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di A6 4.2 Quattro C6 2004

in #testdrive6 years ago

Audi strikes back!
by jin ([email protected])

필자가 아우디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중학생이었던 당시 차를 시승했을 리는 만무하고 단지 어느 모형 관련 책자에서 본 랠리 경주 사진이 전부였다. 네모나게 각진, 귀엽게 생긴 차가 전면에 동그란 링을 네 개 달고 달리고 있었다. 어린 생각에 아 이건 아마 올림픽 공식 차량이겠구나 싶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올림픽 종목에 카 레이싱이 있을리가 없고 게다가 결정적으로 올림픽 엠블렘이라고 보기엔 링이 하나 부족했다. 대체 이 차의 정체는 무엇일까 고민을 하다 보니 결국 지금까지 접했던 현존하는 모든 차량 브랜드 로고 중에 가장 그 첫 인상이 강하게 남은 경우가 되어버렸다.

아우디의 로고인 4개의 원에 대한 스토리는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필자마저도 올림픽 공식 차량이 아닐까 하는 오해가 있었을 정도였으니. 가장 많이 오해되고 있는 것이 바로 아우디의 상징, 4륜 구동 콰트로(quattro)를 나타낸 것이라는 주장이다. 동그란 바퀴가 네 개 그려져 있으니 당위성도 충분하고 설득력도 높다. 네 바퀴가 동시에 구동되는 콰트로는 BMW의 실키식스 직렬 6기통, 혼다의 VTEC, 마츠다의 로터리 등과 같이 메이커의 핵심 기술로 아우디의 엠블렘으로서 충분히 의미가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독일 의전 차량을 벤츠에서 아우디로 교체한 슈뢰더 총리의 4번의 결혼 경력을 빗대어 4개의 결혼 반지라는 조크도 있다. 물론 전부 사실이 아니다.

아우디의 엠블렘은 메이커 탄생 스토리 그 자체이다. 아우디는 원래 독일의 4개 군소 업체가 연합한 형태로 반더러(Wanderer), 호르히 (Horch), 데카베(DKW), 그리고 아우디(Audi)가 연합해 1932년 설립된 아우토 유니온(Auto Union)이라는 회사가 그 원형이다. 이 아우토 유니온은 후에 메르세데스 벤츠를 거쳐 폴크스바겐에 흡수되면서 현재의 아우디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4개의 원으로 구성된 아우디의 엠블렘은 아우토 유니온 시절 부터 사용된 것이고 당연하겠지만 연합된 4개의 군소 업체를 상징한다. 이것이 현재의 자동차 기술을 선도하는 아우디의 역사이자 아우디 엠블렘의 역사인 것이다. 아우토 유니온과 함께 만들어진 4개의 원 엠블렘은 1932년에 고안되었지만 아우디의 또 하나의 상징, 콰트로 시스템은 1975년부터 개발에 착수해 1980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였으니 콰트로의 탄생을 미리 예견한 선견적인 형태인지도 모르겠다.

아우토 유니온은 1964년 폴크스바겐에 합병되어 아우디라는, 현재까지 사용하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아우디 72 모델을 시작으로 숫자로만 구성된 아우디 특유의 라인업을 갖게 되었다. 아우디 80과 아우디 100은 아직 한국에서도 많은 수가 돌아다니며 현재의 아우디 명성의 기초가 되었다. A로 시작하는 현재의 라인업은 1994년, 전면적으로 단행된 모델 체인지부터 시작되었고 소형차인 A2부터 기함인 A8까지 다양한 모델 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그 중 A4, A6, A8, TT, RS6, Allroad Quattro 등이 수입되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 효성 시절에는 A3도 소량 수입되었지만 현재는 라인업에서는 제외되어 있다)

최근 풀 모델 체인지 되어 국내에 수입되는 신형 A6는 엔진 배기량에 따라 2.4, 3.0, 그리고 4.2가 있는데 얼리어답터에서는 그 중 최상위 모델인 4.2 콰트로를 시승해보았다.

