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 여행기] 여행 출발

in #kr7 years ago (edited)

*여행기간 : 2017. 7. 16~ 2017. 7. 28
*페이스북에 여행기를 작성했다 약간의 수정을 거쳐 올림.

예전에 친구가 해줬던 말이 있다.
"오빠는 잘 빡친다기보다는 빡치는 일이 잘 일어나는 거 같아."

그건 정말이다. 그런데 나를 빡침으로 이끄는 불행의 정도가 생각보다 견딜만하게 소소하다.

<7.15 사이판 출국 D-1>

아침 일찍 공항에 도착해야하는데 혜화에서보다 홍대에서 가는 것이 빠르기 때문에 전 날부터 친구랑 함께 있었다.
낮에 버거킹을 먹었다.
밤에 묵밥을 먹었다.

<7.16 사이판 출국 D-0>

새벽 1시부터 갑자기 배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의무병 출신의 자가진단을 통해 배아제를 한 알 먹고 누웠는데 복통이 너무 심해서 잠들지 못했다.

새벽 5시 무렵 결정을 해야 했다.
가까운 세브란스 응급실을 가거나, 지금 바로 준비해서 인천공항 응급실을 가거나.

혼자 가는 여행이었다면 포기하고 세브란스를 갔을 정도의 아픔이었는데 친구가 있어서 꾸역꾸역 참고 인천공항 응급실을 갔다.

똑바로 일어나서 걷지를 못할 정도로 아파서 여행 가방은 친구가 들어주고 나는 캐리어를 지팡이처럼 쓰면서 철도까지 갔다. 지하철 안에서는 못버티겠다고 해봤자 어디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천공항 응급실까지 가야만 했기 때문에 몸을 말고 계속 끙끙 거리면서 버텼다.

의사 쌤은 의아해하셨다.
진료 차트에 먹은 음식을 적다가 묵밥은 쓰지도 않으셨다. (너무 건강한 느낌의 음식이었나)

다른 해산물이나 상할만한 음식 안 드셨어요?
탈 난 거 같은데 설사가 없으시다구요?
오히려 설사를 좀 하시면 배가 덜 아플 거 같은데.. 메스껍지도 않으세요?

굉장한 장운동 기능 보유자로 하루에 최소 2회 화장실을 가는 내가 배변이 안되는 바람에 더 아프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사이판에서도 약간의 변비를 겪었다. 오히려 평소 화장실을 못가는 친구가 매일같이 화장실을 갔다.)

어찌되었든 주사를 맞고 약을 받은 다음 여행을 떠날 수는 있다는 안도감에 출국장으로 가는데 두 번째 문제가 생겼다.

수화물 부치는 줄이 라인을 꽉 채워서 서있었다.

예정보다 일찍 나왔지만 응급실을 갔다 오느라 + 아파서 걸음이 느렸기 때문에
티켓팅을 하러 왔을 때는 이미 출국 시간이 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굉장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직원이 사이판 가는 사람을 찾아서 따로 줄을 세워주었다. 굉장한 안도감을 느끼고 있을 무렵 좌석 티켓을 뽑은 직원이 말했다.

"김동욱 고객님, 랜덤으로 선정되는 2차 보안검사에 선정되셨거든요."

티켓에 SSSS가 찍혔고 별표가 3개나 붙었다.

IMG_2006.JPG

나는 비행기 탑승객 최후(?)의 5인 중 한 명으로 당첨되었다!

다행인 점은 내 수하물을 친구 편으로 부쳐주어서 사이판에서는 추가 검사를 안 받고 일찍 짐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도?
그리고 보안 검색대에서 받는 2차 검사는 생각보다 가벼운 편이었다.
짐 한 번 더 훑고 몸검사 하는 정도. 그리고 비행기 탑승 직전에도 한 번 더.

아주 스펙타클하게 일이 벌어졌지만 갖은 도움과 감당할만한 정도의 불운이어서 모든 난관을 헤치고 출국 전 인터넷 면세도 찾을 수 있게 되었고 공항 셀카도 한 장 찍을 수 있게 되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마법처럼 배아픔이 사그라들어 급 쌩쌩해졌다.

p.s. 이 글은 비행기 탑승이 지연되어 기다리는 동안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