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극장] 03화 정운호, 그는 누구인가

03. 정운호, 그는 누가인가

다른 얘기를 하기에 앞서, 나비의 날갯짓을 태풍으로 만들어버린 주인공 정운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정운호는 1965년생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무일푼으로 상경해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하다가, 1993년 28세의 나이로 세계화장품이라는 회사를 차린다. 세계화장품을 통해 ‘식물원’과 ‘쿠지’라는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런칭하고, 2003년에는 더페이스샵을 창업해 중저가 화장품 돌풍을 일으킨다. 2005년 사모펀드에 더페이스샵 지분의 70%를 매각하면서 약 1,000억 원, 2010년 남은 지분을 LG생활건강에 매각하며 약 2,000억 원의 시세차익을 챙긴다. 그리고는 지분의 100%를 인수해뒀었던 네이처리퍼블릭의 대표이사로 취임해 다시 화장품 업계에 도전장을 내미는데, 네이처리퍼블릭을 6년 만에 연매출 3,000억 원의 업계 5위 기업으로 만들어놓았으니, 구속되기 전까지만 해도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평판이 자자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정운호는 넘쳐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고 악취미에 빠져버렸는데, 그것이 바로 도박이었다. 그는 300억 원 대의 마카오 원정도박을 한 혐의로 2013년부터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서 1년에 걸쳐 조사를 받는다. 그러나 이민희라는 법조브로커를 통해 선임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 홍만표의 활약에 힘입어, 2014년 7월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고,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그해 11월 무혐의 ‘처분’을 내린다.

허나 무혐의 처분에도 불구하고 정운호는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동영상과 녹취록을 추가 증거로 제출하는데, 검찰이 이를 처리하는 과정이 석연치 않다(앞으로 석연치 않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할 것이다). 우선 정운호는 자기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추가 증거를 제출했는데, 검찰은 ‘고소 사건’이 아닌 ‘인지 사건’의 경우 무혐의 처분 사실을 통보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까지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무혐의 처분 이후에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자료가 나오면 기록만 달아놓는 것이 보통인데, 검찰은 정운호가 추가 증거를 제출하자 새 증거를 발견했다며 2015년 2월 재수사에 착수한다. 그리고 나흘 만에(!) 다시 무혐의 처분으로 이를 종결한다. 검찰이 같은 사건을 상대로 두차례 무혐의 처분을 내리는 것은 이례적일 뿐더러, 재수사가 나흘 만에 종결됐다는 데에서 냄새가 구리다. 일각에서는 정운호 측이 더 이상 검찰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수를 쓴 것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이 의혹은 안타깝게도 미궁 속으로 빠져버린 상황이다.

브로커를 써가며 받아낸 무혐의 처분의 방패는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다. 정운호는 ‘형사3부’를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갔지만, 이전 화들에서 계속 언급한 광주송정리파 이모씨(괜히 1화의 첫머리를 장식한 게 아니다)가 ‘강력부’에 검거되면서 원정도박 증거가 추가로 드러나, 2015년 10월 2일 강력부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된다. 이쯤에 와서는 정운호도 생각이 바뀌었는지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하고 범행을 인정하는 자술서를 제출한다. 그리고는 다시 홍만표를 선임하나 결국 12월 18일,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는다. 이에 정운호는 즉각 항소하는데, 이때 구치소에서 알게 된 이숨투자자문의 대표 송창수를 통해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최유정을 소개받는다. 하지만 정운호와 최유정의 만남은 실로 잘못된 만남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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