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아웃 포커스'

in #kr6 years ago

<작문>

제시어 : 하이라이트
제목 : 아웃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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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굳게 닫힌 창문을 비집고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일어나
소리가 들려오는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열었다.

오늘도 ‘그 무리들’은 광화문 일대에 모여
두건을 머리에 뒤집어 쓴 채로 시위를 하고 있었다.

잠에 취해 있던 정신이 돌아오자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제야 나는 재빨리 카메라를 챙겨 달리듯 호텔을 빠져 나왔다.

호텔 밖으로 나오자 뜨거운 햇볕아래에
모여 있는 무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사이렌 소리와 함성소리에 맞추어 누군가를 향해
욕설을 퍼붓고 있는 시위대의 모습은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했다.


캡이 나에게 취재하라고 명령한 무리들의 시위 현장은
벌써 2주가 넘게 이어지고 있었다.
광화문 일대에는 전국에서 모인 남녀가
각기 무리를 이루어 진영을 갖추고 있었다.

하얀색 두건을 쓴 남자 측과 검정색 두건을 둘러쓴
여자 측이 서로 마주보는 천막을 설치하고 서로를 비난하고 있었다.
한 쪽에서 “메퇘지는 자살해라”라고 비난하면
“한남충은 재기하라”라고 비난이 오는 식이다.

남자 쪽에서 ‘82년생 김지영’을 불태우는 시위를 벌이면
여자 쪽에서는 ‘한국인 남자 평균외모’
묘사한 그림을 불태우기도 했다.
이들의 싸움은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오랜 시간 계속되었다.

이들의 ‘열정’을 당해내지 못한 탓일까
경찰도 그들이 물리적 충돌을 하기 전까지는 손을 쓰지 않았다.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면
사이렌을 울려 그들에게 경고하는 수준이었다.

나는 캡이 이 지루하고 정신없는 현장에
나를 보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캡은 그저 기다려보라고만 했다.


그렇게 3일 쯤 더 지났을까. 캡에게 전화가 왔다.
캡은 나에게 조만간 큰일이 터질 것 같으니
지금부터 긴장하고 있으라고 주문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시위의 ‘하이라이트’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바짝 긴장한 상태로 하루를 보냈지만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다.
하이라이트는 새벽에 시작되었다.

한 남성이 던진 담배꽁초가 맞은편 여성의 머리에 맞아
머리가 그슬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은 마치 달리기 시합에서 시작을 알리는 총성처럼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흥분시켰다.

남자와 여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뛰쳐나와 서로에게 폭력을 휘둘러댔고,
경찰은 사이렌을 울리며 이들을 제지하려했지만 불가능했다.

나는 캡에게 지시받은 대로 열심히 셔텨를 눌러댔고,
나의 카메라로는 욕설과 사이렌 소리가
어우러진 하이라이트의 효과음을 담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다.


현장은 쉽사리 정리되지 않았고,
오히려 싸움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남자 측 지도부와 여자 측의 지도부들은
머릿수 경쟁이라도 하듯 사람들을 계속해서 불러 모으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던 나는
특별한 광경을 목격했다.
광화문 주변 빌딩 사이로 흰 두건을 쓴 남자와
검은 두건을 쓴 여자가 함께 손을 잡고
도망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현장을 버려둔 채 그들을 쫒아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현장이 정리되고 나는 회사로 돌아와
캡에게 내가 찍은 사진들을 전달했다.

사진들을 훑어보던 캡은 내가 마지막으로 찍은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을 보며 한 마디 했다.
“야 너 기자 다됐구나. 그래, 이게 진짜 하이라이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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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0회 짱짱맨배 42일장]3주차 보상글추천, 1,2주차 보상지급을 발표합니다.(계속 리스팅 할 예정)
https://steemit.com/kr/@virus707/0-42-3-1-2

3주차에 도전하세요

그리고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캡이라는 단어는 생소한데, 마지막 하이라이트부분은 멋지네요^^!♡ 리스팀해여

감사합니다! ㅎㅎㅎ 캡은 선임기자를 의미하는 은어인데 잘 드러나지는 않았나보네요 ㅠㅠ

선임기자를 캡이라고 하는군요
^^! 님이 오늘쓰신 영화리뷰도 읽어봤는데 정성이 가득하더라구요. 근데 이 글이 더 깔끔해서 리스팀했어요 후후후 아직 학생(?)이신가봐요

넵 학생입니다 !!ㅎㅎ 이것저것 공부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ㅠ

The Lobster의 포스터가 떠오르는 ....

아직 안 본 영화인데 찾아보니까 비슷한 점이 있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