 않겠다고 했었어요.
고1이라는 시절은 모든 걸 다 아는듯해 보이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실상 껍데기를 벗겨보고 되돌아보면 나약한 어린아이일 뿐입니다. 그당시의 브라이언님이 단단해지고 숙성되었기에 지금처럼 사람냄새나고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제가 하지못한 결정을 결단력있게 하신 것도 대단하거니와 태국인들과도 멋지게 어울려서 태국어까지 배우게 되신것도 신기하고 멋져 보입니다. (그리고 브양님 저는 오리엔테이션때 여장했어요...힘내요...부끄러움은 잠시입니다..후훗) 열기구편을 기대하며 그럼 이만!!

대단하시네요 어린나이에 쉽지않았을 텐데 제가 보고 배워야할 것같네요 ㅠㅠ 포스팅 잘 보고갑니다

17살,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린 나이입니다. 그 나이에 자신의 길을 선택해서 타지에 유학을 갈 생각을 하신 걸 보면 브양님은 참으로 자주적인 사람입니다. :) 그것을 지지해주신 부모님도 참 대단하신 분들이구요.

글을 읽으며 당시에 브양님이 느끼셨을 이방인으로서의 불안감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분명 즐겁고 설레는 일들도 있었겠지만 이게 맞는 건지 왜 걱정이 없으셨겠어요. 특히 ESL과정은 참... (주변에 ESL로 시간을 많이 보낸 지인들이 꽤 있습니다) 브양님처럼 빨리 적응하고 영어를 배워 따라잡은 사람들도 있지만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 ESL에 머무는 사람들도 많지요...

한 지인은 어릴 때부터 필리핀 국제학교를 다니고 대학은 미국에 와서 저와 알게 되었는데 같은 영어라 하더라도 문화가 많이 달라 미국 유학 생활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브양님은 대단한 적응력을 갖고 계시는구나 싶네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라는 책을 보면 '거주하는 여행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몇 달을 여행하는 게 아니라 1-2년 동안 거주지를 두고 여행하는 작가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지요. 저는 그 말이 미국에 머무는 저를 두고 하는 말 같았습니다. 갑자기 브양님을 보니 그 책이 떠오르네요.^^

어렸을때 자의로 태국이라는 나라에 유학을 갈 생각을 한 것부터 대단하다고 느껴지네요 ^^
그곳에서도 어려움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고 지금에까지 이르렀으니 그동안의 경험은 돈주고도 사지 못할 값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살아보니 우리의 삶 속에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단 하나도 쓸모 없는 것이 없더군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앞으로의 난간도 잘 극복하시길 바랍니다 ^^
카파도키아 이야기도 기대할게요~ㅎ

전 필리핀에서 2~3년 일을 했었는데 전 국가적인 외국인 뜯어먹기에 질렸던 기억이 나네요 ㅎ 타향에 산다는 게 자유롭기도 하지만 외롭고 힘든 일도많았던 것 같아요.

고생 많으셨네요. 지금은 카파도키아 여행중이신가요?
즐기시고 누리시고 재충전 하시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태국에서 포스팅기대되네욯ㅎ
좋은글 보팅하고 팔로남겨욬ㅋ

아는 형의 조언이 너무 멋지네요. 역시 아름다운 사람 옆에 또 다른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 모양입니다. 이방인의 삶을 살아가는 브라이어님의 진솔한 이야기는 항상 매력적이네요 ㅎ

한국이 한류열풍에 국한되어 있다면 일본은 옆나라 미얀마부터 베트남까지 .. 직간접적으로 우리보다 더 많이 공장이나 원조나 학교등을 설립했기 때문에 브라이언님이그 부분을 캐치를 하신 것 같네요

브양님의 솔직하고 장엄한 일대기, 너무너무 잘 읽었습니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무척 감사드립니다.

브양님, 저 왜 이글을 이제야 봤죠? 요즘 제 블로그 방문자분들 위주로 소통을 하다보니 제가 브양님한테 좀 소홀했나 봅니다 ;ㅁ; 저도 생각해보니 8년전 이맘때 뉴욕으로 떠났더군요. 물론 그 전에도 잠시 미국생활을 하긴 했지만.. 대충 8년의 시간을 이방인으로 지낸 것 같아요. 그렇다보니 우리 브양님의 글을 읽는 내내 조금 울컥하기도 했네요. 그러다 각설이에서 잠시 멈춤.... 브양님이 태국에서 지낸 시간이 너무나 대견하고 놀랍도록 멋지고, 마치 저의 일인 것처럼 마음이 찡합니다. 물론 브양님이 훨씬 멋지게 생활하신 것 같지만요. 태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만의 특별함과 애환도 있어 보입니다. 외롭던 브양님을 잡아준 형님의 글을 여기서 또 만나네요. 그만큼 큰 울림이 있었다는 얘기겠지요. 우리 브양님 항상 응원합니다. 제가 아주 많이 아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