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폼나는 인생

in #sct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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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년 시절, 내 아버지는 서울에서 차로 5시간 이상 걸리는 지방에 발령 받아 10년 가까이 그곳에 홀로 거주하셨다.

그 아버지는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차로 직접 운전하여 서울에 있는 집에 올라와 일요일 저녁이면 내려가곤 하셨다. 그 10년 가까이, 그러지 않았던 날은 정말 손에 꼽는다.

그때보다 나이가 든 지금, 죽도록 바쁜 직업이었음에도 가족들을 보기 위해 매 주주마다 올라왔다는 게 참 신기하다. 누구 같았으면 시즌 별로 현지에서 즐길 여자가 만들거나, 아니면 최소 주말에 혼자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푹 쉬기라도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기도 참 쉬운 조건이었다. 홀로 살고, 아직 젊고(아버지는 27살에 나를 보았다), 돈도 잘 벌었고, 서울에서야 모르겠지만 지방에서는 흔치 않은 스펙이었다. 그 도시 중심가의, 그 도시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밖에 없는 으리으리한 랜드마크에 터잡은 법인의 지사장이었으니까. 비서도 여러 명 있었고 채용된 직원 중 여자도 많았다.

힘들게 서울로 올라와봤자 나와 남동생은 컴퓨터 게임만 하며 뒷통수로 아버지를 맞이했을 뿐인데 왜 그랬을까. 당시 벌었던 돈 중 아버지가 자기를 위해 쓴 것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부분은 나와 내 동생 교육비로 지출되었다. 나는 나이가 먹어, 아버지에게 왜 내게 원하지 않는 길을 걷게 만들었냐고 격하게 항의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들었을 당시 그 시간이 후회스럽지는 않았을까.

다니던 교회의 목사가 횡령을 한 사실을 알고 자기라면 부끄러워 자살을 했을 거라고 말하는 아버지와 나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인간이다. 아버지보다 내가 그걸 먼저 깨달았다. 아버지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에 대해 훨씬 잘 몰랐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버지가 살았던 삶을 지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자랄 때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그 면만은 참 폼나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번은 따라해보고 싶다.

한 명의 여자를 만나는 것과 열 명을 만나는 것 사이에는 큰 인사이트의 차이가 있을 것이고, 아마 오십 명 정도까지는 경험적으로 뭔가 유의미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십 명을 만나는 것과 백 명이나 천 명을 만나는 거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결혼과 육아에 경험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부와 권력이라는 반석 위에 남을 가문을 만드는 게 목표였던 조지프 P. 케네디는 아들 하나를 대통령 만들고 하나를 국무장관을 만들었지만 둘 다 자신보다 먼저 요절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살았던 타이윈 라니스터는 화장실에서 변을 보다 둘째 아들에게 살해당했으며, 고려의 시조 왕건의 자손들은 왕조 멸망에 따라 모두 몰살당했다. 스케일은 작다만, 우리집을 포함해 대부분 투자한 교육비만큼은 못 건지는 셈이다.

그럼에도, 어차피 한 번 태어난 인생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는 게 가치있는 일이라면 결혼을 해서 자녀를 가져보는 게 제일 느끼는 것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애인처럼 둘 기예가 저작이 없다면 말이다.

또한 어차피 사는 건 의미가 없고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은 더 어렵다면 그냥 미학적으로 폼나게 살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늙그막에 딸 뻘 여자랑 노는 것보다 내 아버지처럼 살아 자녀들에게 존경받는 게 제일 폼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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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해본 게 많다면 아쉽겠지만 결국은 가족이죠ㅎ

결국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자녀를 가져보면 정말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아직 초기인데도...

저도 그 경험에 어서 합류해야겠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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