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착취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 한병철의 <피로사회>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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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의 이례적 성공은 그 내용의 이례적 대담함으로부터 출발한다. <피로사회>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과 의료, 상대적으로 민주화된 정치에 힘입어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높아졌음에도 오늘날 우리의 모습에서 좀처럼 행복을 발견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런데 그 설명은 지난 수 십년간 해답이라 불렸던 위대한 철학자들의 답안을 계승하지 않는다. <피로사회>는 현대의 지평을 열었다는 푸코와 프로이트와 아감벤 등을 더이상 현대를 설명하지 못하는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어버린다.

성과사회


저자 한병철은 현대인의 심리적 질병들의 원인으로 성과사회를 지목한다. 과거 푸코, 프로이트 등의 철학자들이 세상을 정의하는 단어는 규율사회였다. 규율사회는 '~해서는 안된다'는 금지의 부정성과 '~해야 한다'는 강제적 부정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개인은 이 억압에 복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생산의 문제가 도래한다.

규율사회의 금지는 더 많은 생산을 꿈꾸는 자본주의의 욕망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9시 출근에 6시 퇴근'이라거나 '모든 학생이 12시까지 야자를 해야 한다'는 규칙은 고루하고 비효율적인 악습이 된 것이다. 강제적인 명령은 더이상 획기적 생산의 증가를 보장해주지 않기에 '자기 주도', '자기 계발', '자율'등의 긍정성이 이 악습을 대체한다. 사람들은 자기 발전을 위해 새벽반 영어 학원을 등록하고 인문학 고전을 읽으며 자기계발서를 탐독한다. 이 모든 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명령에 복종하던 과거의 인간은 이제 스스로 행동하는 성과주체가 된다.

얼핏보면 성과사회의 개인은 규율사회의 억압과 금지를 벗어던진 진정한 자유의 주체로 여겨진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현대 사회의 비극이 있다. 규율사회에서 채찍을 내리는 건 타자였다. 그러나 성과사회에서 채찍을 내리는 건 누구인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성과사회에서 '나'는 나 자신의 경영자이자 피고용인이며, 주인이자 노예이고, 착취자이자 피착취자다. 나를 착취하는 게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착취임을 깨닫지 못한다.

자본주의는 자기 착취를 '자기 계발', '생각있는 사람' 등으로 포장하여 대량으로 유포한다. 자기 착취는 타자에 의한 착취보다 훨씬 강력하며 지속적이기 때문이다. 한병철은 이렇게 말한다.

성과주체는 완전히 타버릴 때까지 자기를 착취한다. 여기서 자학성이 생겨나며 그것은 드물지 않게 자살로까지 치닫는다(p.103).

한편 자기계발의 조류에 뛰어들지 못하거나 그 조류 속에서 조난당한 개인은 낙오자가 된다. 과거에는 실패의 이유를 사회의 탓으로 돌릴 수 있었으나 성과사회에는 더이상 핑계를 댈만한 금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성과사회는 말한다. 당신이 실패할 이유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당신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이 무능한 탓이다. 이같은 오만은 우리를 심각한 자괴감 속으로 빠뜨린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p.28).

성과사회는 그저 사회에 순응하며 적당히 살아갈 마음을 가졌던 평범한 사람들에게 더 큰 비극으로 다가온다. 규율사회에서 포기는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했다. 데모하지 않고, 불만 품지 않고, 회사나 열심히 다니며 복종하는 삶을 사는한 자기 자리는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과사회는 금지와 함께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없애버린다. 성과사회에서 개인은 호빗의 삶을 살고 싶지만 산더미처럼 몰려오는 경쟁자들은 기어이 당신을 샤이어 마을에서 몰아낼 것이다.

성과사회와 정치


자기 착취에 탈진한 개인들은 어떤 정치적 판단을 내릴까? 앞서 수많은 글에서 언급했듯 사람들은 상황이 복잡해지고, 뭐가 뭔지 모르겠고, 도저히 어떻게 할지 모를 때 자신을 구원해줄 메시아를 바라게 된다. 나는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손쉽게 권력을 쥘 수 있었던 이유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특별히 보수화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 두 사람에게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 악물고 열심히 살아볼테니 "잘 살아 보세"를 노래했던 시절로 되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겐 대한민국을 규율사회로 되돌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두 사람은 오히려 규제를 풀고 경쟁을 장려했다. 논란이 있는 기업인을 자수성가 스토리로 포장하고 냉혹한 현실에 신음하는 청년들을 게으르다며 나무랐다.

