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다음 태백, '바람의 언덕' 올라 날궂이

in #tripsteem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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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산등성이에 서서 빗물에 온전히 몸을 맡겨 보세요. 정수리에 바운딩 된 빗물은 바닥으로 떨어져 서로 다른 반대편 비탈로 흘러내리지요. 세글자로 줄여 '분수령(分水嶺)'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물이나 사태가 발전하는 전환점 즉 고비를 비유적으로 이를때 자주 쓰는 표현이죠.
그렇다면 삼수령(三水嶺)은요?
백두대간 낙동정맥의 분기점이며 三江(한강·낙동강·오십천)의 발원지이기도 한 해발 920미터의 고갯마루 이름입니다. 마찬가지로 이곳 고갯마루에 떨어진 빗물이 북쪽으로 흘러 한강이 되어 서해로, 동쪽으로 흘러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이 되어 남해로 흘러듭니다. 다시말해 동해와 남해 그리고 서해를 이루는 분수령이 곧 삼수령이지요.

우의를 입은 관리소 직원이 다가와 묻습니다.
"바람의 언덕에 오르실 건가요?" "예~"
"차는 주차장에 두시고 걷거나 택시를 이용하세요" "왜요? 차가 올라 갈 수 없나요?"
"지금은 농번기(5월 1일~10월 31일)라 외부인 차량을 통제합니다. 고랭지채소 농부들을 위한 배려이죠. 걸어서 바람의 언덕까진 왕복 2시간 걸립니다."

비바람 부는 궂은 날이라 그런지 빈 택시 두어대가 대기하고 있더군요. 알고보니 대당 2만원에 바람의 언덕만 왕복하는 셔틀택시였습니다. 일행 여섯은 택시 2대에 분승하여 바람의 언덕을 향해 고도를 높였습니다. 택시는 엔진음을 거칠게 토하며 고불고불 산비탈 길을 힘겹게 오릅니다.
"어젠 승용차로 해발 1,300미터 만항재에 올랐고, 오늘은 택시로 해발 1,304미터 바람의 언덕을 접수하네요. 산 오르기 참 쉽네요"라는 일행 한 분의 말을, 소생은 이렇게 되받았습니다.
"해발 1,300미터를 발품을 팔지않고 택시로 오른다는 건 산에 대한 배신이지요.ㅎㅎ"

비탈진 배추밭 위로 비안개가 무시로 넘나드는 해발 1,250m의 매봉산 고랭지 배추밭은 초록카펫을 깔아놓은 듯 온통 초록초록한 모습으로 객을 맞이하는군요.
배추밭사이 'S'자 모양의 농로는 마치 백사(白蛇)가 꿈틀꿈틀 기어가는 형상입니다.

저 넓디넓은 배추밭 농사를 누가 지을까요? 택시기사 말씀, "젊은 인력은 없어요. 60~80대 할머니들이 다 키우지요. 고부랑 할머니가 40도의 경사진 밭고랑을 오가는 모습은 흔한 광경입니다. 쏟아지는 비도, 내리쬐는 햇살도 피할 수 없는 고된 작업장이랍니다"

얼마 전 강원도로 원정 밭일 나선 할머니들이 봉고차 전복으로 다수 희생된 안타까운 사고 소식이 잠시 떠올랐습니다. 이곳 매봉산자락에서 수확되는 배추는 얼추 6백만 포기라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나라의 그 해 배추 가격은 매봉산에서 정해진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렇게 비가 계속 내리면 배추가 물러져 못쓰게 되는데..." 택시기사가 혼잣말로 걱정을 하는 사이 택시는 산등성이에 멈춰 섰습니다.

거대 '바람개비'가 연신 쉬익~쉬익~ 소리를 내며 돕니다. 이곳이 바로 매봉산 '바람의 언덕'입니다. 또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네요. '배추의 언덕'이라고.

매봉산은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과 중동면의 경계에 있는 해발 1,268m의 산으로 백두대간의 함백산(1,573m)에서 서쪽으로 갈라지는 능선상의 최고봉입니다. 정상 일대 능선이 소잔등처럼 펑퍼짐해 일찌기 고랭지 배추밭으로 조성된 곳입니다.

'바람의 언덕'에 오른 일행 여섯은 매봉산 바람도 피해간다는 '장풍(掌風)놀이'로 날궂이 했습니다. 일행 중 한 분이 체내의 기를 끌어 모아 내지른 장풍에, 누군 허리가 꺾였다고도 했고, 또 누군 장파열이 의심된다고도 하더군요.ㅎ 택시기사를 산 정상에 모셔 놓은 채 뜬금없이 장풍놀이라니~ 아무튼 택시로 오른 매봉산 산행(?),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릴 것 같습니다.




하늘 다음 태백, '바람의 언덕' 올라 날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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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한가득 생기셧네요

네바퀴로 산에 오르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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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 감사합니다.
왕초보라 겨우 글과 사진 올리는 수준입니다.

배추의언덕이라 불러도 되겠네요..

그렇습니다, 제가 '배추의 언덕'이라 불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