A6 4.2 Quattro

아우디를 얘기할 때 위에서도 언급했듯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콰트로다. 볼보에는 유명한 광고인 세븐업 (볼보 7대를 위로 쌓아 올린 사진) 이 있다면 아우디에는 눈 덮인 스키 슬로프를 거꾸로 달려 올라가는 유명한 TV 광고가 있다. 그것이 바로 콰트로 시스템이다. 콰트로는 현재의 풀타임 4륜구동의 구조를 70년대 당시 완성시켰는데 콰트로의 핵심이 된 센터 디퍼런셜 채용은 당시에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아우디의 4륜구동은 기본적으로 포장 도로에서의 안정성을 위한 시스템이 그 특징으로 트럭 등 비포장 험로를 위한 4륜구동과는 그 접근 방식이 조금 다르다. 기본적으로 차량의 움직임은 차와 노면의 접점인 타이어의 접지면에서 결정된다. 아무리 우수하고 뛰어난 차라고 해도 네 바퀴가 바닥에 붙어있다는 기본적인 조건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타이어와 노면이 얼마나 잘 붙어있는지 결정하는 접지력은 기본적으로 트랙션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 운동 방향의 트랙션은 가속이나 감속 이외에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냥 타력으로 굴러가는 바퀴는 이론적으로 트랙션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4륜구동은 네 바퀴가 지속적으로 엔진의 파워를 물려받아 노면으로 전달하므로 항상 골고루 트랙션이 생겨 바로 안전성으로 연결된다. 두 바퀴만 굴리는 다른 차들에 비해 트랙션을 2배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잘 포장된 고른 노면을 달릴 때도 2륜구동과는 확실한 성능차이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우디는 이런 탁월한 4륜구동 시스템을 이미 20년 이상 전에 완성시켜놓고도 아직 SUV 모델이 없다는 것인데 콰트로는 험로가 아닌, 일반 도로를 위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대신 미국의 SUV 붐에는 A6 Avant (스테이션 웨건)의 차고를 높이고 몇가지 옵션을 새로 설정해 올로드 콰트로 (Allroad Quattro) 라는 모델로 대응하고 있다. BMW나 메르세데스 벤츠에서는 최근에야 xi나 4matic 등으로 세단에 4륜구동 옵션을 추가한 것을 보면 아우디가 얼마나 앞서가는 기술을 소유한 메이커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아우디의 라인업 중 콰트로가 아닌 모델은 전륜(前輪)구동으로 설정이 되어있다. 물론 이번에 시승한 A6 4.2모델은 콰트로 채택 사양이다.

아우디의 대표적인 기술은 콰트로 이외에 엔진의 5밸브 시스템도 있다. 4행정 엔진 기술의 핵심은 밸브 시스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BMW의 밸브트로닉, 혼다의 VTEC, 토요타의 VVT, 스즈키의 VC, 전부 엔진 밸브 시스템을 발전시켜 하나의 기술 브랜드로 만들어버린 경우다. 아우디는 실린더 당 5개의 밸브를 배치해서 (흡기 3개, 배기 2개) 그 효율을 극대화시켰다. 물론 밸브가 많을 수록 무조건 더 우수하다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흡기량을 높이기 위해 밸브개방면적의 합계를 키우는 의미로서의 5밸브는 옳지만 더 많은 밸브를 한정된 공간에 넣기 위해선 밸브의 크기가 작아질 수 밖에 없으니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밸브 5개를 하나의 실린더에 넣는 것은 상당한 기술이 요구되고 실제로 양산 엔진으로 구현해 출시하는 메이커는 아우디, 페라리, 그리고 야마하 정도 밖에 없다. 굳이 5밸브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엔진에 대해서는 하나 같이 일가견이 있는 메이커들이다.

A6는 과거 아우디 100의 계승 모델이다. 1977년 첫 발표된 아우디 100은 후륜 구동 일색이었던 독일 중형차 시장에 전륜(前輪) 구동이라는 새로운 컨셉을 불러일으켰다. 이 아우디 100은 1994년 A6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페이스리프트가 단행되었고 이어서 1997년 풀 모델 체인지 된 아우디 A6는 그 혁신적인 디자인, 특히 어느 외계에서 갑자기 날아온 듯한 뒷모습은 자동차 관계자들은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화제가 되었다. 사실 그 이전까지의 아우디는 독일의 벤츠나 BMW에 비해 한 단계 아래로 평가 받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나 이 A6의 완성도와 성능, 그리고 마무리는 경쟁자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고 현재는 독일의 3대 프리미엄 브랜드로 그 가치를 충분히 확립하고 있다. 기함인 A8와 가장 많이 팔리는 효자 모델 A4 사이에서 아우디의 간판 스타의 역할을 부족함 없이 해내고 있다.

그 A6가 이전의 완성도와 성능을 한층 숙성시켜 날로 치열해지는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에서 다시 한번 풀 모델 체인지 되어 새롭게 발표되었다. 새로운 A6로 아우디는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 것일까.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의 두 거대 메이커와 사활을 건 싸움에서 아우디는 또 어떤 생각과 기대로 A6를 내민 것일까. A6를 타보면 어느 정도 그 의중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마음에 아우디의 시동 키를 받아 들었다.

