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 에헤야 디야 바람 분다 연을 날려보자.(feat. 정태춘 들가운데서)

in #kr4 years ago (edited)

어렸을 적 살던 동네에는 그 지역과는 어울리지 않게 큰 공원이 있었다.

놀이터에는 뱅뱅 돌아가는 지금의 놀이터에는 볼 수 없는 놀이기구가 있었고
작은 동산에는 풍뎅이를 잡고, 잠자리를 잡고, 꿀 따먹던 진달래가 있었다.
공부하러 가기 보다는 운동하고 물 마시러 자주 찾던 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 옆 아스팔트가 깔린 광장에서는 신나게 자전거를 탔고,
반 친구들을 모아 야구를 했었다.

금요일마다 만나는 털보 아저씨의 방송을 보는데 정태춘 아저씨가 나왔다.
볼 때마다 심금을 울린다.

노래를 듣는데 그 어렸을 적 뛰어 놀던 공원, 광장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가 나를 위해 어디서 가져온 보조 바퀴가 달린 고물 자전거가 떠올랐다.
나는 그런 자전거 타고 공원으로 갈 수 없다고, 창피하다고 베란다에 쳐 박아뒀던 기억이 난다.

결국에 나의 창피함은 바퀴를 타고 싶은 나의 욕망에 졌다.
우중충한 베란다에서 자전거를 꺼내어 공원 광장으로 향했다.
뒤따라 온 엄마는 나의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줬고, 점점 시간이 흘러 보조 바퀴는 하늘을 향해 올랐다.
몇 년 후 그 아이는 동네 자전거포에서 삼천리 이름을 단 새 자전거가 생겼고, 또 시간이 흘러 두 팔을 벌려 하늘을 보며 그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람아 너는 어딨니, 내 연을 날려줘
저들가에, 저 들가에 눈 내리기 전에
그 외딴 집 굴뚝 위로 흰 연기 오르니
바람아 내 연을 날려줘 그 아이네 집 하늘로
바람아 너는 어딨니, 내 연을 날려줘
저 먼산에, 저 먼산에 달 떠오르기 전에
아이는 자전거 타고 산 쪽으로 가는데
바람아 내 연을 날려줘 저 어스름 동산으로
바람아 너는 어딨니, 내 연을 날려줘
저 하늘 끝, 저 하늘 끝 가보고 싶은 땅
얼레는 끝없이 돌고, 또 돌아도 그 자리
바람아 내 연을 날려줘 들판 건너 산을 넘어

그 공원에는 혼자도 많이 갔었다.
공원이 생기기 전에는 난지도와 다르지 않을 것 같은 장면이 떠오른다.
쓰레기가 가득찬 동산이었다.

생활 쓰레기보다는 큼지막한 지금 생각해보면 아파트에 딱지 붙여 내버리는 그런 재활용 쓰레기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 것들이 꼬맹이에게는 넓게 높게 쌓여 있으니 타고 넘기 좋은 정글 같은 놀이터였던 셈이다. 지금 그런 곳에서 놀다간 난리 났겠지.

그 공원에서는 연도 참 많이 날렸었다.
노래의 가사를 듣고 내가 떠올랐던 그 공원이 장소의 역할이 변했었구나를 느꼈다.

초등학교에서 고무동력기 대회가 열렸었다.
나름 손재주가 있다고 느꼈는데, 나의 비행기는 하늘을 날지 못하고 자꾸 고꾸라졌었다.
날개의 종이가 문제일까? 습자지를 발라보자. 손 마디 끝에 물이 들게 날개에 살을 발라도 고꾸라졌다.(분무기 뿌렸다 쫙 펴지는 그 느낌. 드라이어를 너무 남발해서 날개 살이 휘어져서 고꾸라졌나. 느긋하면서도 급해. 그때나 지금이나.)
고무줄을 바꿔볼까? 그래도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질 않지만 연날리기로 종목을 바꿔 다시 하늘을 향해 날렸었나 보다.
여름방학 탐구생활이었을까.
방패연을 날렸다. 곧잘 날았다.
그러나 높이 날지 못했다.

연을 직접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문방구에서 파는 연 만들기 세트는 그저 그랬다.
대나무 살을 따로 사고, 창호지를 사서 직접 연을 만들었다.

실타래가 부족했다.
하늘을 날고 있는 연은 아직도 크게 보였다.
더 작은 점으로 날려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겨울이 왔다.
바람이 더 세차게 분다.

원래 있던 두껍던 실이 감겨 있던 실타래에 집에 있던 그 보다 얆은 실이 감긴 실타래를 이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 때면 연을 날리러 공원을 찾았다.
지금 그때를 생각해보면 낚시줄에 달린 찌를 던지듯 연을 던졌던 것 같다.
강태공의 눈에는 낚시줄에는 큰 것이 낚이길 기다리는 거고
어렸던 나의 눈에는 실타래에서 던저진 연이 작아지 기다리던 것일까.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네.
내 역사니까.

집에 있던 실타래를 몽땅 다 엮었다.
그것도 부족해 용돈을 털어 문방구에서 또 다른 실타래를 사서 이어 엮었다.
연은 더 높게 날았고 멀리 날았다.
이어 실을 엮을 때마다 높이는 낮아지고 멀리 날았다.

낚시대에 찌를 고정시켜 놓고 기다리는 듯이
잔디밭 경계에 놓인 낮은 울타리에 얼레를 끼워 놓고 바라봤다.
그저 빙글빙글 꼬리를 휘날리며 제멋대로 움직이는 연을 바라봤다.

실을 계속 이었다.
우리집 베란다에는 찾아보면 간간히 실이 많았다.
얇디 얇은 실을 계속 이었다.

여름날 달려야 날던 연은 가을이 오고 빙글빙글 돌았고
계속해서 실을 이으니 겨울이 되어 점이 되었다.
이윽고 떨어졌다.

가깝게 높게 날던 연은 점점 낮게 멀리 날아
내가 엮어 보낸 실이 보이지 않게 되고 빙글빙글 돌다 점이 되어 떨어졌다.

이 노래를 듣고 마음이 동할 친구들은 내 주위에는 없을 것 같다.
이곳에는 있을 것 같아 그 감상을 남긴다.

털보가 초대한 이들 마저 만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