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대본, 그리고 상상력. - 브로크백 마운틴

in #kr6 years ago

스팀잇에 쓰는 첫 글은 아무래도 직업과 관련된 글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무명 배우입니다.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몇 년의 경력이 있긴 하지만 대중들이 알 정도로 큰 작품에 출연한 적도 없고, 그정도의 실력도 갖추지 못했지만,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몇 년의 경력이 있기 때문에 애매한 위치입니다. 오늘은 대본과 연기와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며칠째 대본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습니다. 작품을 창조한다는 것은 대단하면서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나'를 주제로 한 대본을 쓴다는 것은 보통 손발이 오그라드는 일이 아닙니다. 벌써 한컴파일을 켜놓고 끄적끄적 거린지도 1주일이 되어갑니다. 대사를 한 마디 쓰는것도 어색하고, 설정을 잡는것도 썩 내키지는 않습니다. 혹시라도 글을 쓰면서 멋이 들어가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것은 물론이고, 내 대본을 카메라로 촬영을 한다면 어떤 구도로 나올지, 관객들은 재미있게 볼 지,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나만 재밌는 글을 쓰면 그건 작품이 아니라 자기위안일 뿐이니까요. 그러다보니 자꾸 글 쓰는 속도는 느려지고 일 외에 잡다한 일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글쓴다는 핑계로 밖에 나갔다가 배틀그라운드만 하다 온 날도 있죠.

어느 소설이나 대본이나 그렇듯이, 작품을 쓸 때에는 상상력이 중요합니다. 머릿속을 부유하는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강하게 끌리는 주제를 선택해서 문자화시키는 작업. 그것이 글을 쓰는 과정이지요. 이번 대본은 영상기준으로 1~2분 내의 짧은 극이기 때문에 스토리가 길지도 않고, 대사가 많지도 않습니다. 인물을 위주로 펼쳐지기 때문에, 촬영 장면 자체도 적습니다. 하지만 짧기 때문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 짧은 시간내에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는것,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머릿속에서 '이 극이 어떻게 흘러가야겠다.' 라는 생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글을 쓰게 되면 마음에 차지는 않습니다. 평소라면 완전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에게 평가를 들어보고 수정하고 올리겠지만, 이번 작품은 '나'를 주제로 하는 대본이기 때문에 쉽게 양보하고 싶지는 않다는게 작품의 완성을 늘어뜨리고 원점으로 돌리고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재미있게 본 작품 중에 10여년 전의 명작인 '브로크백 마운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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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미 유명했던 제이크 질렌할과, 당시만해도 크게 주목받지는 않았던 신인 히스레 저의 짙은 연기가 인상적이었죠. 저는 이 두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것도 없고, 이안감독의 시각과 에니스 델마(히스 레저)의 처 역할을 했던 알마 베어스 델마(미셸 윌리엄즈)의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상, 그 장면에서 많은 대사가 들어간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써 준 대본을 통해, 감독이 제시한 콘티를 통해, 배우가 느끼는 감정을 대사없이 표현한다는 것은 엄청난 상상력을 동원하는 일입니다. 추상적인 무언가를 상상해서 구체적인 결과물로 도출시킨다는 점에서 어쩌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상상력을 구체화시켜서 글로 표현하는것, 그리고 그 글을 보고 인물의 정서를 상상해서 움직임과 연기로 표현하는 것은 둘 다 위대한 일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추가해야할 요소가 현실성입니다. 얼핏보면 상상력과 현실성은 양립불가능할 것 같지만,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도 현실성을 지닌다고 표현하는 것은, 단순히 세계관이나 스토리가 현실성있다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감정이 복잡하고 풍부하며 다각적이라는것입니다. 상상력이 상상력 그 자체로만 가치를 지닌다면 우리는 영화 '다세포소녀'와 '긴급조치 19호' 등 우리나라 영화의 한 획을 그었던 대작(?)들을 보면서 박수를 보냈을 것입니다만..................... 이러한 영화들은 리얼리티가 떨어지기 때문에 현대극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성이 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한번 '브로크백 마운틴'의 작품성은 걸작 그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성애를 다룬, 일견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고, 사람들이 불쾌하다고 느끼는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를 단순히 '남자 둘 간의 사랑'에 집중하지 않고 '연인간의 사랑'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두 게이커플이 서로를 깊게 사랑하지만 사회의 시선에 부딪치기에는 두렵기 때문에, 사회속으로 스며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잭과 에니스는 사랑하지 않는 이성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며 '일반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남녀간의 사랑을 막을 수 없듯, 동성간의 사랑도 막을 수 없었나봅니다. 결국, 둘의 사랑은 혼인관계를 맺고있는 에니스의 아내 알마에게 들키게 되고, 노력하지 말아야 할 노력들로 인하여 결국에는 개인의 파탄, 가정의 파탄으로 결론이 나게 됩니다. 영화 전반적으로, '브로크백 마운틴'은 동성애의 문제를 '동성애'가 아닌 '인간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심리에 집중하게 만들어서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단숨에 몇 단계를 상승시켰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일반인인 두 주인공의 모습에 동성애를 덧입힘으로서, 동성애자들도 우리와 같이 숨쉬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 좋은 극이란, 단순하게 재미있다! 로 끝나는 작품이 아니라, 관객들의 마음속에 작지만 맹렬하게 타오르는 변화의 불씨를 심어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작품을 위해서 노력하는 배우가 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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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팅~!! 스티밋이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플랫폼이 되길 바라요^^

응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나누면서 활동하는 스티미언이 될게요~

잘 읽었습니다. 리스팀 합니다.
명작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아직은 못 봤네요.

kr-join에 인사를 먼저 올리고 시작하시는걸 추천합니다.
(저 태그는 인사때만 쓰셔야 합니다.)
제가 뉴비님들을 위해 안내글을 하나 썼는데
참고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

https://steemit.com/kr/@dakfn/3a8ha3

감사합니다 눈팅은 오래 했어도 글을 쓰는건 처음이라 몰랐네요!

원진호란 이름이신가요...? 십년후에 여기에 글쓴게 성지가 될수도 있지않을까여??...송강호,,,황정민같은 배우도 무명이 있었는데요....나중에 뜨시면 ...인성좋은 배우로 사람들입에 오르내리길 바래봅니다~

네 맞습니다. 인성좋은 배우로 성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팀잇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유명해지셔도 스팀잇에서 오래 뵈요~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소통하는 배우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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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기간이지만 많은 스티미언 분들을 봐왔는데 배우분은 처음이시네요!! 저는 배우분들을 볼 때마다 작품마다 배역마다 다른 모습을 연출하고 보여주는 것에 대한 로망과 존경심같은 것이 있어요 ㅎㅎ 앞으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

주변에 살아가는 장삼이사들을 관찰하고 그들을 표현하는 직업이 배우이지요. 배우라는 직업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재주가 없어서 자주 글을 올리지는 못할 것 같은데 그래도 꾸준히 소통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스티밋을 통해 꿈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스타트가 매우 탄탄하네요. 진호님! 안에 계신 많은 것을 아낌없이 쏟아부어주세요.

좋은 평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할게요~!

팔로워 하고 가겠습니다 저도 힘내고 싶네요

팔로우 감사합니다! 자주 쓰지는 못하더라도 이따금씩 글 올리겠습니다!

배우분들도 글을 참 잘 쓰시는군요 ㅎㅎ 재밌게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