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통제하던 시대 (The ages that controlled the technology)

in #understanding-society8 years ago (edited)

English Summary

Before Capitalism, every society controlled the technology because technology can make the society changed rapidly. In Chuang Tzu(莊子), the famous Chinese classic, there was a old man who refused to use a machine "Yongdure" which makes it easy to draw water from a well. I think it is not a simple episode but contains the ethics or taboo of old society who didn't want the rapid changes caused by adopting new technologies. I think those kind of resistances have some proper reasons because adopting new technologies cause the changes of production speed. The change of production speed makes the changes of division of labor within that community. And the changes of division of labor can make some members jobless for example. If the width of change is larger than the capacity of community to absorb the impact of changes, it can cause some distractions within the community or even make the community collapsed.

역사적으로 기술이 그 자신의 논리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기술이 그 자체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8~19세기 이후 즉 자본주의 시대 이후다. 그 이전까지 기술은 사회 혹은 국가의 통제 아래 있었다. 장자(莊子)의 천지편(天地篇)에는 우물물을 쉽고 빠르게 퍼내는 ‘용두레’라는 기계를 거부하는 노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자공(子貢)이 남쪽의 초(楚)나라를 유람하고 진(晉)나라로 돌아 오면서, 한수(漢水)의 남쪽을 지나다가 한 노인이 채소밭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땅에 굴을 파고 우물에 들어가 물동이를 안고 나와서는 밭에 물을 주고 있었다. 끙끙대며 몹시 힘을 들이고는 있었으나 그 효과는 적었다. 자공이 말했다.
" 하루에 백 고랑을 적실 수 있는 기계가 있습니다. 힘을 적게 들이고도 그 효과는 매우 큽니다. 노인장께서는 이를 쓰지 않으시렵니까?"
포자(圃者)가 고개를 들어 쳐다 보더니 말했다.
"어떻게?"
자공이 대답했다.
"나무를 깎아 만든 기계인데, 뒤는 무겁고 앞은 가볍게 합니다. 물을 뽑아 올리듯 끌어 올리는데, 그 빠르기가 끓어 넘치는 물 같습니다. 그 이름을 용두레라고 합니다"
포자는 불끈 낯빛을 붉혔다가 곧 웃으면서 말했다.
"내 우리 스승께 듣기로, 기계가 있으면 반드시 기계를 쓸 일이 생기고, 그런 일이 생기면 반드시 기계에 사로 잡히는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오. 그런 마음이 가슴속에 있게 되면 곧 순진결백한 마음이 없어지게 되고, 그것이 없어지면, 정신이나 본성의 작용이 안정을 잃게 되오. 정신과 본성이 안정되지 않은 자에게는, 도가 깃들이지 않는다고 하오. 내 이를 알지 못하여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쓰지 않는 것이오"
망연해진 자공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을 못했다. [장자(莊子) 외편(外編) - 천지편(天地篇)]

여기서 장자는 기계의 도입이 마음에 안정을 해치고 도가 깃들지 못하도록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문구 그대로 보자면 이것은 상당히 관념적인 표현이지만, 사실은 대단한 인문사회학적 통찰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고대의 문헌들이 그 시대에 사회학적-경제학적-인류학적 해석들을 그 시대의 담론으로 풀어낸 저작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즉 그것은 그 시대의 문제를 그 시대에 이해될 수 있는 언어 혹은 개념적 도구로 설명한 것이다. ‘도’란 그 시대에 어떤 바람직함, 삶의 지표, 우주의 운행 원리와 그 원리에 맞는 사물의 바람직한 질서 등을 포괄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그것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자면 인간 사회의 구조, 사물의 질서, 사물의 운행 법칙 등을 포괄하는 그 시대의 ‘과학’을 관통하는 개념이다. 이런 용어들을 관념적으로 해석할 경우 우리는 필연적으로 고대사회와 고대사회의 문헌들을 해석하는데 실패하고 만다.)

우물을 깃는 용두레란 기계를 도입할 경우 그 공간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무엇보다 단위 노동시간 당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특정 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체는 그 시대의 그 공동체가 만들어낸 어떤 생산 속도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생산 속도를 기준으로 한 공동체 내부에 노동분업이 이루어져 있다. 즉 그 공동체가 가진 총체적 기술 수준에 의해 틀지워진 어떤 생산 속도에 맞추어 공동체가 붕괴되거나 파괴되지 않을 수준으로 각자의 노동 역할이 배분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특정한 부분의 생산 속도가 비약적으로 증가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사회 전체의 노동 분업을 재조정해야하는 이슈가 생긴다. 노동 분업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은 기존에 작동하던 노동분업에 대한 사회의 암묵적 동의를 재조정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 공동체가 지금의 노동 분업에 대해 구성원 전체의 만족도가 높다면, 즉 지금의 노동 분업을 기준으로 공동체 내부에 노동의 분배나 생산물의 분배가 특정인에게 많이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을 정도로 균형적으로 배분되고 있다면, 노동분업의 재조정을 요구하는 기술의 발전을 그다지 달가와하지 않을 수 있다. 즉 공동체 내부에서 기술의 변화를 거부하거나 저항하는 경향이 생긴다. 그리고 이것은 공동체 내부에 일종의 ‘윤리’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저항은 충분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급격한 기술 발전은 공동체를 파괴하거나 해체시켜버리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자의 '용두레' 이야기는 기술 도입에 저항하는 사회의 한 단면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일화다.

기술의 변화는 사회 내부 운동 속도의 변화를 의미한다. 사회 내부 운동 속도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사회 내부의 질서를 변화시키고 이는 곧 사회 내부의 권력 관계를 변화시킨다. (커뮤니케이션 속도의 변화가 어떻게 사회의 속성을 변화시키는 지에 대해서는 필자가 쓴 [국가에서 마을로] 참조) 그러므로 기술의 변화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만이 아니라 권력자들에게도 엄청난 문제거리였다. 그래서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들은 대부분 기술을 사회 혹은 국가의 직접적인 통제 아래 두었다.

고대사회 혹은 국가가 기술의 발전을 주저하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제어했다는 증거는 곳곳에 널려있다. 중국의 기술과 문명을 니담은 중국 지배층이 기술의 발전을 직접적으로 통제했다고 증언한다. (조셉 니담 [중국의 과학과 기술] 참조) 조선 역시 기술쟁이들을 '중인' 계급으로 묶어 놓았다. 조선은 신분제를 통해 기술을 통제한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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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런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원래 책으로 쓰고 있던 글인데, 계속 단락별로 정리해서 올릴 예정입니다. 시간을 많이 내지 못해 이렇게 쓰는게 책 쓰는데도 더 효율적일 것 같네요. ^^

This might give some insight as to why the old man refused the technology.

https://steemit.com/anarchism/@apocaloptimisto/how-and-why-government-exists

Thanks for your link. I'll read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