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랄 리포트 춘자 _ 05 초대

in #stimcity4 years ago


며칠 동안 한껏 들뜬 기분으로 지냈다. 유체이탈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은 부분에서 일치한다는 사실 덕분에 나의 경험을 더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당황하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유체가 몸으로 다시 복귀하게 되므로 자연스럽고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나의 첫 번째 이탈을 떠올렸다. 무척 당황했고, '이게 뭐지?' 하는 순간 몸으로 돌아왔다. 룰렛 테이블처럼 회전하던 느낌도, 무언가에 의해 몸이 끌어당겨지던 느낌도, 내가 내 몸을 '빠져나왔다'라는 느낌도, 모두 처음이었다. 처음이었지만 늘 상상해왔던 장면이다. 지난 몇 년 진동이 찾아올 때마다 영혼, 유체, 에너지든 뭐든 물질이 아닌 '내'가 몸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을 떠올리며 '그것'에게 나가라고 나가라고 마음으로 소리치곤 했으니까. 그것은 얄밉게도 나갈 듯 나가지 않았다. 그럴수록 선명한 진동의 느낌만 익숙해졌고 한동안 몹시 답답한 시간을 보냈다.

룰렛 테이블 회전 이후의 이탈을 첫 번째 이탈이라 여겼지만, 사실 이미 오래전에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다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나 옷걸이에 걸린 교복 와이셔츠와 치마를 입었는데 다시 침대에 누운 채로 눈을 뜬 것이다. 꿈이구나 여기고 다시 일어나 교복 와이셔츠를 입었다. 그리고 또 침대에서 눈을 떴다. 정말 기이한 경험이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유체이탈의 개념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무엇보다 매일 아침이 피로한 수험생이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때는 꿈을 정말 어마어마하게 꾸었다. 잠에서 깨어나도 꿈의 내용이 선명하게 기억나 꿈일기를 열심히 쓰던 시절이다. 꿈속의 꿈이나 이어지는 꿈을 꾸거나 아주 가끔은 꿈속에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차리기도 했다. 그래서 잠에서 깨어 교복을 입는 일을 반복했던 그 경험도 '꿈 속의 꿈' 같은 것이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꿈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최초의 이탈이 아니었을까.


다음에 다시 몸을 빠져나오게 된다면 어디에 가보고 싶은지,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 무엇을 알고 싶은지 미리 생각해두기로 했다.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세 가지가 떠올랐다. 꿈에서 자꾸만 나를 부르는 붉은 장미의 섬에 가보는 것, 라다크에서 카페를 하던 시절에 내가 만든 바나나 머핀을 가져간 미지의 존재, 그리고 어느 날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에서 점멸하는 가로등 불빛으로 간절했던 나의 질문에 대답해 온 존재를 확인하는 것.

인류는 미지의 존재들에 귀신, 영혼, 유령, 외계인, 요괴, 요정 등등 다양한 이름을 붙여 왔다.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내가 알아차릴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위에서 이야기했는데 나는 아직도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내가 느끼는 네가 있는 거지'라는 나오토의 한 문장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들은 가끔 당황스러우리만큼 물질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나의 세계에 실체로 존재하기도 했다. 내가 다시 유체이탈을 하게 된다면 확인하고 싶은 두 존재가 그랬다. 그 존재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의 세계에 등장했는지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10년 전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골 오지에 틀어박힌 라다크에서 카페를 하며 지냈던 시절이다. 어쩌다가 인도라는 나라에 열 번도 넘게 들락거리게 되었을까. 다니다 보니 그렇게 됐다. 영적 모험 같은 건 아니다. 인도를 찾는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요가나 레이키 같은 것에도 관심 없다. 다만, 히말라야 어딘가에 나의 전생, 혹은 전전생, 혹은 전전전생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신한다.

카페의 단골이었던 일본인 친구 - 공교롭게 다시 일본인 친구다 - 다이는 10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 중이었다. 다이의 어깨에 언제나 걸려 있는 주머니에는 크고 작은 피리가 열 개도 넘게 들어있었다. 그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언제 어디서든 피리를 불었고, 가끔 마야력을 뒤적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오늘의 운세 따위를 봐주는 괴짜였다. 우리는 매일 저녁 카페에 모여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는 지구 곳곳에서 만난 외계의 존재 혹은 다른 차원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다른 차원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그 존재들에 대해. 하루는 카페를 찾은 다이가 잔뜩 흥분하여 UFO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위로 아래로 좌로 우로 움직이며 알록달록 색깔을 바꾸는 밝은 빛을 보았고, 꼼짝도 하지 않고 그 빛을 지켜보는 동안 엄청나게 많은 별똥별이 떨어졌다고. 나는 UFO의 존재를 믿지만, 그 빛이 UFO에서 흘러나온 빛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늘과 가까운 고원의 라다크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밝은 빛을 내며 반짝이는 수많은 별과 하늘을 가르는 별똥별을 매일 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이는 외계의 존재들이 지구의 단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본 적 있다며 그들이 라다크의 살구를 먹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 분명하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정말로 외계의 존재들이 단맛을 좋아한다면 그들이 살구를 먹기 위해 라다크를 방문했다는 다이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들은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라다크의 살구는 기가 막히게 맛있으니까.

다이가 목격했다는 정체불명의 빛은 며칠 뒤 다시 나타났다. 다이가 묘사했던 대로 색을 바꾸고, 사방팔방으로 움직이는 그 빛은 카페 창밖으로 보이는 흙산 위에 두 번째 손가락 한 마디만큼 떨어져 떠올라 있었다. 분명 별도, 위성도 아니었다. 우리 모두 함께 모여 한동안 '그것'을 지켜보았다. 흥분한 다이는 구워 두었던 초콜릿 바나나 케이크를 가져오더니 급기야 갖고 있던 손전등을 꺼내 허공에 'WELCOME TO THE EARTH'라고 썼다.


"지구에 온 걸 환영해! 여기 너희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케이크가 있으니, 카페 두레를 방문해줘! 우리는 너희를 기다리고 있어!"


혼란스러웠다. 저 빛은 어디서 왔을까? 정말 UFO일까? 두눈을 비비며 의심하다가도 색을 바꾸며 움직이는 빛을 보면 저 미지의 존재가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엔 두 팔을 머리 위로 흔들며 우리를 방문해주길 진심으로 빌게 되었다. 북쪽 하늘 끝에서 남쪽 하늘 끝으로 기나긴 별똥별이 지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 사라져 버려서 '별똥별이었다'는 느낌만 남게 되는 별똥별이 아니라 그 움직임이 사진처럼 고스란히 눈에 담기는 그런 별똥별. 동그란 모양의 빨간색 빛이 회색의 긴 꼬리를 달고 떨어지기도 했다. 그것은 마법사가 던지는 파이어볼 같았다. 진지하게 나의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도 '파이어볼'에서는 하나같이 웃음을 터뜨리기 때문에, '파이어볼'이 아닌 다른 표현을 생각해 보았지만, 이것보다 더 정확하게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다. 그런 김에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그것은 분명 '파이어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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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님 ㅜㅠ!!! 유체이탈 경험이라니요! 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