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도'를 걸으며 '정약용'을 떠올리다.

in #kr5 years ago


-예봉산 들머리, 팔당역에서

옛날, 지방 길손들이 배를 타고 한양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삼각산이 보이는 이곳 팔당에서 임금에게 禮를 갖췄다 하여 팔당리 뒷산이 '예봉산'으로 불려졌다고 합니다.
팔당역 앞은 주말이면 트레커들과 자전거 라이더들로 분주한 곳이지요. 오늘은 인근 다산 정약용 생가에서 '2019 정약용 문화제'가 열리는 날이라 '정약용 사색의 길 따라걷기'에 나선 분들까지 몰려 더더욱 북적댑니다.


-예봉산 중턱 전망대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은 양평 양서면에서 합수하여(두물머리) 예봉산과 검단산 사이 팔당댐을 지나고 서울을 관통하여 서해로 흘러듭니다. 오늘은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穀雨)라 그런지 하늘에 드리워진 비구름 때문에 끄무레해 조망은 '꽝'입니다.


-예봉산 정상에 서서

예봉산 정수리에 강우 관측 레이더 공사가 막바지에 이른 듯 거대한 레이더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늘 산행의 마지막 코스인 운길산이 동쪽 저멀리에 우뚝 솟구쳐 있습니다. 예봉산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산릉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되는 두물머리 방면과 팔당댐에서 북서쪽으로 흐르는 한강에 여맥들을 가라 앉힌 뒤 남쪽 강건너 검단산으로 이어집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무리 젊은이들을 산정에서 만났습니다. 젊음이 부러웠지요. 이들은 '바른생활'이라 쓰여진 플랭카드를 들고 단체인증샷을 남기네요. '바른 젊은이들'로 인정합니다. ㅎ


-예봉산에서 운길산을 바라보며

산정에 올라 건너편 산봉을 보면 아득히 멀게만 보입니다. 지레 겁먹고 발길을 되돌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무리 멀게 보여도 묵묵히 내딛다보면 가까이 다가서지요.


-철문봉에서

철문봉(喆文峰)은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과 그의 형제(약전, 약종)가 조안면 본가에서 집뒤 능선을 따라 이곳에 올라 학문(文)의 도를 밝혔다(喆)하여 이름 붙여진 봉우리이지요. 최근 이 산길을 관할 지자체에서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본 따 '백성을 생각하며 걸어 보라'는 뜻으로 '목민심도'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예봉산 활공장에서

창공으로 비상하는 패러글라이더의 모습은 늘 동경의 대상입니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날아오르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두려움보다는 설레임이 앞서지요. 날개 활짝 펴고 세상 위로 날아오르는 꿈, 유쾌 통쾌 상쾌함이 전신에 파고 들었다가 행복한 미소로 재가공되어 창공 가득 번집니다.
오늘, 바람도 좋은데 어쩐 일인지 패러글라이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섭섭함을 안고 그냥 스쳐 지납니다.


-적갑산 정상에서

예봉산과 운길산을 이어 걸을 때 반드시 거치게 되는 봉우리지만 앞사람 뒷꿈치만 보고 걷다간 놓치기 쉬운 봉우리가 적갑산 정상입니다. 예전엔 A4지에 '적갑산'을 써서 비닐코팅 해 나뭇가지에 걸어 놓았으나 언제부턴가 제대로 된 정상 표시석이 올려져 있지요.


-능선 벤치에 누워

무거운 등짐을 잠시 내려놓고 쉼표를 찍고가는, 인생 또한 그런게 아닌가 합니다. 다산 정약용은 일곱살 나이에 이 산능선을 따라 걸으며 詩 한 수를 읊었는데,

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소산폐대산 원근지부동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으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라"
다산은 일곱살에 깨우친 산세의 이치를 소생은 예순을 훌쩍 넘긴 지금도 아리송 하답니다. 오가는 산객이 워낙 뜸한 코스라 잠시 양심 내려놓고서 벤치를 독차지하고 누워 산중오수도 즐겼습니다.


-운길산 정상에서

구름이 산봉에 걸려 멈춰선 운길산(雲吉山), 왔던 길을 돌아보니 이미 예봉산은 저멀리로 물러 나 있습니다. 몇시간 전 맞닥뜨렸던 예봉산 정상의 거대한 레이더는 한 점으로 멀어졌습니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시작된다지요, 타박타박 내딛는 발걸음이 정녕 무섭습니다.
운길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두물머리 풍경은 운길산 조망의 백미입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간유리를 통해 보는 것처럼 뿌옇습니다. 정상 데크에 앉아 땀을 훔치고 있는 산객들은 복잡한 세상사를 잠시 잊고 느긋한 여유를 즐기는듯 표정이 환합니다.


-수종사 입구에서

운길산 7부능선에 자리한 수종사 뜰에 서면 산아래 두물머리가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은은한 향의 작설차를 맛 볼 수 있는 삼정헌을 들러 보고 싶었으나 오늘은 절집 입구를 지나칩니다. 지체하다간 비를 만날 것 같아 운길산역 방향으로 걸음을 서둘렀습니다. 절집 입구에 줄지어 매달린 연등은 막 피어난 연록 잎새와 무척 잘 어울립니다.


팔당역에서 운길산역까지 전철을 타면 5분이면 족합니다. 그 쉽고 간단한 길을, 오늘도 어렵고 결코 간단치 않은 길을 택해 5시간 48분 동안 걸었습니다. 사색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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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carstop님

랜덤 보팅!!

소소하게 보팅하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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