악당의 얼굴이 확실했던 시절엔 투쟁의 목표도 명확했다. 그러나 우리의 적은 더이상 사람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책임자를 내리고 다시 올려보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성과사회는 애꿎은 사람들이 돌에 맞아 쓰러지고 다시 서는 동안 끊임없이 자기를 강화한다.

그것은 몇 년을 주기로 얼굴만 바꿔가며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번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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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피로사회 재작년인가?에 읽었는데 참 좋은책인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충격적인 책이었죠.

무엇이 우리를 힘들고 피로하게 하는 것인가. 그 답은 결국 자신에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작가님을 2018년 소망릴레이에 지목했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감상평이지만 다음의 구호를 남깁니다. 가즈앗!!!

2018년 소망 릴레이에 한번 레이스를 뛰어본 적이 있는데 또 왔군요. 감사합니다. 소망 한번 외쳐보겠습니다.

가즈앗!!! ㅋ

한때 회사에서 이 책을 돌려 읽으면서 몇몇이 뻘쭘해 하는 상황이 연출됐었어요ㅎㅎ 저는 이 책의 판형을 포함한 디자인이 너무 좋아서 이례적 성공에 한몫을 했다고 생각해요. 가방에 쏙 들어가서 며칠 가지고 다니면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행복은 고민하는 만큼 한 발짝 더 다가오는 것 같아요. 피로사회라는 책이 우리 사회에 그런 제동의 메시지를 던진 게 아닐까 싶어요. 글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3번 연속해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한번 읽어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됐거든요. 이 분이 한글로 좀 글을 써줬으면 좋겠어요. 독어로 쓴 걸 번역하다보니...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가 생각나는 밤이군요. 자기 계발의 주문에 따라 모두들 스스로를 착취하고 구조에 순응하고, 구조적 문제는 모두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가끔은 아무리 문제의식을 가져봤자 뭐하나 싶기도 해요. 자기계발 모임가서 이런 얘기 하면... 세상은 이미 막을 수 없는 흐름을 타고 덩실 덩실 춤을 추는데, 파티 브레이커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요즘 계속 번아웃, 피로에 대해 생각해보게되는데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무언갈 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게 되서 종종 피곤하네요
그렇다고 엄청 열심히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잘 읽었습니다

맞아요 그렇다고 뭐 대단한걸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죠. 그냥 불안만 계속되는 상태. 여러모로 괴로운 세상이네요.

알랭드보통의 '불안'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현대인들이 불안한 근원은 바로 능력주의(성과주의)라는 대목이 있는데요, 무능력하면 도태될 것이고 도태되면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자괴감이 들기 때문에 기를 쓰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이론입니다. 뭐 맞는 말이지요 ㅎㅎ

피로사회도 읽어봐야겠습니다 ㅎㅎ

제 기억엔, 알랭드 보통이 불안의 기원을 개인의 탄생에서 찾았던 것 같습니다. 개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중세 시대에는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불안도 없었는데 근대 이후 스스로 삶을 개척할 수 있는 '개인'이 출현하자 그에 따른 다양한 문제가 생겼다는. 아마 이 말을 에리히 프롬이 먼저 한 거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납니다.

<불안>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피로사회>는 강추입니다. 하지만 3번 정도 읽으세요. 독해 자체가 매우 어렵습니다.

2012 올해의 책에 선정되어서 도전했는데 저에게는 좀 어려워서 읽다가 중단했던 책입니다^^;; 다시 한번 도전해보아야 겠어요!

저도 연달아서 세 번이나 읽은 책입니다.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읽을 가치는 있었습니다.

문장이 어려워서 읽으려다 피로해져서 포기했는데;;

포스팅 보니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습니다. 스티밋이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의 경쟁의 끝판왕같은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생태계에서 읽으니 뭔가 묘하고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네요 ㅎㅎ

오분만 읽어도 피로해지는 책입니다. 그나마 짧은게 다행이지요.

자본주의가 무서운 점은 반자본주의자들의 생각마저 상품으로 만들어 체제 안으로 포섭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