Exterior

아우디는 요즘 세계적인 추세인 "패밀리룩"을 어찌 보면 필요 이상으로 과다하게 실현하고 있는 대표적인 브랜드이다. 필자는 자동차에 대해 관심이 매우 높다. 새로운 차만 보이면 오래지 않아 그 선이 머릿속에 각인이 된다. 이제는 트렁크 리드나 C필러, 혹은 범퍼의 한 귀퉁이만 봐도 브랜드와 모델, 심지어 그레이드까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전 아우디 A4와 A6의 얼굴은 정말 구별하기 힘들다. 물론 수초 이상 보고 있으면 구별은 가능하지만 지나가는 길에 휙 한번 보며 눈에 남은 잔상을 바탕으로는 A4인지 A6인지 도저히 그 단서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A4와 A6의 급의 차이는 거대하다. 그런데 한눈에 구별을 못 한다면 상대적으로 A6의 오너가 섭섭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이번에 풀 모델 체인지 된 A6도 그 전통인 패밀리룩을 그대로 계승한다. 계승한 정도가 아니라 이번엔 완전히 새로운 패밀리룩의 컨셉을 만들어 전 라인업에 강하게 적용시켰다. 이전의 아우디 모습이 단정하고 비교적 평범한 얼굴의 패밀리룩이었다면 이번에는 BMW의 키드니그릴에 뒤지지 않을 수준의 강렬한 디자인 오브제를 가지고 나왔다.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역 사다리꼴의 입이 생겼다고 하면 될까. 전면에 커다랗게 하나의 그릴을 만들고 그 가운데 수평 라인을 넣어 그 곳에 번호판이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독일 식의 가늘고 긴 번호판이 제일 잘 어울리게 디자인되어 있지만 한국식 번호판을 붙여도 라디에이터 그릴을 많이 가리지는 않는다. 이 거대한 그릴은 A3, A4, A6, 그리고 A8 뿐 아니라 아우디의 바우하우스 로드스터, TT에까지 적용된다. 이 그릴은 워낙 그 인상이 강렬해 좋고 싫음이 나눠질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글쎄, 조금 더 두고 봐야겠다.

워낙 전면 그릴의 인상이 강해 다른 부분은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비교적 단정한 헤드라이트는 선대 A6의 모습을 계승하고 있고 완만한 부메랑 같은 루프 라인을 포함한 아우디 특유의 사이드 라인도 여전하다. 얼굴과 꼬리를 가리고 몸통만 남겨도 여전히 A6임을 충분히 알아챌 수 있을 정도. 뒷면은 오히려 선대의 A6 보다 얌전해졌다. 단정해진 디자인이지만 그 선의 수가 깊고 절묘한 처리가 많아 쉽게 질리지는 않을 디자인이다. 처음에 보기엔 괴롭다가 점점 익숙해지는 선이 많은 요즘의 자동차 디자인에서 이렇게 첫눈에도 즐겁고 봐도 봐도 질리지 않을 듯한 디자인은 유난히 그 빛을 발한다.

선대의 A6에 비해 그 볼륨이 많이 불어난 느낌이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이건 A8이라고 주장해도 먹힐만한 크기가 되었다. 실제로 수치를 살펴보니 전장, 전폭, 휠베이스가 모두 대폭 늘어났다. 특히 전장 (앞뒤 길이)은 자그마치 12cm나 더 길어졌다. 학생들 필통에 넣고 다니는 플라스틱 자 만큼 길어진 것인데 이 차이는 체감적으로 훨씬 길게 느껴진다. 이렇게 차체가 계속 커지는 유행은 개인적으로 그다지 달갑지 않다. 주차가 힘들어지는 그런 단순한 이유 이외에도 현재의 기술은 작은 차체로도 얼마든지 그 실내 사이즈와 안정성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차가 계속 커지는 이유는 "큰 차=좋은 차" 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소비자들의 인식 때문이 아닐까. 그걸 의식해서인지 현행 아우디 A6는 라이벌인 BMW의 5시리즈나 메르세데스 벤츠의 E클래스보다 월등히 길다. "기술의 아우디"라고 불릴 정도로 엔지니어링 기술로 승부하는 아우디가 꼭 이럴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Interior

실내로 들어가보자. 이전에 시승했던 선대의 A6가 검고 차분한 인테리어였던 기억에 비해 새로운 A6의 인테리어는 많이 밝아지고 경쾌해졌다. 전체적인 톤을 밝고 화사한 느낌으로 이끌어가고 시트는 오렌지 색에 가까운 밝은 갈색이다. 센터 페시아도 대칭이 아닌, 운전석 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BMW 컨셉을 많이 닮아가고 있다. 이 비대칭적인 디자인으로 인해 운전석에서의 느낌과 조수석에서의 디자인 느낌이 많은 차이를 보인다.

