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를 위해 조강지처의 목을 자른 무패의 명장.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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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백전백승 무패의 명장. 출세를 위해 조강지처의 목을 잘라버린
병법의 달인 오기에 대해 포스팅해보겠습니다.

오기가 얼마나 쩔었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는데, 어렸을 적 자기다 더 강한 깡패를 상대로 덤비다가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 그런데 그는 다음날 다시 그 깡패를 찾아가 다시 깡패를 도발했고, 그는 또다시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

그러나 오기는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계속 그 깡패를 쫓아다니면서 덤볐고, 결국에 밑도 끝도 없는 오기(의 오기)에게 지친 깡패는 마지못해 싸움에서 져주었다.(오기의 사나이...오기의 오기)

별다른 수입 없이 백수생활을 하는 터라 벼슬을 구하려고 명망있는 사람들에 연줄을 대기 위하여 천금을 날리는 바람에 아버지는 홧병으로 돌아가시고,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자, 홧김에 칼 들고 가서 평소에 비웃던 사람 30여명을 찾아내어 차례차례 모두 살해했으며, 살기 위해 도주해야 했다.

떠날 때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긴 어머니가 크게 꾸짖자, 어머니 만류에도 팔을 물어뜯어 피를 흘려 그 피로 재상이 되기 전까진 찾아오지 않겠다고 어머니께 맹세했다고 한다.

한때 공자 제자인 증삼의 아들 밑에서 수학한 적이 있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공부에만 열중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스승이 묻자 어머니와의 약속을 언급하며 자신을 변호했고 효를 중요하게 여기는 유가의 사상의 특징상 그는 증삼가문에서 계속 공부를 할 수 없었고, 결국 쫓겨났다.(독한놈...)

증자 선생이 "저런 독한 놈은 차라리 멍청한 채로 남겨둬야 했는데 학문을 가르쳐줬으니 더 큰일을 저지를 것이다."면서 한탄했다고 한다.

결국 오기는 유학을 버리고 병법을 익혔다. 그리고 그는 노나라에서 벼슬을 얻었는데, 마침 제나라가 노나라를 쳤다. 그런데 노나라 조정에선 오기의 재능을 알면서도 그 아내가 제나라 출신이라 선뜻 그를 장군으로 쓰기를 꺼려 했다. 이를 들은 오기는 주저 없이 아내의 목을 베고 대장군 자리에 오른 다음 노나라에 침입한 제나라를 상대로 하여 싸움에서 승리한다.

비록 그는 제나라 군대와의 싸움에서 큰 전공은 세웠으나 대장군에 기용되기 위하여 아내를 죽인 일이 빌미가 되어 노나라에서 쫓겨났고, 위나라 문후(文侯)를 만나 장수로 기용된다.

기용되자마자 오기는 진나라가 어수선한 틈을 노려 침공을 개시하였고, 다섯 개의 성을 빼앗는 전공을 세웠다.

이렇게 오기가 군대를 이끌고 진나라와 대치할 무렵 그가 세운 전적은 명실공히 불패였다. 덧붙이자면, 공을 세우지 못한 예비병들로 급조된 5만의 부대로 50만의 진나라 군대를 상대로 음진전투에서 승리했다.

오기는 수십만이 동원된 큰 전투만 76회(국운을 걸고 싸우는 걸 회전이라고 함) 치른 결과 그중 64회를 승리로 이끌었고 나머지 12회는 무승부였다. 또한 죽을 때도 무승부로 죽는다..( 마지막 부분 스릴러급 반전)

음진 전투로 진나라에 기둥뿌리를 뽑았던 오기는 아예 진나라 깊숙이 쳐들어가 승리했으나 간신들의 모함을 받고 초나라로 도망간다.

이후에 기원전 386년 진나라를 이어받은 진출공이 변란에 휘말리고 진나라의 혼란기가 계속되었음을 감안하면 오기와 위나라 양측에게 대단히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오기가 만약 위나라에 남아있었면 통일 진나라와 시황제는 역사에 없었을 수도 있다.

이후 위나라는 기원전 342년 마릉 전투에서 결정타를 얻어맞아 완전히 몰락하고 진나라 서쪽 영토를 완전히 정복당하고 만다.

출셋길에 오르기 위해 스스로 아내 목을 친 그의 무자비한 면모나, 여자와 재물을 꺼리지 않았다는 악평이 자자했지만, 의외로 장수로서 병사를 통솔할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병사가 등에 종기가 났다는 보고를 듣자 그 병졸을 찾아가 입으로 고름을 빨아준 이야기가 바로 그의 다른 면모였다.

그 병사의 어머니는 이러한 소식을 듣고는 남편도 오기의 그런 행동에 감동받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다 전사했는데, 이젠 아들마저 오기를 위해 싸우다 전사하게 생겼다며 오열했다는 기록이 있다. (...)

더 나아가 오기는 병졸들과 똑같이 입었고 똑같은 음식을 먹었으며, 행군을 할 때에는 수레에서 내려 같이 짐을 지고 걸었다고 한다.(쩔긴쩌네요)

초나라 도왕(悼王)은 오기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재상 자리를 내주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어머니와 피로했던 약속을 지킨 셈이다. 하지만 오기가 재상이 된 뒤에도 어머니의 묘를 찾아갔다는 기록은 없다.(이런 호로..)

당시 초나라는 영토에 비해 국력은 약했는데 젊은 시절부터 바라 마지않던 재상 자리에 오른 오기는 대대적인 부국강병책을 펼쳤다. 쉽게 말해서 초나라 왕족과 귀족들이 이름값으로 받아먹던 녹봉을 몰수해서 국고로 환원시킨 것이다.(레전드 장군이자,레전드 정치가)

정확히는 촌수가 먼 왕족과 귀족들의 특권을 없앤 뒤 탄탄해진 재정 덕분에 초나라는 군사력을 불리며 오기의 지휘하에 강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졸지에 특권을 빼앗긴 높으신 분들은 이를 갈고 있었다.

결국 든든한 후원자 도왕이 세상을 떠나자마자 귀족들이 작당하고 오기를 죽이려고 난을 일으켰다. 죽음을 직감한 오기는 꾀를 내어 죽은 도왕의 시신 위로 엎드린 다음 무수히 날아오는 화살에 맞으면서 "내가 네놈들에게 군사 쓰는 방법을 보여주마"라고 호통치고 최후를 맞았다.

당시 초나라의 법을 따르자면 왕의 몸에 해를 끼치는 자들은 사형이었고 물론 시신도 해당했다. 결국 초나라 귀족 가문 중 무려 70여 세대가 처형당했다고 한다.(소오름... 죽을 때도 결국 무승부)

하지만 날아간 머릿수만 보고 따지면 무승부는커녕 아예 대승이다. 머릿수만 비교하면 대승이긴 하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본인 목숨이 날아갔는데 대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고로 무승부)

눈부신 전공의 백전백승 장군, 밀레니엄을 앞서간 파격적인 정치가였지만 가족조차 한낱 출세의 도구로 보는 비정한 행태 때문에 전설적인 업적을 만천하에 증명하고도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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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 정말 사람 인생이 가지고 있는 온갖것들을 다 경험하고 살다 죽은 사람이지요. 스스로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즐겁다? 힘들다? 전 오기와 같은 삶은 살고 싶지 않네요. ㅎ

후.. 전그래도 저렇게 한번 출세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