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리뷰

in #kr5 years ago

1 . 망각에 저항하는 천사

가끔 옛날 사람들이 그려놓은 천사들 그림 보면 '이것은 천사인가 괴물인가' 싶은게 참 많은 것 같아요.

천사 그림이라고 했을때 막 떠오르는 이미지는 막 엄청 아름다운 인간이 날개 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미지지만... 옛날 그림 속 천사는 막 머리 크고 눈 여러개 달려있고 그렇더라구요(왜죸ㅋㅋㅋ)

아무튼 오늘 리뷰할 책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에서 '앙겔루스 노부스'란 천사의 이름입니다. 책 표지에 그림이 있는데 1900년대 그림치고는 중세스럽게 괴랄하게 생겼어요. 머리가 몸통보다 크고... 약간 닭 몸통에다가 사람 머리 붙여놓은 것 같이 생겼어요.

이 천사는 파울 클레라는 사람이 그린 것인데, 1921년에 발터 벤야민이라는 철학자가 이 그림을 구입했어요. 그리고 그의 책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이 천사에게 '새로운 천사'(앙겔루스 노부스의 뜻입니다)라는 의미를 붙였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이 천사가 과거를 보고 있다는 것인데요.

천사가 응시하고 있는 과거는 폐허이자, 잔해들이에요. 천사는 무너져버린 잔해들 속에 눌려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려고 해요. 하지만 폭풍이 천사를 몰고 미래로 떠밀고 있어요. 천사는 과거의 폐허에 머무르려고 있지만, 작은 날개 탓에 폭풍에 휩쓸려 자꾸만 미래로 가는거죠. 그렇게 미래로 이끌려가면서도 천사의 두 눈은 미래가 아닌
과거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벤야민의 철학을 이야기하기 위해, 아우구스티누스와 마르크스를 이야기하는데요. 벤야민의 천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천사와 다르다고 얘기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천사는 인간을 미래로 이끄는 천사라면, 벤야민의 천사는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죠. 앙겔루스 노부스는 과거의 무너진 잔해 속에서 고통받은 자들, 희생한 자들을 추모하려는, 망각에 저항하는 천사입니다.

2 . '미래'의 구원만을 약속했던 역사철학

아우구스티누스는 410년 서고트족이 로마를 정복하고 약탈을 할때 <신국론>이라는 책을 썼어요. 기독교 국가 로마가 왜 멸망하는가?하는 신에 대한 회의에 맞서 이 책은 기독교의 신을 변호하는 성격이 있어요. 그의 로마가 왜 고통받는지에 대한 대답을 간단히 말하면 "로마 역시 영원한 나라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고통은 곧 사라질 지상도성의 고통이다. 그러나 역사의 종말에는 구원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시간관은 직선적인 성격을 띄게 돼요. 역사는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고,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죠. 역사에는 시작(창조)과 끝(종말)이 있습니다. 역사는 완성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종말에는 심판이 있고, 구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얘기하는 구원의 세계, 천상도상의 내용은 모두에게 풍요로운 공통된 양식과 모두에게 정의로운 분배가 이루어지는 공동선의 사회입니다.

벤야민은 맑스의 유물론적 해방서사를 신학의 언어를 빌려서 완성하고자 했는데, 그가 주목하기에 아우구스티누스가 남긴 기독교적 역사관이 맑스의 공산주의 사상에 두가지 측면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죠. 첫번째로는 기독교의 구원 실현의 내용인 공동선의 실현(공동 분배)와 두번째로는 역사가 완성(공산주의 사회)을 향해 나아간다는 진보적(직선적)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여기서 초점은 '진보적 세계'가 미래에 올 것이라는 미래 지향적 기대가 있다는 것이예요. 저자는 서구의 모든 역사철학에 이런 흔적이 있다는 것에 주목해요. 신의 구원계획(어거스틴)이든, 자연목적(칸트)이든, 이성의 간지(헤겔)이든, 심지어는 무신론적인 맑스의 역사적 유물론마저도 미래의 ‘계급 없는 세계’를 증명하려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종말론적 역사관의 문법을 가져오게 되었다는거예요.

3 . 세속화의 과제 : 구원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서 오는 것

종말론적 역사관은 이중성을 갖고 있어요. 억압 받는 이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구원을 이야기 하면서도, 그 구원을 현실이 아닌 역사 종말의 것, 미래의 것으로 이월 시킨다는 이중성입니다. 유물론적 역사관은 이런 이중성에 대해 비판하고 현실에서 억압 받는 자들을 해방시키려고 하지만 사실 해방서사 역시 종말론적 이중성을 답습하고 있어요.

맑스, 엥겔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은 역사가 다섯단계를 거쳐 마침내 공산주의로 발전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마치 기독교의 천년왕국처럼 미래에 완성된다는 거죠. 유물론적 사관은 종말론적 사관을 비판하는 것 같지만 '완성된 공산주의 세계'라는 신화는 레닌의 공산당 독재를 교조화 하고 당의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쉽게 반동세력으로 몰아 인권을 탄압하기도 했어요. 스탈린의 소련은 나치의 독일과 불가침조약(1939)를 맺기도 했어요.

저자는 근대 진보 사관이 종말론적 역사관을, 유물론적 역사관이 근대 진보 사관을 세속화했다고 설명해요. 그 결과 유물론적 역사관과 근대 진보 사관, 종말론적 역사관이 뒤엉켜 나타났다고 해요.

저자가 주장하는 진정한 세속화란 유대-기독교의 메시아주의, 미래로부터의 구원자 등장을 교조화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고통을 기억함으로 반복되는 역사의 파국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예요. 미래완성적 진보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진보가 아니라 현재화가 중요하다는거죠.

4 . 결론

과거의 잔해를 기억하는 천사 앙겔루스 노부스가 알려주는건, 미래의 진보낙관주의에 의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잔해와 희생된 이들을 기억할때, 반복되는 역사(진보/해방의 이름을 쓰고도 나치와 손을 잡는 소련) 폭력과 파국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진보를 신화화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화가 중요하다. 이런 뜻으로 읽었네요. 좋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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