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책> 코믹잔혹극 우먼스플레이션

in #kr7 years ago

#산하의오책

웃기는 호러 - <우먼스플레인>을 읽는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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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 잔혹극이라는 장르가 있다. 사람이 죽어나가고 피가 튀고 도끼가 머리를 가르는데 도무지 무섭지 않고 되레 낄낄대고 웃게 만드는 류를 말한다. 앞뒤를 바꿔도 비슷하다. 잔혹 코믹극이라고 해도 뜻도 비슷하고 내용도 유사할 것이다. 상당히 끔찍한 얘긴데 보면서 쓴웃음을 날리게 되는 것도 역시 같고 말이다. 어제 오늘 내리 읽은 이선옥 작가의 <우먼스플레인>을 나는 이 장르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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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몰랐는데 페친 중에 ‘페미니스트’ 분들이 꽤 많았다. 신문 지상이나 언론에 여성계 대표격으로 나와서 인터뷰하는 분도 계셨고 페미니즘의 기수로 날카로운 언설을 날리는 분도 있었으며 미처 몰라뵈어 황공할 정도로 유명한 분도 나중에 알고 보니 페친 목록에 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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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은 싹 빠지셨다. 몇 번의 ‘사태’를 거치면서였다. 심지어 어느 유명한 페친은 “왜 김형민 글에 좋아요 눌러요” 하는 항의를 받았다는 말을 하신 적 있는 바, 그 뒤 정말 한 번도 좋아요 안누르시고 있다. 낄낄. 어 근데 무섭단 말이야. 이런 코믹잔혹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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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페미니스트들 왈 남자 페미니스트란 유니콘과 같은 존재라니 내가 비록 강동원 같은 준마에 비견된다 하나 어찌 마빡에 뿔을 달려고 노력하겠는가. 애초에 말대가리 뿔 날 일은 처녀수태만큼이나 어려운 일인 것을. 그 뿔을 달려는 노력을 어찌 그리 쉽게 포기하느냐는 준엄한 호통에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지만 노력에 앞서 내 마빡에 붙일 뿔이 어떤 뿔인지에 대해서는 페미니스트들이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 주실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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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남자 페미니스트는 유니콘이라고 상상 속 동물 취급하는 ‘건방짐’으로 무슨 ‘운동’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운동을 하겠다면 더 친절해야 하고, 무엇보다 상식적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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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네 상식이란 것이 얼마나 가부장제 편견에 찌들어 있으며 남성 카르텔의 세뇌를 받은 것인지 아느뇨 책상을 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상식이란 대개 최소한의 것이다. 인류가 지난한 역사 속에서 이것만은 설치하자고 합의한 안전판이고, 점프하기 위해 놓은 튼튼한 디딤돌이고, 후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 ‘개인의 기본권’, ‘증거에 의한 처벌’ ‘삼권분립의 원칙’ ‘표현의 자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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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우먼스플레이션>이라는 코믹 잔혹극을 보다 보면 이런 상식들이 지리멸렬 오합지졸로 흩어지고 있는 게 보인다. 물론 그 상식들이 여성에게 어떻게 적용돼 왔느냐는 호소는 깊이 경청할 필요가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몰상식을 동원하여 몰상식을 몰아낼 수는 없는 것이고 야만을 물리치는 또 다른 야만에 시민권을 부여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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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좀 그렇지만 아직도 그 천재성에 존경을 마지않는 박노자 선생이 그 한 예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좀 더 검색해 보니 박노자 선생은 이런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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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본질상 위력적인 관계에 있어서의 성적 결합의 약한 쪽, 즉 여자/하위자가 "성폭력"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할 경우에 일단 거의 100%는 "위력에 의한 강제"를 유죄추정해도 됩니다. 이와 같은 성폭력 고발이 불러일으킬 엄청난 심적 상처와 각종의 현실적 불이익 등을 불사하여 고발했을 정도라면, 이런 관계 속의 부득이, 불가피한 그 "부자유성"이 분명히 개입했다고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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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봐 그럴 듯 하지만 이건 아주 코믹하고 잔혹한 말이다. 동시에 상식을 무너뜨리는 소리다. 일단 ‘유죄 추정’ 자체라는 단어 자체가 폭력적이기도 하거니와 ‘위력적인 관계에서의 하위자’가 말하는 것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가히 홍위병 이상의 억지다. 그 ‘위력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누구이며, ‘하위’에 있는 자라고 하여 “성폭력 고발이 불러일으킬 엄청난 심적 상처와 각종의 현실적 불이익”을 ‘상위자’에게 뒤집어씌워 엿 먹일 가능성이 전혀 없는 ‘천사의 지위’를 부여하는 자는 또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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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급진적인 접근이 아니면 이 상황을 개혁시킬 수 없기에.... 통념상 '권력남'의 그 영향권 내에서의 성적 행동에 대한 일종의 유죄추정이 보편화”돼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면 넋을 잃고 만다. 