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의 분투: 바라건데 죽지만 말아다오

in #kr6 years ago (edited)

많은 별명이 있었지만, 요새 내가 새로 얻은 별명은 파괴의 신이다. 파괴의 신이 진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파괴의 신은 만화가 주호민 정도였는데 요즘 내 파괴력은 가히 주호민을 능가하는것 같다. 분야 별로 망라하지면 글을 쓰는 내 마음이 너무 착찹해질것 같아 오늘은 매우 소분류에만 집중해보면 식물.

어릴 때 집 옥상이 넓어서 엄마가 거기에다 이것저것 심어놓으시면 수시로 올라가보던 재미가 있었는데 난 그때부터 실용적인걸 좋아했는지 열매가 열리는 딸기, 방울토마토, 고추, 상추 등등(먹을 것을 좋아했다고 보는게 더 맞을듯) 을 좋아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꽤 오래 전부터 베란다에 이것저것을 키워보았으나, 죽었다. 모조리 죽었다. 

열매가 열리는 것들은 벌레가 생겨 죽나싶어 종목을 잘 죽지않는다는 것으로 바꿔보았다. 산세베리아, 해피트리, 고무나무도 심어보고 봄이 되면 일부러 화원에 가서 구경하고 잘 키워보겠다며 관리가 쉽다는 것으로 데려왔지만 그것들도 역시나....죽은 아이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특히나 안타까웠던 것은 동백이었다. 윤기 도는 잎과 탐스럽게 붉은 꽃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줄 몰랐는데 잘 자라는가 싶더니 갑자기 꽃이 하나씩 떨어지더니 시름시름 죽어갔다. 물주는 주기도 조절해보고, 자리도 바꿔보고 영양제도 줬다가 별짓을 다 했지만 결국 앙상하게 말라 죽었다. 

 

 그리고 홍콩이


그래서 안키웠다. 그냥 두면 잘 자랄 아이들인데 내 손을 타면 죽는것 같아서 이쁜 화분을 보아도 눈 질끈 감고 그냥 왔다. 나중에 마당이 넓은 집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마당에 잘 심어 두고 보리라 하는 맘으로 참고 있었는데 그런 내가 불쌍했는지 어느 맘씨 좋은 분께서 홍콩야자 줄기를 물에 담가 뿌리를 내어 직접 심어주셨다.  그 연약한 아이가 차를 타고 오는 동안 혹시나 상할까 조심조심 와서 심어주신 그 정성이 고마워서 잘 키워보려 애썼다. 

미세먼지 때문에 문을 거의 닫아놓고 지내는 터라 통풍이 안될까봐 출근하면서 베란다 문을 살짝 열어두고 내놓았다가 저녁 때는 쌀쌀해서 들여놓고 하기를 열흘 남짓. 물에서 뿌리를 내린 아이라 흙으로 옮겨심고 잘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별 이상 없어 보여서 괜찮은 줄 알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저녁에 화분을 들어서 옮기려는데 홍콩이가 휙하고 넘어졌다. 어릴때 친구랑 모래성 쌓아두고 가운데 막대기 하나 꽂아 모래를 쓸어오는 놀이에서 막대기가 쓰러지듯 그렇게 별안간 쓰러졌다. 자세히 살펴보니 분명 있던 뿌리가 없다.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었겠지만 결국 홍콩이도 그렇게 가고 말았다. 뿌리가 분리돼 그냥 화분에 꽂혀(?) 있는 상태였음에도 이상을 캐치하지 못한 내 잘못이 가장 크겠지만 맘이 상했다. 뿌리없는 홍콩이를 물에 다시 담가놓으면 살까 싶어 물컵에 담가 계속 지켜보았지만 이제는 잎까지 하나하나 떨어뜨리더니 아예 가고 말았다. 

홍콩이의 안부를 묻는 홍콩이 분양자에게 이실직고를 했다. 그 분은 "흐음....웬만해서 죽지않는 아이인데 역시...." 라고 말끝을 흐렸다. 끝말이 왜 역시 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인 자는 할말이 없는 법.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홍콩이2


그렇지 두어달쯤 지났을때 홍콩이 분양자께 연락이 왔고 다시 방문하셨다. 이번엔 웬만해서는 죽지 않을거라고 걱정 말라더니 직접 본 홍콩이는 먼저 간 홍콩이가 혈혈단신이었다면 유서깊은 가문의 종친회 같달까? 규모가 비교가 되지 않았다. 홍콩이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일반적인 잎꽂이로는 나의 파괴력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아예 줄기를 담가 뿌리를 내려 오셨다. 저번 것이 손가락이라면 이번 것은 팔을 뽑아온 느낌. 당시에는 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가 맘 상했을까 바로 준비를 해서 두달 가까이 잘 키워서 가져오신 것이었다. 뿌리를 보니 마치 잘자란 대파의 그것과 같았는데 이번에도 정성스럽게 잘 옮겨 심어주셨다. 분양자의 정성을 봐서라도 이것마저 죽일수 없지라며 나의 고군분투는 시작되었고 그리하여 결과는??

