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에 강남 한복판 횡단보도에서 마주친 핏기 없는 아기엄마

in #kr6 years ago

한낮에 강남역 근처서 출발해 선정릉까지 걸어가면서 횡단보도로 대로를 건널 때였다. 아기띠로 안은 아기를 담요로 덮은 채 천천히 걷는 한 아이 엄마가 맞은편서 느리게 걸어오고 있었다. 가까워지면서 그의 핏기 없는 얼굴, 초점 잃은 눈빛, 텅 비어있는 표정을 보았고, 지나치는 찰나에 아기의 천진한 눈빛과 마주쳤다.

나 역시 터벅터벅 걸으며 마저 횡단보도를 건넜는데, 다 건널 때쯤 문득 뒤돌아봤다. 그 아이 엄마는 여전히 느린 발걸음으로 도로를 횡단하고 있었다. 초록불은 점멸했고, 빨간불이 되기 5초 전이란 숫자가 보였다. 같이 건너던 다른 이들은 모두 맞은편 인도에 이르렀는데도 그 엄마는 혼자 마지막 차선조차 닿지 못했다. 뒷모습을 보니, 외출복을 입고 나온 것 같지도 않았다. 순간, 어쩌면 좋지란 생각을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내가 뛰어가서 차들을 막아설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괜한 오지랖이란 마음도 약간 있었다. 빨간불로 바뀌자 참을성 없는 차들은 조금씩 움직였다. 클락션을 울리는 차들도 있었다. 그제서야 그 엄마도 의식하는 발걸음으로 서둘러 횡단보도를 마저 건넜다.

이상하게도 그날 한낮의 그 장면이 종종 기억난다. 내 삶의 발걸음도 가볍진 않지만, 이름 모를 당신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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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모를 울컥하는 느낌이 밀려오네요..
정말 그녀의 삶에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워 졌으면 좋겠어요..

저도요. 불과 30초의 관찰이었지만, 무언가 울컥했습니다.

아이와의 표정이 넘 대조적이네요 그 여인의 표정이 환하게 웃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아이의 표정을 보는 그 찰나에 갑자기 많은 생각이 든 것 같아요.

별 일 없었으면 좋겠어요ㅠㅠ

그러게요. 저도 걱정되서 뒤돌아봤어요. 횡단보도 건너다가 막판에라도 바삐 움직인 건, 그래도 아기를 안고 있어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