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4

in #kr6 years ago

<시작>
마르다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그녀가 바구니를 들고 멀리서 걸어온다면 그 누구라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녀의 상큼한 발걸음이나 아침햇살에 빛나는 새하얀 치아 때문이 아니라 잘 읽은 사과보다 더 새빨간 그녀의 머리카락 덕분이다.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은 그녀의 맑은 눈동자와 앙증맞은 볼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고 그녀의 쾌활한 성격은 그 정열적인 빨간색으로 마을 남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어린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진흙같은 변두리 마을에서 마르다는 특별한 존재였고 마르다 자신도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시장에 나가 장보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심혈을 기울여 몸을 치장한 뒤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 거리를 지나는 것. 자신을 뒷따라오는 시선들이 그녀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주었고 따분한 일주일을 견디게 해주었다. 젊은 처녀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자 질투의 대상이었고 남편을 둔 아내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었음은 당연했다.
사건의 시작은 간단했다. 과일을 판매하는 잡화상의 한 직원이 장을 보는 마르다에게 사과 한 알을 서비스로 더 주었다. 헤벌쭉 입이 벌어진 미소와 함께. 그 광경을 그의 아내가 보았고 그의 아내는 요즘 들어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가 맘에 안 들던 차였기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를 옆집 빵집 여사장에게 토로했고 이 이야기는 점점 커져 마르다가 마을의 남자들을 가리지 않고 꼬리친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처녀의 행실에 대한 소문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어느 장소에서나 그 이야기만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다는 공방에서 외톨이가 되었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마을에서 기피대상이 되었다.
마르다는 꿋꿋하게 버텨보려고 했다. 부모님들은 더 늦기 전에 그녀의 신랑감을 찾고 있었지만 이 마을에선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다른 마을까지 신랑감을 보러 떠났다. 마르다는 주말에도 나가지 않고 우울한 마음에 창가에 앉아 햇볕을 받으며 자신의 사랑스런 붉은 머리를 빗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런 모습은 또 뭇 남성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게 되어 마을 펍의 단골 주제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마르다를 험담하는 행위를 통해 결속을 다지던 아내들의 모임에 들어가게되고 그녀들의 격분을 사게 된다. 그녀들은 마르다를 더이상 가만 둬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었다. 신성한 가정과 마을의 안녕을 위해 마르다는 사라져야 한다며.
그 다음부터는 간단했다. 단지 몇명의 사람들에게 마르다가 마녀라는 소문을 퍼트리자. 이야기는 삽시간에 불어 마르다의 빨간 머리가 마녀의 증표이며 그 마력으로 남자들의 마음을 매혹하여 가정을 파괴한다는 이야기로 흘러갔다. 따분한 일상 속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는 삽시간에 사람들을 모았고 마르다의 아버지가 비운 마르다의 집앞에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마녀를 잡기 위해 모였다. 다음 날 새벽 마르다는 광장에 묶여 마을 마녀재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머리카락은 짧게 잘려서, 아니 깎여서, 듬성듬성 남아 있었고 마을 사람들에게 몽둥이로 두들겨 맞아 몸은 만신창이었다. 사람들은 화형을 외쳤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울며 빌은 덕분에 마을 추방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마르다는 마을 밖의 허름한 초가집에서 지냈다. 마르다는 자신의 붉은 머리가 원망스러웠다. 자신의 행실들도 후회스러웠다. 고통 속에 차마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는 없어 굶어 죽어보려고 했으나 어머니가 가져다 준 스프를 보며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무기력하게 숨만 쉬던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날 어머니가 옷감을 가져다 주었다. 이제 삯바느질하며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다.
마르다의 비참함은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 심하게 느껴졌는데, 천장에서 새는 빗방울을 피할 수 있느 공간에 옷감만 밀어 넣은 채 자신은 비를 맞아야했다. 해가 지면 더이상 바느질도 할 수 없어 힘없이 누워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래도 바느질을 하면 할 수록 익숙해져 시간을 금새 보낼 수 있었다.
아침일찍 일어나 바느질을 하려 옷감을 뒤적인 마르다는 깜짝 놀랐다. 어느새 옷감의 바느질이 마무리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뭔가 착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을 몇 번 더 겪고 마르다는 밤사이에 무슨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달이 밝은 날. 마르다는 잠에 들지 않기 위해 낮잠을 충분히 잤다. 어떤일이 벌어지는 지 확인하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 마르다가 반쯤 잠에 들려던 찰나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옷감들이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르다는 침을 삼키며 몸을 움직이지 않고 눈을 옷감에 고정했다. 자세히 보니 달빛 그림자에 어렴풋이 작은 형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르다는 숨도 쉬지 못한채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들은 성냥갑크기의 작은 키로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였다. 총 일곱명이었고 길진않았지만 머리,팔,다리 모두 달려있었다. 그들은 가볍게 통통 튀어 다니며 자신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바늘을 들고 빠른 속도로 옷감을 처리했다. 그렇게 달이 기울고 요정들은 창문을 넘어 사라졌다.
마르다는 신이 자신에게 배풀어준 호의라고 생각하며 다시 삶의 희망을 느꼈다. 이제 어머니에게 일이 익숙해졌으니 더 많은 옷감을 달라고 하였다. 요정들은 아무리 옷감이 많아도 마르다가 아침에 해놓은 일들을 마무리해주었다. 마르다는 이제 잘 먹고 다시 건강을 찾을 수 있었고 이전의 미모를 다시 찾아갔다.
마르다는 문득 고마운 요정들에게 보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밤마다 그들의 모습을 훔쳐봤던 기억을 토대로 옷을 지어줄 생각을 한다. 한 벌당 꼬박하루가 걸려 일주일 뒤 요정들의 옷을 옷감 위에 올려놨다. 자정이 넘은 시간 창문틈 너머로 들어온 요정들은 옷을 발견하고 신이나서 옷을 걸쳐보고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그 중 대장으로 보이는 요정이 마르다에게 다가왔다. 마르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고 요정은 정중히 인사를 한 뒤 정체를 들킨 요정들은 다시 그 사람 앞에 나타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신 옷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마르다는 잠시 침을 삼키고 고민하다 소원을 말했다.
요정들은 마르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다. 머리카락을 비롯한 그녀의 몸에 난 모든 털을 잘라내었다. 그리곤 바늘에 진한 검은 실을 꿰어 신중하게 한 땀 한 땀 그녀의 몸에 수를 놓기 시작했다. 첫 땀에 고통으로 눈물이 흘렀다. 이 밤을 넘기면 다시 마을로 돌아갈 수 있을거야. 마르다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마르다는 완전한 변화를 원했다. 머리카락뿐만아니라 온 몸의 모든 털을 검은 색으로 대체하길 바랬다. 요정들은 마르다의 바람대로 거침없이 온몸의 피부 아래에 검은 실들을 심어주었고 침대는 어느새 그녀의 땀과 피로 범벅이 되었다. 잠시 기절을 했을까. 마르다는 정신을 차리고
몸을 추스렸다. 잠시 후 집 뒷편의 호숫가로 빠르게 달려갔다.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기 위해. 그러나 곧 그녀의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호수에 비친 여자의 머리카락은 진홍의 핏빛이었다.

<끝>
(에필로그)대학시절 과제로 제출했던 짧은 단편 소설에 살을 붙여 올립니다. 기존 이야기를 다른 장르로 각색하기 였는데, 저는 구둣방요정이야기를 그로테스크 장르와 결합시켜 작성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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