가장 눈에 뜨이는 부분은 역시 새롭게 도입된 MMI (Multi Media Interface). 운전을 제외한 다른 기능 들을 하나의 다이얼을 중심으로 컨트롤하는 이 MMI는 BMW의 새로운 아이덴티티 중 하나인 iDrive의 아우디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 컨셉이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iDrive는 다이얼 하나와 메뉴 버튼 하나로 모든 기능을 다 커버하는데 비해 이 MMI는 다이얼 이외에도 주위에 무수히 많은 버튼이 포진하고 있다. 일단 혁신적인 면에서는 수많은 버튼 군을 최소한으로 압축시켜 없애버린 iDrive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iDrive는 상대적으로 그 직관적이지 못한 인터페이스 덕에 많은 악평을 들었고 그 악평에 필자도 어느 정도 동조하는 바인데 MMI의 경우는 필요한 버튼을 충분히 밖으로 꺼내 배치한 덕에 조작은 상대적으로 매끄러웠다. 센터 페시아 상단에 설치되어 있는 7인치 컬러 LCD를 보면서 조절을 할 수 있는데 화면 전환도 재미있고 색상도 적절하고 다이얼의 움직임도 깔끔했다. iDrive는 그 커다란 크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손목에 무리가 올 수도 있는 형태인데 비해 MMI의 다이얼은 충분히 작다. 굳이 표현하자면 기존의 인터페이스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에 최대한 타협한 iDrive쯤 될까. 상단의 스크린은 MMI 기능 뿐 아니라 공조장치의 다이얼과도 연동되는 점이 의외였다. 온도를 맞추기 위해 다이얼을 돌리면 스크린에 순간 다이얼 이미지가 뜨면서 같이 돌아간다. 운전 중에 하단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1억이 넘는 차인데도 카 네비게이션 버튼을 누르면 장착이 되어있지 않다는 메시지는 당혹스럽다. 마찬가지로 전화 버튼도 작동을 하지 않으니 한국에 수입되는 차는 무조건 풀옵션이라 외국에 비해 비싸다는 수입 딜러의 주장이 무색해진다. 가장 재미있는 기능은 파킹 브레이크로 레버식도 아니고 페달식도 아닌, 작은 버튼 하나로 귀엽게 축소시켜 놓았다. 물론 토요타의 프리우스 등 버튼으로 파킹 브레이크를 제어하는 방식이 A6가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버튼의 형태와 위치와 작동 방식이 기존의 레버를 그대로 축소해놓은 인상이라 상당히 매력적이다. 파킹 버튼 위로는 엔진 스타트/스톱 버튼이 자리를 잡고 있다. 스마트 키의 채용으로 키레스고(Keyless-Go)가 가능하다.

계기판은 상당히 심플하다. 중앙의 빨간 디지털 클러스터는 아우디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다. 하지만 계기판이 붉은색에서 흰색 투과식 조명으로 바뀌었다. 아우디보다는 렉서스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을까. 큼직하고 시원시원한 배치와 디자인은 새로울 것은 없지만 깔끔해서 보기 좋다. 속도계는 280km/h까지 표기되어 있다. 곧 일반 세단에서 300km/h 풀 스케일 속도계를 볼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스티어링 휠은 사진에서 볼 때는 뭐랄까 미국스러운 운전기사 전용 디자인 같다는 느낌이었지만 직접 잡아보니 의외로 손에 착 달라붙는다. 부속된 다이얼과 버튼도 조작성이 우수하다. 특히 볼륨 조절이 버튼이 아니고 다이얼을 세로로 배치한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스티어링 휠 뒤쪽으로는 기어 변속이 가능한 패들 시프터가 보인다. 왼쪽 아래에는 조그맣게 크루즈 컨트롤 레버가 보인다. 스티어링 휠을 포함한 그 주위 디자인과 배치는 불만 없다.

운전석 시트는 메모리가 가능한 전동식을 채택하고 있고 조수석 역시 메모리가 가능하다. 좋은 점은 메모리 관련 버튼이 보기 좋게 도어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수의 시트 메모리 버튼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시트 측면에 위치해 늘 오작동을 야기하는 것에 비하면 매우 바람직한 배치라고 볼 수 있다. 와이프가 고생고생 최적의 위치로 맞춰 놓은 메모리를 남편이 원터치로 날려버리던 경우를 생각하면 상당히 주목되는 부분이다. 앞으로 많은 수의 메이커가 이런 컨셉을 도입하기를 희망해본다. 운전석 시트는 홀드보다는 안락을 위주로 설계된 느낌이다. 사이드 볼스터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기분 탓인지 시트의 폭이 약간 좁은 느낌이 들었다. 운전석 도어에는 뒷좌석에 아이가 탔을 때 도어 레버에 우선해 잠가버리는 버튼이 좌우로 따로 마련되어 있다. 예전에는 도어를 열고 안쪽에 내장된 스위치를 작동시켜 잠갔던 것에 비하면 세상은 참 좋아졌다. 도어를 열면 도어 사이드 위치에 알람 해제 버튼도 다소곳이 존재한다.

