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채굴'이라고 하는 걸까?

in #kr5 years ago

어떤 언어를 처음 배우고자 하면 보통 철자(spelling)과 단어(word) 순으로 배워가게 됩니다. 새로운 영역에 첫발을 딛고자 할 때도 그 분야에서 자주 쓰는 용어(term)를 익혀가면 아무래도 한결 자연스러워지죠. 수영장 입수 전에 손발에 물 묻히기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블록체인을 처음 접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블록’, ‘채굴’, ‘해시’ 등 기본적인 용어들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를 뒤지고 다녔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격상 뭐 하나 꽂히면 스스로 만족하거나 자력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워질 때까지 파고드는 타입이라서요.

그때 기억을 더듬어보다가,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대체 왜? ‘채굴’이라고 부르는 걸까?”



이 분야에 몸담고 있거나, 저보다 훨씬 먼저 관심을 갖고 있던 분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너무 자연스럽게 쓰다 보니 그냥 쓰는 걸지도 모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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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이런 느낌이랄까요.
(출처: 네이버 웹툰 <탈>)

검색 몇 방이면 어지간한 건 다 찾을 수 있는 시대. 어딘가는 분명 이 말을 쓰게 된 유래를 적어놓은 글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검색 결과는… 실패. 정말 없는 건지,(에이 설마) 일부러 숨겨놓은 건지,(딱히 그럴 이유가…?) 아니면 제가 못 찾는 건지…(왠지 이것 같군요)

채굴이라는 용어가 무슨 뜻인지 설명한 글은 차고 넘치게 많습니다. 하지만 어쩌다가, 왜 그 말을 쓰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찾을 수가 없더군요. 그런 고로, 한 템포 쉬어가는 기분으로 궁금증에 스스로 내려본 결론을 슬슬 뿌려놓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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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너무 빡센(?) 주제를 연달아 쓴 경향이 있어서요.
셀프 힐링 차원이랄까…

영어로 Mine은 광산이라는 뜻이죠. 즉, 본래 채굴(Mining, 採掘)이란 광산에 묻힌 ‘뭔가를 캐내기(採) 위해’, ‘땅이나 굴 등을 파거나 뚫는(掘)’ 행위를 가리킵니다. 뭐… 단어 배우기 교실을 하러 온 건 아니니 이 정도로만 해두도록 하고…

그렇다면 본론.
대체 왜? 광산과는 병아리 눈물만큼… 정도나 상관이 있을까 말까 한 컴퓨터 네트워크 세계에서 채굴이라는 말을 쓰는 걸까요? 노트 위에 이 질문을 적어놓고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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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이유에서든 ‘피식-’ 하게 되는,
바로 그 움짤.

단순하게 포털 검색부터 해봅니다. ‘채굴’.
음… 별로 건질 게 없네요.

그 다음. ‘마이닝’.
호오… 여기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 사이에 숨겨진 유의미한 것들을 발견해 ‘정보’를 추출하거나 의사 결정을 위해 사용하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라네요.

‘광맥을 찾아내듯’ 데이터베이스에 숨겨져 있는 유용한 정보를 찾아내는 과정이라 해서 데이터 마이닝이라고 부른다는 설명입니다. 개발 쪽에 종사하는 지인에게 언뜻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척 봐도 제 영역은 아닌 것 같아 더 캐묻지는 않았었지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서 쓰는 채굴이라는 말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을 듯합니다. 해시 값(유의미한 것)을 찾기 위해 무수한 연산을 반복(삽… 아니, 땅 파기!)하는 과정이니까요.

데이터 마이닝과 블록체인의 마이닝이 같은 영역은 아니겠지만, 그쪽이나 이쪽이나 ‘컴퓨터를 기반으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서로 비슷하게 쓰는 말 같은 건 있지 않겠습니까. 그냥 그렇게 생각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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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데이터 마이닝은 노다지를 꿈꾸는 사이버 버전 골드러시이려나

다른 한편으로, 한때 비트코인 채굴 풀에 투자하던 지인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비트코인은 일종의 디지털 금이나 마찬가지”라고 비유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쉽게 전달하려고 그랬던 것 같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닌 듯합니다.

한때 비트코인이 가격이 수천만 원씩 하던 시절이 있었죠. 그땐 정말 금 뺨치는 위상을 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급락에 떡락 콤보를 제대로 얻어맞은 상황이라… 이대로 계속 떨어지면 구리나 니켈 정도가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요.

금은 ‘아름다움’과 ‘희소성’ 때문에 가치를 갖습니다.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지만 그 대신 금화 등 화폐로서 실용성을 가질 수 있었죠. 19세기 ‘골드 러쉬(Gold Rush)’의 근본적 원인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보면 새로운 화폐가 되고자 했던 비트코인에 ‘채굴’이라는 표현이 매칭된 것도, 그로 인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블록체인에서도 똑같은 표현이 쓰이는 것도 어느 정도 아귀가 맞지 않나 싶습니다.

참고 글 - 비트코인, 디지털 ‘금’인 것 같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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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만… 먹는 금, 입는 금, 다 되는 거 같기도 한데…?

블록체인 관련 개념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중, 어딘가에서 ‘채굴을 하는 코인은 모두 작업 증명(PoW) 방식’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책이었는지 인터넷 게시물이었는지 가물가물하네요.

그 말대로라면 PoW를 대신할 합의 알고리즘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시점이니, 채굴이라는 말은 점점 쓰이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거겠죠. 그런데 여기저기 뒤적이다 보면 합의 방식에 상관없이 코인을 얻기 위한 행위 자체를 ‘채굴’이라 칭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예전에 봤던 그 말이 오래된 버전이거나, ‘이론적으로는 그렇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일반 사용자들 사이에서 편의상 그렇게 부르는 걸지도 모르죠. 어찌됐든 채굴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좀 더 오래 살아남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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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히 고통받는 제라드 버틀러 형님.
지켜드리지 못해 미안해여…

한참 써놓고서 민망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사실 채굴을 왜 채굴이라 하는지 이유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잘 압니다. 이걸 안다고 블록체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중화에 도움이 된다는 보장도 없죠.

다만 이렇게 사소한 이야깃거리가 하나둘씩 모이다 보면, 블록체인에 흥미가 없던 사람도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 한 조각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물론 제가 쓰고 싶어 쓴 거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꽤 공들인 건데, 그렇게라도 보탬이 됐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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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란 현상을 정의하여 이름붙인 것이지요.
그 용어가 갖는 중요성은 사람들이 용어를 통해 직관적으로 개념을 파악하기도 하기 때문 아닌가요?
그래서 용어를 ‘일정한 개념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말’로 풀이하기도 하더군요.

그러니 용어란 항상 유념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입니다만,
요즘 무의식적으로 쓰는 '용어'들이 어떤 뜻인지 새삼 의문을 품게 되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용어'로 인해 직관적으로 개념을 파악할 수 있게 되는
일정한 조건 같은 게 있는지도 생각해보게 되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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