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드라마 이야기] 03. '머나먼 나라'(1996)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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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 김종식, 정성효 / 극본 : 손영목
출연 : 김희선, 김민종, 오현경, 이창훈, 김영철, 선우은숙, 남성훈
방송 : 1996년 7월 18일 ~ 1997년 3월 7일

‘씨네21’에서 일하던 시절 배우 김민종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 때문에 한 인터뷰였지만, 사실 인터뷰 시간의 상당부분을 '머나먼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썼습니다. 그만큼 이 드라마를 좋아했고, 드라마 속에서 김민종이 연기한 '한수'란 남자가 김민종이 연기했던 캐릭터와 그가 불렀던 노래들을 총합한 캐릭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머나먼 나라;의 공간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달동네의 다세대 주택입니다. 한수(김민종)를 중심으로 한수의 아버지 재구(김영철), 형우(이창훈)와 소영남매. 그리고 세탁소집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살고 있죠. 그리고 그 집에서 좀 내려오면 재구의 옛사랑인 여자(선우은숙)와 그녀의 딸(오현경)이 살고 있습니다. 한수의 아버지 재구는 과거의 좀도둑입니다. 교도소를 밥 먹듯이 다녀온 노장이고, 한수는 인생의 구체적인 목적 없는 동네 양아치로 살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전체적인 갈등은 운하(김희선)가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형우(이창훈)의 동생 소영이 운하의 집을 털게 되고, 이게 잘되었으면 걸리지 않을 텐데... 이를 계기로 한수와 운하가 만나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형우가 운하의 과외선생님이 되죠. 역시나 삼각관계가 됩니다. 운하는 형우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를 사랑하는 한수에게는 차갑게 대합니다. 이는 드라마를 끌어가는 한수의 또 다른 목적의식이 됩니다. 결국, 한수의 운하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종반부에 가서 한수를 죽음으로 가게 합니다. 형우 역시 많은 갈등을 겪습니다. 그의 대학 등록금을 한수가 훔쳐다 주고, 한수는 잡히지만 그는 돈을 돌려주지 못합니다. 한수는 자처해서 감방생활을 하게 되죠.

아버지 재구의 이야기도 이런 갈등에 못지않습니다. 그는 다리 한쪽을 절고 있습니다. 그 사연이란 것이... 젊은 시절, 사랑하고 믿고 있던 여자(선우은숙)가 그의 전 재산을 들고 다른 남자(남성훈)와 도망을 가죠. 그리고 그는 그 슬픔에 물에 빠져 자살기도를 하지만..... 죽지는 못하고 다리를 절게 되었던 겁니다. 선우은숙의 갈등도 이런 이유에서 생겨납니다. 주위 사람들 모두 (그의 딸까지도...)재구와의 결합을 이야기 하지만, 그녀는 그런 과거 때문에 갈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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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에서 재구와 한수의 심정을 대변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한수는 김현식의 광적인 팬이죠. 그와 한번 악수를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꿈입니다. (결국엔, 악수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운하를 그리워하며 ‘내 사랑 내 곁에'를 부릅니다. 그리고 김현식이 죽은 날 술을 먹고 그리고 김현식이 죽은 날 술을 먹고 집에 와서는 김현식이 죽었다며 아버지를 부여잡고 울죠. (드라마의 배경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재구의 노래는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입니다. 온 가족 앞에서 그 노래를 부르다가 울고 맙니다. 결국엔, 그를 보던 선우은숙까지도 재구를 안고 같이 웁니다.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을 드라마에 나온 것 같은 다세대 주택의 단칸방에서 보낸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묘사된 모습이 현실과 꼭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러 부분에서 공감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위에 설명한 것처럼 '머나먼 나라'는 김민종에 대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정리하게 된 게, 그때의 인터뷰였던 거죠. 다시 찾아보니 그때 인터뷰 기사애서 저는 이렇게 썼더군요.

"김민종은 작품에서도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남성상을 연기했다. 그리고 그의 남성상은 언제나 여성에 대한 순애보로 완성됐다. 김민종의 남자들은 싸움도 잘하고, ‘가오’도 잡지만 자신이 첫눈에 반한 여성에게만큼은 어수룩하거나(<수호천사> <미스터 Q>), 맹목적이다(<머나먼 나라>). 물론 그들은 한국의 남자배우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캐릭터이지만, 가수 활동을 겸업한 김민종은 연기를 통해 추구하는 캐릭터와 자신의 음악적 정서를 일치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독보적인 스타였다. <바보처럼>은 “그대는 이미 다른 사람과 행복하게 지내는데, 바보처럼 또 그대를 찾는다”는 절규고, 는 “우리 헤어짐은 이대로 간직하겠다”는 다짐이며, <착한 사랑>은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아픔에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그대를 사랑한다”는 고백이었다. 김민종은 “대사를 쓰듯 가사를 썼고, 연기하듯 노래했다”고 말했다. 그러니 1990년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낸 한국 남자들이 노래방에서 그의 노래를 부르는 건, 단지 음악적 정서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사실상 김민종이 구현했던 남성 캐릭터와의 접신을 시도하는 거나 다름없다. 당연히 어떤 남자는 박수를 받지만, 또 어떤 남자는 비난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