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앙화 '혁명', 어디까지 생각해보셨나요?

in #kr5 years ago

기본적으로 저는 블록체인 낙관론자입니다. 가능하다면 암호화폐도 현실에서 통용되기를 바라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지금처럼 ‘사고파는 대상’이 아니라 수단(=지불 수단)으로서 말이죠.

하지만 동시에, 블록체인 기술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기존의 모든 것을 대체하기를 바라지도 않고요. 시간이 꽤 걸리더라도 익숙한 것들과의 공존을 먼저 이뤄낸 다음, 블록체인이 필요한 곳, 어울리는 곳에 ‘최선의 대안’으로 투입되는 게 지금으로써는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리 좋아하지 않는 단어가 되긴 했지만… 다소 ‘보수적’인 면이 있다고 할까요.

이런 성향 때문인지, ‘탈중앙화 혁명’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이 복잡해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혁명’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종종 어떤 비장한 포부 같은 걸 느끼면서도, 동시에 막연한 불안감을 떠올리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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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 미궁 어딘가에 뿔 달린 혼종 친구(?)가 살고 있을 것만 같네요.

블록체인의 가능성으로 흔히 탈중앙화를 꼽습니다. 의도적으로 ‘중앙의 부재(不在)’ 상태를 만드는 거죠. 이는 해석하기에 따라 방향성이 달라진다고 봅니다.

한 가지는 ‘공존 → 점진적 대체’라는 방향입니다. 중앙기관이 있는 현재의 상태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성공하면, 시장의 원리에 따라 편리하고 이익이 되는 쪽이 상대적으로 커지게 될 겁니다. 중앙화와 탈중앙, 양쪽을 모두 겪어본 사람들은 점차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이 과정은 점진적으로 탈중앙을 향하게 될 거라는 믿음이죠. 개인적으로는 이쪽을 선호합니다.

다른 한 가지 방향은 ‘혁명 → 재정립’이라 부르고자 합니다. 기존의 중앙은 신뢰를 잃었다고 규정하고, 이를 대신할 ‘평등한 질서’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해석이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신경쓰며 적다보니, 이쪽도 언뜻 보기에는 상당히 감언(甘言)이로군요.

물론, 일리는 있습니다. 아니, 가능하기만 하다면 ‘혁명’ 쪽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겠습니다. 역사적으로 보통 혁명이라 하면 타락한 권력, 과도한 횡포 혹은 탄압, 기본권 침해 등에 맞서 싸운 사례가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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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은 분명 폭력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대의나 정당성을 인정받아 긍정적으로 기술되곤 합니다.
일종의 정당방위랄까요.

책상 앞에 앉아있는 한 개인의 좁은 시야로는, 어느 쪽을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은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봐도 ‘혁명’ 쪽을 지지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좀 적어볼까 합니다.

혁명이라는 건 보통 '정의사회구현'이라든가 '인류 진보를 이끈 계기'로 역사에 기록돼 있습니다. 교육이라는 탈을 쓴 세뇌의 일종이라는 의심이 존재할지언정, 어쨌거나 오늘날 제가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을 끄적대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된 데에는 그 혁명들이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혁명의 역사적 의의 같은 것에만 포커스를 맞추다 보면, 그 이면에 버젓이 존재하는 다른 많은 것들은 시야에서 흐려지게 됩니다. 이를테면, 혁명에 수반되는 ‘파괴’ 같은 것 말이죠. 본래 혁명이라는 건 기존의 것을 ‘부수는(거부하는)’ 것을 전제로 하니까요.

보통 ‘시스템’이라 불릴 정도의 무언가라면, 어느 한 부분만 똑 떼어내서 고치거나 바꾸기가 영 까다롭습니다. 아파트나 빌딩에서 한두 세대만 부수고 새로 지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나 할까요. 그러니 아예 전체를 다 부수고 다시 만드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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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뭐… 이런 빌딩은 예외겠지만요.
(이미지 : 네덜란드의 '스페이스 박스spacebox')

완전히 부수고 새로 만든다는 발상 자체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때로는 더 좋을 수도 있죠. 하지만 이 과정은 하루아침에 뚝딱 끝날 수 있는 게 아니죠. 그러다 보니, 수반되는 다른 문제들이 꽤 많습니다. 예를 들면, 부순 건물을 다시 짓는 동안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새로 올릴 건물은 기존과 어떻게 다르게 할 건지. 그 차이로 인해 혹시 누군가가 살 곳을 잃지는 않을지 등등.

일단 생각나는대로 건물 재건축에 빗대어 표현했습니다만, 다른 비유를 써도 맥락을 전달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따금씩 겪는 정전이나 단수를 확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가능하겠죠.

‘기존의 시스템’이 어느 정도 규모였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지에 따라 그 파급력은 다르게 나타날 겁니다. 중요한 건, 뭐가 됐든 혁명을 전제로 한 파괴 다음에는 그에 걸맞는 스케일의 ‘문제’들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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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시대에 맞게 ‘세계 전체의 종말’을 비유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어휴… 상상만 해도…

혁명으로 인한 파괴는 자연재해와 달리 누군가의 의지나 의도에서 출발합니다. 일종의 ‘기획’인 셈이죠. 그렇다면 그 이후의 상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안도 어느 정도 갖춰져 있어야만 비로소 첫 걸음을 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블록체인을 통해 중앙기관 없이 모두가 평등한 시스템을 만들 것이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봤을 때 너무 막연하고 허술해보입니다.

판을 장악하고 있던 룰이 사라지면 보통 가장 먼저 찾아오는 손님은 자유가 아닌 ‘혼돈’입니다. 아무런 통제와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만약 일부 개인이 악의(惡意)를 드러낸다면 이를 제재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물론 반대로 선의(善意)의 존재들이 나타날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느 쪽도 장담하거나 확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미 상당한 혼란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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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사위를 던질 땐 신중하게. 모두가 카이사르가 될 순 없으니까요.

“원래 사는 건 계획대로 안 된다”라는 말은 때때로 불필요한 걱정을 날려주기도 합니다. “일단 닥치면 어떻게든 된다”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사 ‘아무런 계획이 없어도 저질러도 된다’라는 뜻은 아닐 겁니다.

이따금씩 탈중앙화라는 단어가 가져다 주는 매력에 빠져 변화를 서두르고 싶어하는 분들을 가끔 봅니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니, 빛(light) 뒤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그림자(shadow)를 반드시 주시했으면 합니다.

글머리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저는 블록체인 낙관론자입니다. 걱정이 좀 많은 편이라 종종 ‘기우(杞憂)’에 시달릴 때도 있습니다만, 블록체인이 자연스럽고 온당한 흐름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대책없는 낙관보다는 책임감 있는 묵직함을 좀 더 곁에 두고 싶은 마음으로 구구절절 적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