며칠 볕이 너무 뜨거워서 잎이 좀 탄거같아 다시 실내로 이동!! 사진에서 윗쪽 색이 옅은 부분이 새로 잎이 난 부분이다. 나머지 색이 진한 부분을 물에 담가 뿌리를 내어 오셨으니 저정도면 정말 죽이기도 쉽지 않지...암만....

감사하게도 홍콩이2는 새 잎을 피우며 잘 자라고 있고 나는 기분이 좋아져 어제 또 일을 저질렀다. 잠시 말설였지만 선인장인데...홍콩이2도 옆에서 잘 자라고 있으니 괜찮겠지. 바로 이 아이들인데 어제 점심먹으러 간 곳에서 마침 팔고 있길래 냉큼 업어왔다. 

새로 모셔온 아이들의 자태. 엄청 이쁘다.ㅎㅎ

이 아이들을  모시고 와서 주차하는 중이라 하니 통화하던 동생이 한 마디 한다.

"다육아 화단으로 튀어!! 아직 늦지 않았어!!"

이미 늦었다.ㅋㅋ 아이들이 떨고있는거 같은건 기분탓이겠지?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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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 공들인 많큼 보답을 하지요.

맞는 말씀이에요. 잘 키워서 분갈이도 해보고 파괴의 신이라는 오명도 벗어야겠습니다.ㅎㅎ

저도 요즘 식물에 관심이 많아서 얼마전에 화분을 샀는데,
극락조는 크게 신경안써도 아주 잘크는데, 안시리움이 죽어가고 있어요ㅠㅠ
빨간색 꽃잎이 뽀인트라 구매했다가 관리를 못하고 있네용

그러게 말이에요. 같이 두고 키워도 누구는 살고 죽고....ㅜㅜ그래도 새순나고 하는거 보면 그야들야들한 잎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어요. 우다람 님도 홧팅하셔서 안시리움 사진 언제 한번 올려주세요!^^

지금 상태가 이런데, 어찌관리해야할지요ㅠ
저 죽은 잎사귀는 우선 떼야할까요
20180606_181501.jpg

흐엉~ 제가 뭐라도 알아서 조언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저야말로 파괴의 신인지라... 스팀잇에 고수 분들 많으시니 사진 보시면 누군가는 도움되는 댓글 달아주실거에요. 같이 기다려보시지요.
그나저나 안시리움 참 예쁘네요.

네~ 빨간 뽀인트 때문에 이뻐서 구입했는데 저 역시 '파괴의 신' 동료인지라ㅋㅋㅋㅋ

아...안그래도 처음 식물들 말씀하실때,
저도 예전에 키우다가 과도한 사랑으로 인해서
저승가신 선인장이 생각났는데 마지막에 등장하는군요 ㅋㅋ

물 안줘도 잘 산다길래 그냥 생각날때마다 분무기로 물 좀 쏘여주고
닦아주고 했는데,그 정도 관심에도 뿌리가 썩어버렸습니다 ㅠㅠ

그래서 어르신들이 과유불급이라 하셨나봅니다. 저도 그게 그렇게 안되네요.ㅋㅋ 이번 기회에 선인장을 기르며 중용의 미덕을 실천해보렵니다~ㅋㅋ

ㅎㅎㅎㅎㅎㅎ 저도 키우는 식물이 모조리 죽는 바람에, 지금은 선인장 하나 빼고는 집에서 아무것도 기르지 않고 있어요. 남은 선인장은 왠만해서는 안죽는다는 다육이인데, 얘도 요즘 좀 상태가 메롱이네요ㅠㅠ

대체 원인이 뭘까요. 저도 애들한테 물어보고 싶습니다. ㅜㅜ
오랜만에 의욕적으로 데려온 애들이니 저도 잘 키워서 나중에 경과보고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그러게요. 시원하게 뭐가 필요한지 말이나 해주면 답답하지라도 않을텐데 말이죠ㅠㅠ 식물은 왜 말을 못할까요...ㅠㅠ

이번엔 꼭 건강하게 잘 기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화이팅!!!:-)

퐈이팅!!^^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매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