아우디의 선루프 조작 다이얼은 필자가 꼽는 최고의 선루프 조작 디자인이다. 다른 메이커의 선루프를 볼 때마다 아우디 칭찬이 입버릇이 되어버렸다. 원하는 위치까지 다이얼을 돌려 손을 떼면 그 다음엔 그 위치까지 자동적으로 선루프가 열린다. 닫을 때도 구형 라디오 끄듯 휙 돌리면 나머지는 알아서 닫힌다. 버튼을 계속 눌러야 하는 대다수의 썬루프 조작과는 그 인터페이스의 격차가 석기시대와 21세기의 차이만큼 느껴진다. 폴크스바겐도 비슷한 다이얼이 채용되어있지만 아우디의 경우 다이얼에 노브까지 내장되어 있어 썬루프 틸팅은 단순히 그 노브를 눌러 올리면 된다. 더 이상 직관적일 수 없다. 단연 최고다.

조수석의 콘솔박스 안에는 CD 체인저가 내장되어 있다. CD 체인저이면서도 매거진 방식이 아닌, 인대시 슬롯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점도 이채롭다. 매거진 방식이 아닌데 왜 콘솔박스 안쪽에 내장시켰을까 그 의도가 궁금해진다. 콘솔박스를 오픈할 수 있는 레버가 보이지 않아 한참 헤맸는데 센터페시아 상단 스크린 우측의 버튼을 누르니 자동으로 열렸다. 굳이 이렇게까지? 싶었던 부분이다.

뒷좌석은 넓고 안락하다. 하지만 기대만큼 좌우가 넓진 않았다. 도어측의 압박감이 약간 느껴지기도 했다. 팔걸이를 내리면 그 안에 응급키트와 컵홀더가 내장되어 있다. 스키스루 기능은 기본이다. B필러에 숨어있는 송풍구의 존재도 의외의 즐거움이었다. 그물로 처리된 시트 뒷면의 수납공간은 고속버스의 그것을 연상시켰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쪽을 더 선호한다. 뒷좌석 가운데 자리는 그 형태도 그렇고 차체 중앙을 가로지르는 센터 샤프트의 존재로 인해 높게 튀어나와 그다지 편하지는 않을 듯하다. 도어에는 햇빛 가리개가 내장되어 있다. 천정에는 독서등이 준비되어 있는데 독서등 부분의 천정이 살짝 들어가 있고 그 각도가 절묘해 뒷좌석에서 독서등을 켜도 그 빛이 리어뷰 미러를 통해 드라이버에게 도달하지 않도록 되어있다. 아우디의 숨겨진 나이스 플레이.

트렁크는 아우디/폴크스바겐 전통답게 넓고 튀어나온 부분이 없는 박스형태라 활용도도 높다. 바닥의 커버를 들어올리면 스페어 타이어와 배터리가 노출된다. 6대4로 폴딩되는 뒷좌석을 접으면 정말 대단할 정도로 넓은 대지가 펼쳐진다. 아우디와 폴크스바겐의 트렁크는 언제 봐도 눈이 시원해져서 즐겁다.

깨어나라! V8 4.2 아우디 가솔린 엔진

4.2 리터, 정확히는 4,172cc의 광대한 용적을 가진 엔진. 필자가 평소에 타고 다니는 엔진 크기의 두 배가 훨씬 넘는다. 엔진이 4리터가 넘으면 6기통으로는 기통 당 적정 배기량이 넘어버리기에 V8을 채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예전에 시승했던 닷지 바이퍼에 비하면 반 밖에 안 되는 배기량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4.2리터보다 더 놀라운 숫자를 보자. 이 V8엔진은 최고 마력이 자그마치 335hp/6,500rpm, 토크는 43.9kgm/3,500rpm에 달한다. 예전 같으면 슈퍼카에서나 볼 수 있는 레벨의 숫자. 이 흥분되는 수치의 V8 엔진은 2톤에 육박하는 아우디의 스틸제 모노코크 바디를 무리 없이 움직여준다.

