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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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형규 씨에게 소원이 하나 있다면 50평생 한시도 일을 쉬어본 적 없는 그의 어머니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고 이모들과 좋아하는 꽃구경을 다닐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이다.
평생 부모에게 걱정을 끼친 적 없던 홍형규 씨는 착실하게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등록금 부담을 덜고자 입시결과보다 두 등급 정도 낮추어 지방 거점 국립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대학생활 내내 알바를 놓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홍형규 씨의 성실함을 보상해주듯 졸업 직후 본 면접에서 면접관은 별다른 질문 없이 '성실해 보이네.' 한마디로 합격을 하였고, 상경 3년 만에 중견 유통회사 영업직 대리 직급을 달았다.

전남 화순에서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둔 3남중 차남으로, 여느 둘째가 그러하듯 다른 형제들과 비교하여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지는 못하였지만 성인이 된 현재, 소위 꿈을 좇는다는 장남과 비교하였을 때 더 효자에 가까웠다.

직업의 특성상 외근이나 외부 미팅이 잦았고 조금이라도 월세를 줄여보고자 선택한 안양이라는 거주지의 대가로 출퇴근 왕복 세 시간이라는 기회비용이 생겼다. 때문에 홍 씨는 입사 이후 꼬박꼬박 들었던 3년 만기 적금을 탄 김에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인 셈 자가용을 사기로 했다.
혈혈단신으로 상경하여 악착같이 살던 홍형규 씨도 좁은 원룸이나 바퀴벌레, 미세먼지는 참을만했지만 도저히 출퇴근길 지하철속 압축된 사람들 만큼은 참기도, 적응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홍형규 씨가 갖고 있던 유일한 취미라면 취미인 것이 바로 자동차 잡지를 보는 것이었다. 중학교 시절 집 근처에 있던 이발소에는 항상 한두 달이 지난 자동차 잡지가 놓여있었고 그것 때문에 홍형규 씨는 항상 그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랐다. 한번 잡지를 잡으면 한 시간은 넘게 사진들을 보며 훗날 자신이 갖게 될 첫 차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가졌고 그게 유일한 홍형규씨의 취미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막상 적금을 타고 5000만원 남짓한 돈이 손에 쥐여지니 그토록 갖고싶던 머스탱 보다 쭈글한 어머니의 눈가가 먼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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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식 i30 에 몸을 싣고 스마트폰이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남태령고개를 지나 사당에 다다르자 형규는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을 접하게 된다.
네비게이션 대신 달아놓은 스마트폰 화면이 암전되더니 이내 부르르 떨린다.


"응, 엄마. 나? 출근중이지. 응응.
차 완전 깨끗해, 좋아.
요즘세상에 누가 차샀다고 고사를지내.
내가 먼저 얘기 안하면 아무도 중고인지 모른다니까?
딜러가 그랬는데 이게 어디 회사 사모님이 장볼때만 타던거라 완전 땡잡은거래.
응응. 그렇다니까~. 걱정말고 잘 다녀와. 더늙으면 이제 이모들이랑 놀러도 못다녀.
주책맞게 울긴 왜울어? 나 운전해야돼. 응 알았어.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


사거리 신호를 대기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지껏 이 스물아홉 청년에게 사당은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는 지하 통로에 불과했다.
상경 3년만에 처음 접한 사당의 지상세계는 너무나도 어색하기만 했다.
'지난 3년간 숱하게 지나치던 땅굴 위 세상은 이러했구나..'
홍형규씨는 비로소 지상으로 나왔음을 실감했다.
눈을 옆으로 돌려보니 그가 잡지에서 수도없이 오려내던 머스탱이 신호를 대기하고 있었다.

홍형규씨는 창문을 내리고 짖게 썬탠되어있는 머스탱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자, 희안하게도 배꼽 위에서 이상한 울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ren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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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글에 추천이 없는게 이상하네요. 추천합니다. 그리고 좋은글 고맙습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스팀잇에 저같은 똥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에 써보았습니다.
앞으로 종종 써보겠습니다. 좋은주말되세요:D

땅굴위세상이라...
박람회 글 보고 재밌어서 찾아왔는데 이 글 역시나 재밌네요.
팔로우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후덜덜한 필력에 절로 엄지가 올라가네요.
멋진 글 잘 읽고 팔로우 하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