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을 비추는 한줄기 빛, 태백석탄박물관

in #tripsteem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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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다나스가 남기고 간 비는 주말 내내 태백 산간을 적셨습니다. 그러나 아랑곳 않고 그 비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태백을 즐겼습니다.

태백하면 석탄이 연상될 정도로 탄광이 많았던 지역이지요. 겨울이면 눈꽃축제가 열리는 태백산국립공원 입구 한 켠에 '태백석탄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석탄박물관은 석탄산업의 역사뿐아니라 광부의 노곤한 삶이 녹아 있는 곳이지요.

태풍 뒷끝이라 비바람이 세찹니다. 우산은 쓰나마나였지요. 흠뻑 젖은 바짓가랑이가 종아리에 척척 달라붙는 후줄근한 몰골로 박물관에 들어섰습니다. 날씨 탓인지 주말인데도 한산합니다. 안내부스에 앉아 있던 해설사가 벌떡 일어나 다가섭니다. 해설을 요청드렸지요. 막 외출하려던 참이라며, 2배속(?)으로 해설을 하겠답니다.

석탄박물관은 총 8개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전시실과 2전시실에서는 해설사로부터 지질과 석탄의 생성에 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지학'수업시간 때 들어 본듯한 전문 용어들이라 도통 낯설었습니다. 석탄 채굴 과정을 보여주는 3전시실부터 갱도 체험 공간인 8전시실까지는 해설사 도움없이 독학(?) 관람에 나섰죠.

열악한 작업환경과 고강도의 노동이 요구되는 갱내 채탄 과정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는 전시물을 보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석탄은 산업화의 원동력이었지요. 막장을 비추는 한줄기 빛에 의지해 작업열차에 올라 깊고 캄캄한 갱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던 광부들을 보았습니다. 이 분들이 바로 산업화 최일선에 선 '위대한 광부'들입니다.

광산촌에는 5대 금기(禁忌)가 있었습니다.
"광부가 출근할 때 여자가 앞질러 길을 건너지 않는다" "흉몽을 꾼 날은 출근을 삼가한다" "갱내에 살고 있는 쥐를 잡지 않는다" 도시락은 청색이나 홍색 보자기에 싸고 4주걱을 담지 않는다"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으면 특히 조심한다"
그만큼 붕괴사고가 잦아 사망재해율이 높았기에 매사 신경이 곤두섰던게지요.

"갱내에 살고 있는 쥐를 잡지 않는다"는 대목은 설명을 조금 덧붙이겠습니다.
광부와 쥐는 아주 절친이었답니다. 갱내에서 쥐를 발견하면 광부들은 안심하고 작업을 합니다. 갱내에 쥐가 살고 있다는 건 갱내 유해가스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죠. 또한 쥐는 영리해서 갱내 출수나 붕괴 사고를 예감해, 광부들은 쥐의 움직임을 보고 미리 대피하기도 한답니다.

갱도의 막다른 곳을 일러 '막장'이라고 하죠. 이는 사전적 의미입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 의미가 파생되어 '인간 말종'이나, 어떤 상황이나 사건이 엉망진창으로 치닫는 꼴 또는 '개판'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어처구니 없고 황당무계한 드라마를 '막장드라마'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석탄가루를 흡입해가며 극한 작업에 임했던 위대한 광부의 치열한 삶의 터전인 '막장'이 이처럼 왜곡되어 입에 오르내리는 건 정말 아닙니다.

3, 4 ,5, 6, 7전시실을 거치면서 막장,, 발파,, 낙반,, 붕락,, 출수,, 진폐,, 폐광 등등 무거운 용어를 되새기며 마지막 코스인 8전시실로 이동합니다. 8전시실은 체험갱도관입니다. 지하 800미터까지 내려가는 느낌이 나도록 연출된 체험 승강기를 탔습니다. 승강기에는 몇 미터 내려 가는지를 가리키는 숫자 불빛과 간헐적으로 진동을 주어 절로 긴장되더군요.

광산개발 초기부터 현재의 기계화된 채탄과정, 지하작업장 사무실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지시 모습, 여러 갱도의 유형 등과 갱내 사고 중 붕락사고의 모습을 여러 전시보조장비를 활용하여 실물에 가깝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광산의 위험성과 광산노동자들의 노고를 일반인들이 느낄 수 있도록 전시가 되어 있는 곳입니다. 광산작업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체험의 장이지요.

8전시장을 끝으로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120점의 암석류 그리고 운반과 관련된 기관차, 광차의 종류 및 대형 채탄, 채굴장비, 지하 채탄 막장까지 신선한 공기를 넣어주는 송풍기 등 광산에 필요한 기계장비가 전시 되어있는 야외전시장은 억수 비로 인해 안내 브로슈어로 대신했습니다.

雨中에 찾은 '태백석탄박물관' 소고(小考)였습니다.




막장을 비추는 한줄기 빛, 태백석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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