시동을 걸자 슈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계기판의 라이트가 화려하게 점등되면서 달릴 준비가 완료된다. 적당한 그립의 변속 레버를 D로 옮기고 액셀을 살짝 밟으며 적응을 시작한다. 초저속 영역은 대배기량 엔진답게 미끄러지듯 달린다. 이런 저속 영역에서의 듬직한 토크감은 터보에서도, 슈퍼차저에서도, 하이캠에서도 느낄 수 없는 대배기량 엔진만의 특권이다. 이왕 4.2리터 엔진을 가지고 노는 만큼 넉넉하고 우아한 드라이빙을 즐기고 싶지만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오른발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시내 주행 감각은 예상에서 많이 벗어난다. 사실 아우디의 엔진은 그 배기량에 비해 체감 파워가 낮은 편이다. 2.0 엔진도 3.0 엔진도 비슷했다. 예전 A6 3.0Q를 시승할 때 파란 신호등에서의 답답한 출발을 떠올리게 한다. 이 4.2 엔진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감속이 잦은 시내 저속 주행에서 느낄 수 있는 엔진의 감성 품질은 기대 이하였다. 토크도 예상만큼 느껴지지 않고 RPM 상승도 뭔가 힘들다. 게다가 엔진도 아우디 특유의 쇄애액 하는 노인네 숨소리까지 어울려 다이나믹한 주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엔진이 고속 중시로 셋팅된 탓일까 아니면 기어비가 문제일까. 아니면 8기통과 콰트로의 조합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체감 파워라는건 실린더 내에서 폭발되는 힘이 분산될 수록 그만큼 덜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동일한 배기량으로 4기통과 6기통 엔진을 만들면 체감 파워는 4기통 쪽이 월등하다. 이론 상으로 단기통이 되면 그 체감 파워의 막강함은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실린더 당 허용되는 배기량이 존재하므로 그건 불가능하다. 대신 2륜의 세계에서는 350cc 단기통 엔진이 존재하는데 그 체감 파워는 단연 압권이다. 이륜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는 일본에서는 이런 이유로 단기통 엔진 매니아 층도 상당이 두터운 편이다. 엔진뿐 아니라 구동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동일한 파워로 2륜을 굴릴 때와 4륜을 굴릴 때와 체감적인 파워의 차가 존재한다. 4륜으로 구동을 나눠주면서 손실되는 파워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부드러운 상급 살룬은 다기통을 채택하는게 상식이다. 가까운 예로 한국에 수입되는 렉서스 IS200의 일본 모델인 토요타 알텟자는 같은 2리터 엔진에 4기통과 6기통의 라인업이 존재하고 4기통은 스포츠 드라이빙 중시, 6기통은 부드러운 주행으로 그 성격이 확연하게 나뉘어져 있다. 이번에 시승한 아우디 A6 4.2는 시내 주행에서의 다이나믹한 주행 감각과 체감 파워는 최근 시승했던 혼다 어코드 3.0에도 못 미친다. 그렇다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상급 살룬 성격의 엔진이라고 보기엔 캐빈으로 유입되는 엔진 소음이 필요 이상으로 크다. 가벼운 가속에도 뒷좌석의 승객은 쇄애액하는 특유의 엔진 사운드를 느낄 수 있는 정도. 대신 스티어링 휠은 충분히 가볍고 부드러워 차선 변경이나 교차로 회전은 매우 매끄러웠다. 스티어링 휠에 잔진동이 느껴지는 것은 전륜을 구동하는 구조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 서스펜션 감각도 조금 수상했다. 고급 대형 세단의 승차감으로 보기엔 한참 못 미친다. 물론 그렇다고 하드코어 스포츠카 처럼 단단한 셋팅도 아니다. 조금 폄하해서 표현하자면 그냥 국산 중형차 수준이랄까. 이래저래 의문이 많았던 시내 주행 감각이었다.

시내 주행이 이렇게 재미가 없으니 쭉 뻗은 길로 나가보자 라는 생각에 방향을 돌렸다. 길이 뚫려 풀 스로틀을 하자 그제서야 엔진은 이때를 기다렸습니다 주인님 세 번 복창하며 굉음과 함께 100미터 앞 시선으로 무섭게 빨려간다. 쇄애액 답답했던 엔진 사운드는 어느새 살짝 가르르르 단락음이 섞인 고성능 스포츠카 사운드로 변신하고 그저 무겁기만 했던 바디는 묵직한 안정감으로 다가왔으며 애매했던 서스펜션은 그새 어디로 갔을까 싶을 정도로 그 불쾌한 존재감이 사라졌다. 끈적하게 답답했던 콰트로 시스템도 본령의 세계에 발을 딛었다는 듯 타이어 주위 반경 5미터 아스팔트를 전부 빨아들여 트랙션을 잡아주며 그야말로 바닥에 넙죽 붙어버렸다. 최대토크가 나오는 RPM이 분명 3,500 근방이었는데 오히려 5,000 이상을 돌려줘야 그제서야 제 파워가 나오는 느낌이다. 회전도 매끄러워지고 엔진 반응도 제대로 돌아온다. 달리면서 감동하며 한편으론 갸웃거린다. 정말 4.2리터 대배기량에 맞는 셋팅인가? 싶은 의문. 파워가 나오는 5천부터 6천 후반에서 시작되는 레드존 (나중에 제원을 살펴보니 6800이었다) 까지의 영역이 좁은 편이고 매뉴얼이 아닌 팁트로닉 오토매틱이라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아서 그 영역을 유지하며 달리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차들도 많아 속도를 충분히 내보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이 차를 제대로 즐기려면 심야에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속도위반 고지서 대여섯 장 각오하고 달려야겠다. 120km/h가 넘어가자 그제서야 따로 놀던 차의 모든 부품이 의식을 하나로 통일해 앞으로 질주하는 느낌이었다. 시내 주행의 실망을 덮어버리고도 남을 수준의 주행 성능. 100km/h에서의 정속 주행에서는 1,800rpm 정도로 대배기량 다운 낮은 기어비를 보여주는데 항속 주행시에는 시내에 비해 엔진 소음이 줄어드는 듯도 하다. 하지만 정지 가속은 그다지 좋지 못한 편이다. 6단 오토매틱이라 충분히 촘촘한 변속비로 짧게 짧게 끊어 올리는 가속감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롱기어의 느낌이 강했다. 물론 대배기량의 파워로 실제 수치 상의 가속은 좋겠지만 체감적으로 짜릿한 가속감을 맛보기에는 정지가속이 아닌, 고속 주행 중의 가속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와인딩으로 들어선다. ESP를 끌까말까 사실 와인딩을 앞둔 고속 순항 중에 계속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본인 소유의 차도 아니고 시승차인데다 동승자도 있고 43.9kgm이라는 거대한 토크를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것은 솔직히 필자 실력으로는 무리라고 판단, ESP 작동 상태로 와인딩 테스트를 했다. 이 A6의 차량 중량은 2톤에 육박한다. 전장은 5미터 가까이에 휠베이스도 3미터에 조금 못 미치는, 그야말로 거대한 바디가 와인딩에서 과연 어떤 움직임을 보여줄지 호기심에 두근거리며 첫 번째 코너로 차를 밀어붙였다.

