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의 자기중심주의 - 덕장은 아니지만 인간미 있는

in #sct5 years ago (edited)

인간의 본질적인 성향은 2,000년 간 전혀 달라진 적이 없기에, 삼국지에 묘사된 유비 같은 사람의 리더나 보스가 성공하는 사례를 주변에서 찾아본 사례가 없으므로, 삼국지가 묘사한 '덕(德)'으로 성공한 유비의 모습은 허구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동감할 수 밖에 없다. 그저 사람이 좋다면 같이 등산이나 다니고 술이나 마시면 되지 아무리 의리가 출중해도 목숨을 걸고 쫓아다니지 않는다. 비즈니스적 이해타산만이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관우, 장비, 조운, 제갈량 모두, 아웃풋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이 목숨을 걸고 언더독 유비를 따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본질은 황제를 꿈꾼 조폭으로, 처음부터 이권이 걸린 장사판과 싸움판을 기웃거렸고, 그러다 싸움 잘 하는 관우와 장비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는 것은, 갑자기 한날 한시에 뭉치게 되었다는 소설적 묘사보다 훨씬 개연성있다. 그 이미지와는 다르게, 수 없이 사람을 배신한 유비(오히려 배신을 자주 당한 쪽은 조조다)는 처세술의 달인이자 속이 검은 효웅이었다.

​그래도 유비는 덕장은 아닐지 모르지만 인간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삼국지를 읽을 때면, 제갈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관우의 죽음을 복수한다고 오나라를 공격한 유비가 참으로 미련해보였다. 대부분 삼국지를 다룬 게임에서 관우의 죽음은 중요한 분기점이고, 이 분기점에서 오나라와 화친을 맺는 선택을 하면 유비가 천하통일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사사로운 정을 극복한 보상으로 마침내 대의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다시 보니,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천하통일 한다고 천년만년 그걸 누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살 만큼 살았는데 천하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참는 것보다, 자기 좋다고 따라다니다 죽은 사람 복수하겠다고 전쟁을 일으키는 게 더 멋있는 거더라.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을 위한 다른 사람의 희생을 금방 잊는다. 그 순간에는 감사해할지는 모르지만 보통은 그뿐이다. 통상 인간이란,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어렵지 않게 배신하지만 자신에게 보복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잘 반기를 들지 못 한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대중들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기보다 두렵게 만들라고 말했다.

​관우처럼, 자기 목숨을 바치지는 않는다고 해도, 어려운 시절 자신을 위해 희생한 누군가의 공로는 현실 논리 앞에 쉬이 잊히기 마련이다. 그 친구 참 훌륭한 사람이었지라고 추억하며 칭찬을 할지 모르지만 정작 그 사람 때문에 어떤 이윤을 놓치는 선택은 하지 않는다. 유비가 세운 촉한이 비록 변방이지만 그래도 그는 황제였다. 전쟁하러 나가지 않았으면 궁중에서 산해진미를 먹으면서 어여쁜 후궁들이나 보며 살았을 것이다. 어차피 주변 사람들도 말리는 전쟁이었으니 대의를 위해 참는다는 명분도 있었다. 그런데 이미 육십 먹은 노인이 다 되어서, 그 더운 여름 날 한반도 몇 배가 되는 거리를 전쟁하러 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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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가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 범인들은 삼국지처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자기의 무용담과 의리를 강조하는 것과 다르게, 대부분 사람들은 돈 몇백에 관계를 끊는다.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계를 끊지 않고 막연히 믿어도 그건 또 그대로 문제가 된다. 지인의 빚 보증을 서주었다가 일가족이 망하였다는 이야기가 한둘인가. 사람들이 사는 것은 다 비슷하고 소설적 각색이 있다지만, 그래도 그 베이스는 영웅담인 그 소설의 영웅들이 등장인물이 아닌데, 당연히 삼국지랑 비슷한 이야기가 성립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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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중심주의의 연장일 지도 모른다. 그냥 조조가 통일하게 놔두고 일찍 전란이 끝날 수도 있었는데. 한실부흥이라는 생산성 없는 명분으로 끝끝내 삼국시대를 이어가 전란을 지속시킨 것부터 자기 멋대로다. 한 번 태어나 언젠가 가는 인생, 살아있는 동안은 내가 우주의 중심이니까 하고 싶은 것 다 하겠다는 심리였을지도. 병으로 죽은 아내가 선물해준 애완견이 살해당하자, 자신의 개를 살해한 조직원 수백 명을 죽인 사람 이야기가 나오는 영화 <존 윅>의 주인공과, 내 동생이 죽었으니 한실부흥 따위는 필요 없고 수만명이 죽어도 좋으니 복수하자는 유비의 심리는, 실은 비슷한 것 아닐까.

그래도 그 자기중심주의의 <자기> 안에 들어가 있던 사람에게 유비만한 보스가 없을 것이다. 만약 <존 윅>의 애완견이, 자기 주인이 자신을 위해 마피아 수백명과 총질을 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면 참 자신은 축복받은 '견생'이라고 흡족히 웃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 다시 태어나도 나는 이 사람의 반려견이 되어야겠구나, 그런 생각. 어차피 죽는 인생이라면 그런 흐뭇함으로 총질하다가 죽는 게 병실에서 유산 문제로 골머리나 앓다가 죽는 것보다 더 낫지 않나.

조조는 자신의 아들 조앙과, 호위대장 전위를 죽인 장수와 가후를 용서했다. 조앙과 전위 둘 다 자기 때문에 죽었음에도 말이다. 계산적인 포용력이다. 그게 중원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조조와, 변방의 황제에 그쳤던 유비의 클래스 차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차이가 삼국지의 유비가 더 매력적이고, 또한 조조보다 훨씬 덜 똑똑하고 덜 성공했던 유비가 영원한 삼국지의 주인공이 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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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곽철용 리뷰에 이어서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충의니 견마지로니 하는 것들이 우스운 시대가 됐지만 누군가 목숨걸고 헌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눈길이 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

아무래도 그렇지요... ㅎㅎㅎ 현실은 정말 남을 위해 희생하든 희생하지 않든 어느쪽이든 결말이 나쁘거나 또는 웃겨지는 경우가 많으니... 전쟁은 졌지만 그래도 인간 대 인간의 관계라면 미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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