이런 식이라면 이선옥 표현대로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집 몇 채 가진 이들 집을 빼앗아 무주택자에 나눠 된다.” 닐니리야. 오늘은 투쟁 내일은 해방 이 밤을 노래 부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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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존경하는 표창원 의원이 국회에서 안희정 1심 판결과 관련하여 여가부 장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사법부 판결에 대해 행정부 장관이 언급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말씀으로 일관하고 계신데 그렇다면 여가부의 존재 이유가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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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의원님. 여가부가 사법부에 시비 걸라고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안희정이 참 발정난 수캐처럼 킁킁거리고 다닌 건 익히 알겠는데 그렇다고 ‘유죄’를 국회의원이 단정하고 행정부가 사법부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호통은 어이하여 나오는 것인가요 하는 소리가 책을 읽다가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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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라는 칼에 날이 시퍼렇게 날이 들수록 손잡이라는 상식은 있어야 한다. 손잡이 따위 필요 없이 온통 날이 선 칼만 쥐고 정휘두를 때엔 필경 자기 손 역시 망덕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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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동안 이른바 한국의 ‘일부’ (강조한다! 일부!) ‘페미니즘’이 보여 온 행각은 사실 손잡이 없는 청룡언월도를 휘둘러 온 것과 비슷했다. “메갈리아는 일베에 조직적으로 대응한 유일한 당사자다.”(정희진)는 턱없는 거짓말 (몰랐다면 턱없는 무지)을 발현하고도, 이수역 폭행 사건 당시 “폭행 정도가 살인미수에 가깝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무시무시한 발언을 날리고도,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두고 그 난리를 벌이다가 “아니면 말고”로 침잠해 버렸던 페미니스트들이 그 손에서 떨어뜨린 피는 ‘가부장제로 말라버린 우리들의 밭고랑을 피로 물들일“만큼 지천이다. 이 책은 그 코믹잔혹을 꽤 정갈하게, 냉정하게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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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도 있다. 또 하나의 편향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물씬 드는 부분도 있다. 곰탕집 사건이라든가 홍대 앞 스튜디오 사건에 대한 언급에서는 혀를 차기도 했다. 기실 가장 마음에 안드는 부분은 작가가 출연하고 이 책을 묶는 기본 재료가 됐던 유튜브 방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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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하필이면 목사 아드님하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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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에 “"유영철을 풀어가지고 부시, 럼스펠드, 라이스는 아예 XX(성폭행)을 해가지고 죽이는.....” 류의 발언으로 선거 한판 망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우셨던 분과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오히려 작가에게 해로울 것 같고, 이 책의 의미에도 걸맞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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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대답은 간단했다. “도무지 내 말을 할 통로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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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사 “안희정은 사실 유죄일 수는 없어.”라고 말하는 수십 명의 법조인과 공무원과 교수님과 교사와 기자와 PD를 만났지만 그 누구도 그걸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판에 이선옥의 말을 용감하게(?) 내놓을 경로를 제공할 매체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의 문제와 맞닿게 된다. 자기 주장은 열렬한데 남의 주장과 부딪치지는 않으려는. 제대로 일합을 섞지 않고 무시하고 외면하는 가운데 지지자를 향한 양쪽의 언성만 높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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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이 책에 나오는 얘기들을 통쾌하게 한 번 까 줬으면 좋겠다. 꼭 ‘젠더’를 이해하고 ‘성인지감수성’을 알아야 이야기할 수 있고, ‘백래쉬’의 혐의에서 자유로우라고 충고한다면, 그 뒤에 뭘 얘기하든 하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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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세상에 어느 운동가들이 그 따위로 운동해 왔던가. 그냥 우리가 지닌 상식선에서, 잘못된 상식을 덜어내고, 인간의 보편적인 존엄성을 해치고 부당하게 인간을 억압하는 현실을 조명하며, 그를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되, 그것이 얼마나 상식적인 일인가를 설명하면 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은 과연 그 노력에 충실했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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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얘기하면 나는 또 낄낄대는 한편 무서워진다. 내가 봤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터지지만, 코믹에 따르는 잔혹극에는 소름이 돋는 것이다. 아 이런 코믹잔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