스티어링은 뉴트럴에 가깝다. 물론 코너에서 액셀을 밟으면 타이어 스킬음과 함께 네 바퀴가 같이 미끄러져 아웃으로 벗어나며 언더 성향을 조금 보여주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옳은 설정이다. 이런 한계 상황에서 오버 성향을 보여주면 다급해진 드라이버는 카운터 스티어를 습관적으로 치는데 그렇게 되면 4륜 구동의 경우 자세가 바로 잡히긴 커녕 바로 아웃으로 차가 가버린다. 매우 위험해지므로 이런 뉴트럴에 약간 언더를 보여주는 셋팅은 4륜 구동에 있어 정답에 가깝다. 일단 RPM을 올리고 가감속을 하니 시내 주행에서 답답했던 느낌은 많이 사라지고 엔진 사운드도 다시 스포츠카의 그것으로 바뀐다. 묵직한 바디를 적당히 여유를 두고 코너에서 던지면 예상과 거의 오차가 없는 정직한 액션을 보여준다. 콰트로 + ESP + 고출력이라는 필자의 심리적인 자제심까지 동원되었으니 코너에서의 안정감은 그야말로 발군이었다. 중미산 정상까지 올라가며 코너마다 타이어 스킬음은 계속되었지만 심리적으로 최근 시승 중에 가장 편안한 와인딩이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재미가 없었다는 얘기도 되겠고 즐기기 위해서는 ESP도 끄고 좀 더 저돌적으로 밀어붙여야겠지만 사실 거기까지는 자신이 없는… 그런 조금 복잡한 심경 속의 와인딩 시승이었다.

와인딩에서 감동을 받았던 부분은 오히려 팁트로닉 오토매틱 쪽이었다. 필자는 아직 패들 시프터가 익숙하지 않다. 스티어링 휠을 돌릴 때 패들도 같이 돌아가니 그 위치 존재에 대한 잠재 의식 속의 신뢰감도 낮은 편이고 왼쪽과 오른쪽 중에 어느 쪽에 업이고 다운인지 한계 상황에서 간혹 헷갈려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뉴얼을 선호하고 어쩔 수 없이 오토매틱이라면 패들보다는 차라리 시프트 기어로 단수를 조절하는 편을 선호한다. 일반적으로 토크 컨버터가 내장된 오토매틱의 매뉴얼 시프팅의 경우, 시프트 업은 무리가 없지만 시프트 다운은 어느 정도 충격을 동반한다. 매뉴얼이야 힐앤토를 이용해 브레이킹을 잡으며 속도를 늦추고 시프트 다운을 하면서 액셀로 회전수를 그만큼 보정해주면 매끄러운 변속이 가능하지만 오토매틱은 그 일련의 과정을 인위적으로 부드럽게 처리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오토매틱으로 감속 중에 시프트다운을 하면서 회전수를 맞추기 위해 액셀을 쳐주는 것은 왼발 브레이킹이 필요한데다 그 회전수 보정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우디 A6의 팁트로닉은 완벽했다. 시험 삼아 정속 주행 중에 아무 의미없이 시프트 다운을 해보니 RPM이 어느 한곳으로 한순간 정확히 움직이며 순식간에 변속을 완료한다. 충격이나 차체의 울컥거림도 없다. 모멘텀의 변화도 없다. 그저 엔진의 회전수만 바뀌었을 뿐이다. ZD사의 6단 변속기로 알고 있는데 그 완성도는 어쨌든 완벽했다. 다운시프팅 순간 RPM의 바늘이 마치 시계 초침처럼 딸깍 위로 흔들림도 없이 정확히 한번에 움직이는 모습은 이번 시승 중에 가장 감동이었던 순간이었다. 이 정도라면 굳이 전자식 클러치를 채용하지 않고 당분간 토크 컨버터를 더 발전시켜도 되겠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시승을 마치고

