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죽인 전재수의 편지(?)

in #kr7 years ago

며칠 뒤면 <딸에게 들려주는 한국사 인물전>이 나올 텐데 그중의 챕터가 '전두환이 죽인 사람들'의 편지체 모음이다. 광주항쟁과 관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빠질 없다. 나이 열 한 살의 희생자 전재수의 편지(?).


나는 1970년생, 개띠였어요.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족들하고 오순도순 살면서 학교에 충실히 다니던 효덕초등학교 4학년생이었지요. 형도 있고 누나도 있고 여동생도 있었지만 학교에서 상 타오는 건 나밖에 없었어요. 아버지는 엄한 분이셨지만 타온 상장을 내놓으면 기분이 좋아지셔서 아이스크림 값도 적잖이 쥐여주시곤 했죠.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 일도 못 나가시고 집에 누워 계셨는데 저랑 여동생이랑 놀다가 좀 다퉜어요. 꼬맹이가 울고 난리를 치니까 아버지가 버럭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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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얼굴을 보니 목침이라도 날아올 것 같더라고요. 아버지는 소작농이었죠. 한창 일할 것 많은 봄에 자리보전하고 계시니 그 속이 얼마나 갑갑하셨겠어요. 냉큼 집을 나섰죠. 잽싸게 고무신부터 챙겼어요. 9일 전이 내 생일이라 어머니가 사주신 신발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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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그날은 일요일도 아니었는데 학교에 가지 않았어요. 광주 시내에서 큰 일이 벌어져서 학교를 쉰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우리 집 앞으로 난 도로에 트럭들이 먼지 무지하게 뿜어내면서 지나갔어요. 거기엔 군인 아저씨들이 많이 타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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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꽤 많은 애들이 군인 아저씨라고 그랬어요. 그 멋진 군인 아저씨들이 그야말로 트럭 타고 지나가는 걸 보고 어떤 애들은 깡충깡충 뛰며 손을 흔들기도 했어요. 이상한 건 아저씨들이 꼭 우리 아버지처럼 화난 얼굴을 하고 우릴 거들떠도 안 보는 거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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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탕탕 총소리가 온 마을을 울렸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건 군인 아저씨들끼리 싸움이 난 거였어요. 트럭에 실려 오던 군인 아저씨들을 적으로 오해한 또 다른 군인 아저씨들이 방아쇠를 당겼고 그러다가 여러 명이 죽어버렸지요. 트럭에 탔던 군인들은 공수부대라고 했고 오해해서 총질한 군인들은 보병학교라는 곳의 군인이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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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는 집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놀았어요. 트럭에 탄 군인들이 다시 우리 쪽으로 다가서는 것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뛰어놀았어요. 그때 군인 아저씨들의 얼굴을 먼발치에서 한 번이라도 봤더라면 눈치 빠른 나는 살았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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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퍼런 눈을 하고 이를 득득 갈면서 우리 쪽을 향해 다가오던 그 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봤으면 나는 친구들에게 “튀자!” 외치고 내가 먼저 달음박질쳤을 거예요. 하지만 그러지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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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륵 뭔가 기분 나쁜 소리가 귓전을 때렸어요. 학교 운동장 끝에서 끝까지의 반도 안 되는 거리에서 군인들이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죠. 워매 우리를 쏜다! 아이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뛰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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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가 운이 없었어요. 고무신이 벗겨진 거죠. 맨발이라도 뛰었으면 살았을 텐데 그만 고무신을 줍겠다고 멈춰 서고 말았어요. 그리고 내 몸에는 “들어가는 구멍은 볼펜 구멍만 한데 나올 때 구멍은 접시만 해진다”는 그 무서운 M16 총탄이 열 발 가까이 틀어박히고 말았어요. 열한 살, 내 이름 전재수는 그렇게 너덜너덜한 시체가 되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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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쏘았냐고 묻고 싶지는 않아요. 이제 와서 이유를 따져봐야 뭘 하겠어요. 하지만 지금까지도 묻고 싶은 질문 하나는 있어요. 그때 날 죽인 아저씨들은 내가 뭐로 보였을까요. 열한 살이었던 제 가슴에 십자 조준을 맞추면서 그 아저씨들은 날 뭐로 봤을까요. 내가 커 보였을까요. 어른으로 보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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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아저씨(내가 살았을 때 당신은 아저씨 나이였으니까), 당신 눈에는 내가 폭도로 보이나요? 아군끼리 치고받은 화풀이로 몇 마리 죽여도 되는 오리로 보이나요? 내가 들고 있던 고무신을 보면서 엄마는 정신을 잃었어요. 아버지는 자기가 나가라고만 하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거라며 울었죠. 아버지는 술이라도 마셨지만 엄마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그만 4년 만에 화병으로 내 곁에 왔어요. 그때 날 죽인 군인 아저씨들은 우리 엄마도 함께 죽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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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24일 만 열 살 하고 9일을 더 산 광주 효덕초등학교 4학년생 전재수는 그렇게 죽었어요. 그런데 대머리 장군. 대한민국 군인더러 대한민국 국민 머리를 수박처럼 깨고 대검으로 찌르고 군홧발로 뭉개라고 명령했고, 그 “사기를 살려주라”고 했던, 세상에 자기 나라 국민들에게 헬기에서 기관총까지 쏘는 참극을 연출했던 대머리 아저씨는 아직도 살아 있네요. 나라에서 돈 대서 경호해주고 있네요. 나라에 바칠 돈은 수백억원인데 29만원밖에 없다고 하네요. 다시 아저씨에게 물을게요. 아저씨 나는 왜 죽었나요. 그리고 더 궁금한 것 하나. 아저씨는 왜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나요? 왜 호의호식하며 잘살고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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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 진압' 명령을 받고 사람을 박살냈던 공수부대원들은 밉지만 그들 하나 하나의 죄상을 밝히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군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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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한 살 애를 쏘아죽인 건 글자 그대로 살인범들이다. 위기에 몰린 군인들의 자위적 행위도 아니었고, 글자 그대로 오리 쏘듯 쏘아 죽인 범죄였다. 그놈들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게다. 당시 그 지역을 담당한 부대는 특정하기 쉬울 테니. 발포 명령자같은 큰 사안도 큰 사안이지만... 전재수 어린이를 죽인 '인간성에 대한 범죄자'들은 분명히 밝혀내고 처벌을 하거나 그럴 수 없다면, 묘소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라도 시켜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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