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의 키보드 사용 경험에 대한 넋두리

in #kr7 years ago (edited)

어느 공순이의 요즘 애들 관찰기

얼마 전에 회사를 통해 1주일간 동남아권 국가에 임직원 해외봉사단으로 갈 기회가 있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나의 주 역할은 우리나라 나이로 중3 정도되는 학생들에게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물론 준비하고 진행하는 내내 배운점도 많고 느낀점도 많았지만, 가장 놀라웠던 건 대부분의 학생들이 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를 친다는 것이었다. 컴퓨터 보급률이 낮은 국가도 아니고, 컴퓨터를 처음다뤄보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런 사용자 경험이 무척 흥미로워서 학생들의 컴퓨터 사용패턴을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 복사, 붙여넣기는 Ctrl+c, Ctrl+v 같은 단축키 대신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눌러 copy/paste
  • 영어 문장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대/소문자간 변경은 Shift키보다는 Caps Lock키를 사용함
  • 오타가 있으면 키보드 방향키를 사용하는 대신 마우스로 커서를 찍어서 이동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컴퓨터 사용에 익숙치 않아서 키보드가 낯선 것이 아니라, 그냥 습관적으로 키보드를 잘 안쓰는 것 같았다. 첫 날 메모장과 명령프롬프트만을 이용한 실습을 준비했던 나로서는 마우스 사용이 어려운 CLI(Command Line Interface) 환경에서 실습을 하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 이 점은 개발환경의 특수성도 한 몫 했는데, 대부분의 개발환경은 키보드 친화적이다. 단축키를 잘 써야하고, 코드에 집중하기 위해 신경써야할 다른 요소는 최소화해야한다. 코드를 치는 중간중간에 자꾸 마우스로 손을 옮기면 개발속도가 느려지고, 무엇보다도 까먹는다.

반면에 시각적인 컨텐츠에는 확실히 강했다.

  • PPT를 잘 다룸. 애니메이션과 테마를 비롯한 템플릿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고, 이미지를 발표에 활용하는데도 익숙함
  • 쉬는시간에는 YouTube에 접속해서 좋아하는 동영상을 찾아보거나 Windows Store에서 가벼운 게임을 받아서 play하기도 함
  • Instagram 계정 교환

사실 프로그래밍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제외한다면, 그들의 생활에 독수리타법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특히 SNS, 스토어 등 그들이 컴퓨터를 통해 접근하는 컨텐츠의 공통점은 모바일 환경에서도 접근하기 쉬운 것들이다. 그렇다. 그들은 인터넷이 없는 세대에 살아본 적이 없는, 컴퓨터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접하고 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하여 '디지털 원주민'이라 불리는 Z세대의 아이들이었다.

구세대 젊은이의 넋두리

나는 굳이 분류하자면 Y세대 사람이다. 인터넷은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본격적으로 보급화되었고, 어릴 때 우리집 PC는 DOS가 설치된 386 컴퓨터였다. 그 컴퓨터로 내가 실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고인돌, 테트리스, 그리고 한컴타자연습이 전부였고, 나의 키보드 습관은 '산성비'와 '청산도'에서 비롯되었다. 이후로 학교에서 타자연습을 종종 시켜서 어느정도 연습을 하긴 했지만, 내 타자속도는 중고등학생 때 버디버디와 네이트온을 만나며 급격히 빨라졌다. 스마트폰은 대학에 간 뒤에야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네이트온과 싸이월드는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덕분에 지금은 한글 500타, 영어 400타 정도 나온다. (역시 수다가 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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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타자 실력을 갖게해주는 한컴타자연습.

고작 한세대 차이인데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까 싶었다. 국가가 달라서 환경이 다른 탓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라이코스가 망하는 것을 본 나도 PC통신세대와의 차이가 전혀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응7과 응8의 차이랄까...) 더구나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세상에 없던 서비스들이 보급화되면서, 세상은 더 빨리 변했다. 중/고등학생 때는 타자속도로 수행평가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 요즘이야 학교에서 코딩교육까지 한다고 하지만, 당시만 해도 워드 자격증 따는것이 인기였다. (초6 때 딴 워드 자격증, 이력서에조차 써본적 없다) 한컴타자연습을 통해 훈련되는 자세와 빠른 타자속도는 현대인이 갖춰야할 필수적인 교양에 가까웠던 것이다.

물론 기나긴 키보드의 역사를 봤을 때 네 손가락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스탠다드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적어도 PC에서는. 그치만 사실 키보드를 어떤방식으로 쓰느냐는 별로 문제가 안된다. 모니터를 보면서 칠 수 있으면서 느리지만 않으면 된다. (독수리의 맹점은 이게 어렵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알게됐는데, 버디버디적부터 내 친구인 D양은 키보드를 칠 때 독수리타법으로 2~3개 손가락만 쓴다고 한다. 이 친구를 10년 넘게 알아오면서 이런 사실조차 몰랐다. 메신저를 하고, 과제를 하고, 문서를 만들고 업무를 보는데도 전혀 문제가 없었으니까. Z세대의 아이들도 그렇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데, 굳이 PC에서 타이핑연습까지 해가면서 적응할 필요가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 인터페이스는 사용자에 맞추어 변해간다. 스마트폰에서 타자연습하는사람은 별로 없지 않은가? 한글만 해도 2벌식 뿐만 아니라 천지인, 나랏글, 등등... 사람마다 쓰는 키보드가 다양하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키보드가 소프트웨어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이폰 초기버전에도 천지인 키보드는 없었다. 많은 사용자들의 요구로 나중에 탑재된 것이다.


진짜 중요한건 기술이 더 다양한 사용자를 위한 방향으로 진화해야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소비를 주도할 세대는 Z세대라고 한다. 독수리면 어떻고 칠면조면 어떤가. '정석'대로 치지 않는사람을 보고 너무 구박하지는 말자. '기분 좋은 타자 실력' 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어차피 인터페이스는 사용자에 맞추어 변해간다. 그들도 당신과 같은 한사람의 사용자다. 앞으로 또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 (역설적으로 에디슨 젓가락처럼 에디슨 키보드가 유행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왜 글로벌 기업들이 Bixby, Siri, Alexa같은 음성비서를 앞다투어 내놓고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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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보 감사합니다ㅎ 가입하고 헤메다가 블로그에 올리려던 글을 그대로 올렸더니 상당히 빽빽하네요;; 당분간 요리조리 살펴보려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뉴비는 언제나 환영!/응원!이에요, 조사한바에 따르면. 텍스트가 공백제외 1000자 이상이면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포스트가 된다네요. - kr-newbie 보안관 봇! 2017/07/06일 시작 (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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