조금 애매한 설정이다. 과연 어떤 취향의 사람들이 이 A6 4.2Q를 선택하고 만족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머릿속이 뿌옇게 되어버린다. 크고 안락한 고급차를 선호하는 오너 드라이버에겐 적절하지 않다. 엔진도 시끄러운 편이고 시내에서는 4.2엔진 치고는 힘도 딸리고 게다가 승차감도 부드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외부 소음 차단도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그렇다고 스포츠 드라이빙을 원하는 젊은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일단 차가 너무 크고 무겁다. 길이 5미터에 무게 2톤이라면 스포츠카로서 실격에 가깝다. 시내에서 재빠르게 치고 나가기엔 엔진과 기어비 셋팅도 많이 빗나간다. 무엇보다도 1억이 넘는 가격은 아무나 선뜻 선택할 수 있는 선이 아니다. 그렇다고 운전사를 두는 회장님의 쇼퍼 드리븐 카로서는 뒷좌석의 안락감이 떨어진다. 승차감은 말할 것도 없다.

굳이 타겟을 잡는다면 고속도로에서 200km/h를 넘나드는 최고속 영역에서 막힘 없이 희열을 느끼고 싶은 오너 드라이버... 쯤 될까. 그 부분부터 막히기 시작한다. 독일이라면 법적으로 문제 없이 아우토반을 달리면 된다. 200km/h로 항속 주행하는 차 옆을 그 이상의 속도로 쏜살같이 추월하는 모습은 아우토반에서는 일상적이다. 한국에서는 민감한 부분이다. 그래도 미국보다는 낫다. 한국은 과속 카메라에 찍혀 스티커가 발부되어도 범칙금이 아니라 과태료로 넘어가면 벌점도 없고 돈 몇 만원이면 해결된다. 미국은 이렇게 달리다간 바로 경찰 헬리콥터 출동하고 영화에서나 보던 카 체이스가 시작되어 바로 영창으로 수감된다. 미국은 땅덩어리 넓어서 달리기 좋겠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오히려 한국이 더 달리기 좋다. 물론 불법이다. 이번 시승은 선대의 A6 3.0Q를 시승했을 때의 느낌과 사실 거의 다르지 않다. 아우디는 지금까지 많은 발전을 거듭했지만 고속 주행에 초점을 맞춘 달리기 컨셉은 지금까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차체도 커지고 옵션 사양도 많아지고 수많은 세부적인 칼날을 들이댔지만 시내에서 마음 편하게 달리기 위한 자동차로서는 사실 너무나 아까운 모델이다.

하지만 이런 자동차 철학을 고집스럽게 유지하는 아우디의 모습이 좋다. 조금 더 대중을 위한 차라면 아우디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고속주행에서 중저속주행으로 그 포인트를 옮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반대라면 모를까.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아우디는 더 이상 아우디가 아닌, 그냥 많은 수의 메이커 중 하나에 불과한 무채색의 브랜드가 될 것이다. 대중적인 모습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그들만의 철학을 관철시켜 나름대로의 마켓을 충실하게 형성해나가는 아우디의 모습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것이 바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다. 한국의 자동차 메이커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그 아이덴티티이기도 하다. 잔고장이 없고 값이 싸다는 장점은 앞으로 수년 내에 퇴색되어버린다.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한 것이다. 안전의 대명사 볼보는 지금은 다른 메이커도 안전성이 높아져 상대적인 변별력이 많이 사라졌지만 과거에 인정받은 월등한 안전성으로 지금도 그 막강한 아이덴티티는 여전히 존재하고 그것은 또 여전히 그들의 마케팅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오죽하면 영화 더 락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스탠리 굿스피드가 "나는 위험한걸 싫어해서 차도 볼보만 탄다." 라는 대사마저 있을까. 만약에 초고속 스피드의 항속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초고속이 좋아 아우디만 탄다." 라는 대사가 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바로 이런 것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인 것이다.

일본의 렉서스 브랜드 발표 이후로 전세계의 메이커는 많은 영향을 받았다. 심지어 미국의 빅쓰리 메이커 중 한 곳은 당시 중역에게 배당된 차를 전부 렉서스로 갈아치울 정도였다. 매일 타보면서 스스로 각성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조용하고 안락하고 잔고장이 없는 것이 바로 렉서스의 아이덴티티이고 그 아이덴티티는 현재 전세계의 취향 흐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컨슈머 리포트에서 늘 최고 점수를 받으며 그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아우디는 그런 렉서스의 약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설프게 흉내 내는 일 없이 그들만의 아이덴티티를 한치의 양보나 타협 없이 굳건하게 지속해나가고 있다. 그런 아우디의 고집스러운 철학이 그대로 녹아있는 A6. 아우디는 이번에도 아우디 매니아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그것이 A6를 통해 세상에 내놓는 그들만의 탄탄한 메시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