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라 #미투 의 바람

in #metoo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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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을 접하고 꿈꿔왔던 한 사람으로서 요즘 한창 이슈인 미투 운동을 바라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극에 대한 갈망으로 예대 입시를 겪으면서 그들의 작품을 매일같이 접했다. 주옥같은 작품을 읽고 분석하고 또 읽고 쓸때마다 동경은 커져갔고 연극계의 거장 오태석, 이윤택 언급만 해도 모두들 감탄하며 존경해 마지않는 인물들이었다.

연극과든 연출과든 극작과든 연극원 지망생이라면 모를 수도 없고 몰라서는 안되는 그 이름들. 오태석의 [자전거]를 처음 읽고 충격받은 기억이 난다.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가 아닌가는 구구절절 늘어놓아봤자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이윤택이 이끄는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연극을 눈을 반짝이며 관람했고 내 것을 준비하는 내내 가슴이 뛰었었다.

사실은 입시중에도 간간히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기 되는 순간이 있긴 했었다. 학교에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보단 내가 잘하고 있는걸까? 합격하더라도 앞으로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순간. 교수직에 있는 연출가의 부적절한 수업 태도라든가 하는 소문을 들었을 때가 그 중 하나였다.

서울예대 면접장에서 지루해 못견디겠다는 표정에 삐딱한 자세로 시간을 떼우는 오태석 연출가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럼에도 그 앞에서 내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영광이었다. 다들,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결국 난 서울예대를 자퇴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등록금을 입금시키고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돌려받은 사람이 나일거라는 이상한 자부심을 가지며, 지금 생각해보니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토록 원했던 예대를 입학하자마자 그만 둔 선택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 예대 특성상 선후배의 끈끈한 정을 강조하고 일명 똥군기라고 하는 말도 안되는 군기 잡기. 하늘같은 선배의 말을 거역하는 행동은 곧 교수님을 거역하는 것이며 학교의 질서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선배가 기라면 기고 하라면 하고 목소리는 커야하며 인사는 깍듯하게, 화장기 없는 민낯으로 다녀야하고 스커트를 입으면 절대 안되는 규칙. 아침마다 구보를 뛰어야하고 그러니까 당연히 항상 운동화를 신어야했다.

하지만 이런 규칙 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열심히 할 수 있다고 마음을 먹은 그 날 저녁. 행사를 위해 여럿이서 조모임을 가졌는데 같은 조의 처음보는 선배가 당시 조장이었던 여자 후배의 뺨을 손등으로 찰싹찰싹 치며 함부로 뱉은 저급한 언행과 그 당시의 분위기, 여후배의 숨길 수 없었던 표정... 머릿속에 박혀버린 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너무도 순진했던 20대 초반, 예술대학이라면 위아래 구분짓지 않는 수평적인 관계에서 예술적인 활동으로 자유롭게 공감하고 교류하고 나누고 문화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던 나였다. 오히려 그 정반대의 삶이라니. 내가 생각했던 이상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고 처참한 현실에, 그리고 아주 큰 착각 속에 빠져있었다는 자괴감까지 들어 내린 결론이었다.

고작 발 조금 담갔다가 빠져나온 경험으로 대단한 통찰력이 생긴건 아니지만 현재의 나를 포함해 당시의 순진했던 나처럼 여전히 무대를 꿈꾸고 있을 많은 청춘들에게 이번 사태는 배신과 좌절감을 가져다 줬음에는 틀림이 없다.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하다. 동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속앓이 했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들을 안아주고 싶고 위로하고 싶고 응원하고 싶다. 똑바로 사과를 받고 반드시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루기를. 이 또한 올바른 길을 그려가는 하나의 과정이 되기를. 그래서 앞으로의 언젠가는 그 현실이 내가 생각했던 이상과 아주 조금이라도 닮아있었으면 한다.

불어라, 바람. 멀리멀리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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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아미슈님이 이렇게 글을 잘쓰시는분이었다니!! @홍보해

사실 성에 대한건 결과이고 진짜 문제는 폐쇄사회에서 벌어지는 파리대왕 케이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더 다양한 폭력이 행해지고 있죠.

뉴스 볼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네요ㅠ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어???아 믿슈님 저랑 엄청난.... 공통점이???...저 글 보다 놀래서 댓글 달아요. 다시 마저 읽어야지...

믿슈님 글 리스팀 할게요.. !

권력을 이용한 악습도 문젠데...성 문제까지..악습들이 모두 없어지길 바랍니다

근데 아밋슈님 글 정말 잘쓰시네요 ㅎㅎ 자주쓰세요

아니 어찌 자유로와야 할 예술대학에
헐!! 그런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다니....
정말 뜻밖이네요..

우리가 이러려고 투표를 열심히 했죠...
불어라 미투의 바람~~~~~
...
팔로해요. 또 뵈요~

대체 그 똥군기는 어따쓸라고...
이런일이 앞으로는 두번다시 일어나지않게
미투운동 지지합니다

이런 절대권력이 있었기 때문에 더 쉽게 성폭력을 가할 수 있었겠지요... 이제는 이런 괴물들이 우리를 지배하게 놔둬서는 안되죠. 나비들이여 더욱 힘차게 날개짓을 해주세요!

와! 생각이 참 멋지시네요!
힘들었을 사람들을 위해
우리 같이 응원합시다!

바람이 더 더 불어와서 가라앉아있던 먼지까지 멀리 날아갔으면 좋겠어요.

리스팀 되어서 읽었는데... 우리의 삶에 미투운동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언제나 같이 있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속상합니다. 가해자 및 피해자가 없을 미래를 위해 한 걸음씩 찬찬히 나아갑시다.

아, 그놈의 똥군기. 이십대 초반, 끽해야 이십대 중반의 "어린애들"이 나쁜 것만 배워가지고..

맞아요.....곳곳에 부당한 일들 투성...
미투가 정치적으로나 다른 어떤 상관없는 일들에 이용당하지 않고, 더더 뻗어나가기를 바랍니다.
믿슈님 오랜만이예요ㅠㅠ

아 이글을 왜 이제서야 본거죠 ㅠㅠ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ㅠㅠ 정말 바람이 불어 좀더 세상이 달라졌음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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