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하면 지옥 가에 대한 생각" 뒷 이야기

in #kr6 years ago

고등학생때 블로그를 하다가 만난 한 아이가 생각난다. 내가 열아홉살. 그러니까 7년 전의 일이다. 혼자 글을 끄적거리는 습관이 있던 나는 키보드 자판 소리보다는 종이를 스치는 연필의 사각사각 소리를 더 좋아했지만, 덜렁거리는 성격 탓에 소중한 일기장을 자주 잃어버려서 백업이 가능한 공간이 필요해졌다. 그리고 글쓰는 사람들과 소통도 해볼겸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으러 올까? 들떠서 블로그 배경스킨도 가장 멋져보이는 걸로 고르고, 폰트도 여러번 바꾸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의식하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내 블로그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Today 0. 방문자 수 0. 한 달간 변하지 않는 숫자를 바라보며 처음엔 내가 SNS 좁밥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고 서러웠다. 하지만 혼자 일기를 쓰던 습관 탓인지 방문자가 없는 공간에서 글을 쓰는 것에 금방 익숙해져버렸다.

그 블로그는 완벽한 일기장이 되어갔다. 아무도 오지 않는 블로그에 일기도 쓰고,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창작시도 쓰면서 '이 정도면 잘 썼는데?' 라며 혼자 만족스러워하곤 했다. 그렇게 1년간 습작노트겸 일기장으로 블로그가 변해가고 있었다. 워낙 혼자서도 글을 끄적거리는 것이 습관이어서. 누가 보지 않는 것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블로그 어플을 켰는데 알람이 5개가 찍혀있었다. <동산님이 회원님의 게시글에 공감했습니다> 안부글도 남겨져 있었다. "우연히 들어오게 되었는데 글이 정말 좋아서 구독하게 되었어요. 자주 들러도 되죠?" 아무도 안볼것이라고 예상하고 쓴 글이 태반이라서.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생각해볼수록 뭔가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래도 칭찬은 기분 좋은 것이 아닌가. 나도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 몇가지 정보를 얻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고등학생이라는 것. 심리상담사 겸 작가가 꿈이라는 것.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 과자와 햄버거를 좋아한다는 것.

그날 이후로 0이던 Today가 1로 바뀌었고 내가 올리는 글엔 좋아요가 한 개씩 찍혀 있었다. 나의 엉성한 작가놀이에 불과한 그 공간에서 그 아이는 나의 열렬한 팬이 되어주었다. 팬 편지와 낙엽이 꽂힌 책도 선물받게 되었다. 편지에 "오빠는 글을 정말 잘 써요. 부러워요."라고 적힌 것을 보며 그 아이가 여자였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철없던 나는 당시 글을 쓰는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녔다. 내가 마치 대단한 작가인 것처럼. 나는 소녀팬도 있다고. 요즘 같은 시대에. 팬 편지도 받았다고.

아무도 관심 없는 공간에서 그런 식으로 그 아이와 글을 쓰고 댓글을 주고 받는 식의 만남을 3년간 계속하게 되었다. 그 동안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의 국문학과에 들어갔고, 나보다 글을 더 잘쓰게 되어서 나의 어설픈 작가놀이의 상대가 되어주기엔 너무 커져버렸지만. 여전히 자신을 나의 팬이라고 불렀고, 종종 손편지와 선물을 보내주었다.

언젠가 교회일 때문에 경주로 내려가게 될 일이 있었다. 그런 내용의 글을 썼는데 그녀가 댓글을 남겼다. 자기 집이 경주인데 방학이라서 자기도 경주에 내려와있다고 시간되면 만나자고. 그래서 난생처음 생긴 팬과 난생 처음 같이 밥도 먹게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보잘 것 없는 글을 그토록 반겨주어서 고맙다고 했고, 그녀는 그만큼 좋은 글들이라며 나를 칭찬해주었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SNS 좁밥이야.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은 너 밖에 없었는걸. 그녀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화를 내듯이(?) 말했다. "무슨 말이예요. 페이스북에 똑같이 올려보세요 100개는 넘게 받을걸요? 왜 아직 아무도 이렇게 글 잘쓰는 분을 모르는지 신기해요. SNS인기와 글 실력이 비례하는건 절대 아니지만 오빠 글은 사진 없이 글만 올려도 백개는 받을 글이예요. 안 그럼 제가 국문학 그만둘게요"

그때 그 아이와 만나기 위해서 서로 번호를 교환했고, 그 후로는 카톡으로 대화하는 친구사이가 되었다. 나는 그때 그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깊은 우울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카톡으로 나에게 자신의 우울한 감정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심각한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 아이는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고, 나는 어쩔줄 몰랐었다.

그 아이가 죽고 싶다는 말을 할때. 나는 전형적인 보수적 교회 목사가 얘기하듯이 점잖게 "자살은 죄야"식의 멍정한 소리를 남발해대었다. "너 기독교인이잖아. 자살하면 지옥 가는거 모르니?" 그 아이가 원했던 위로와 희망의 말을 하는 사람이 되기에 나는 너무 어리석었고, 꽉막혔었고 바보 같았다.
그 아이는 나에게 자기한테 너무 심했다 자기가 그렇게 잘못했냐는 말을 끝으로 블로그에서와 카톡에서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 일은 나한테 많은 것을 후회하게 했고, 반성하게 만들었다. 말이 중요한게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율법이 사람을 바꾸는게 아니라. 사랑이 바꾼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기독교인것이. 신학교에 다니는것이. 교회전도사라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다.

그 아이의 발길이 끊어진 뒤로 얼마 안가서 내 블로그 방문자 수가 0아니면 1에서 더 오르지 않았던 이유가 검색으로는 유입이 안되게 설정 되어있던 탓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알고 나서도 바꾸지 않고 검색 비허용으로 그대로 남겨두었다. 나는 왜 그걸 그제야 깨달았을까. 그 아이가 팬이라며 좋아해주는 것이 너무 기뻐서 더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주 금요일에 자살하면 지옥간다는 말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그 아이가 떠올랐고, 너무 미안했다. 이 글은 사실 과거에 개념없고 무례했던 나 자신을 향한 비판이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썼고, 쥐구멍에 숨고 싶은 마음으로 썼다.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답답하고 창피하다.

그래서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살을 입에 달고 살던 아이였는데 정말 죽지는 않았을까? 4년이나 지났지만 그때 내가 했던 말은 정말 미안해. 카톡을 켜보았다. 프로필 사진을 보니 친구들과 행복하게 밝게 웃고 있는 사진이 나온다. 천진난만한 웃음이다. 거봐요. 내가 뭐랬어요. 페북에 글 써보시라고 했잖아요. 좋아요 백개는 넘을거라고 제가 말했잖아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카톡은 보내지 않았다. 잘 살아줘서. 밝고 건강하게 있어줘서 고맙다. 마음속으로만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