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조 테이저건 사건’으로 본 경찰의 공무집행, 무엇이 문제일까?

in #vop6 years ago

노조·시민사회·인권단체 “정당한 노조활동 파악조차 없이 무리한 공무집행”

최근 발생한 경찰의 ‘택배노조 테이저건’ 사건과 관련해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과도한 공무집행”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노조는 경찰이 노사관계에서 파생된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업무방해”라는 주장만 받아들여 공무집행한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합리적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현장 경찰관의 합리적 판단 하에 집행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노조의 반발에도 경찰이 이같은 입장을 고수하는 이유는 최근 발생한 여러 사건으로 경찰관들의 안전 보장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지난 8일 난동신고로 출동한 故김선현 경감은 범인이 휘두르는 흉기에 찔려 순직했다. 만연한 주취 폭력 때문에 현장 경찰관이 고통을 호소하는 국민청원을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것도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난동자의 폭행 위협이 뚜렷한 상황과 택배 노조 노동자의 저항을 동일하게 보거나, 택배노조 건을 단순 공권력 침해사례로 바라보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노동자들에 대한 심각한 권리침해로 이어진다는 입장이다.

택배노조 조합원의 경우엔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비폭력적 방법으로 저항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시민사회는 아무 폭력도 행사하지 않고 아무도 위협하지 않은 노동자를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테이저건으로 제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해서 다산인권센터의 아샤 활동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드러난 영상자료와 입장 등을 토대로 판단되는 사실관계를 봤을 때, 그 상황이 테이저건을 사용할 만한 상황이었는지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 또 앞선 경찰의 직무집행 사례를 보면, 노동자들이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행하는 노조활동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된다.”

테이저 건 제압당한 조합원
“잡고만 있었다” 억울함 토로

18일 오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만난 전국택배연대노조 조합원 박경로씨는 “차 밑으로 들어가서 (차 하단부 프레임을) 꽉 잡고만 있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앞서 지난 7일 울산남부경찰서 신정지구대는 울산시 남구 달동 주공3단지 주차장에서 “내 배송물량을 돌려 달라”며 CJ대한통운의 대체배송을 저지하는 택배연대노조 조합원 박씨를 테이저건으로 제압했다.

당시 박씨는 CJ대한통운이 빼돌린 자신의 택배물량을 찾아 인근 터미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6월 30일 하루 경고파업 이후 회사가 노조 조합원들의 택배 물량을 모두 빼돌려 대체배송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박씨는 대체배송 중이던 사측 택배기사를 만났고, 동료 조합원들과 대체배송을 저지했다. 그러자 대체배송 택배기사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노조 조합원들을 연행한 것이다.

노조의 파업은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행하는 마지막 수단이다. 파업 중엔 임금이 나오지 않고 회사의 강경대응 등이 우려되기에 노동자에겐 특히 위험부담이 크다. 그런데 회사가 파업의 대응책으로 대체인력을 사용하면 파업이 아무 소용없게 된다. 이런 이유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선 ‘사용자는 쟁의행위 기간 중 그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 또는 대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노조는 박씨의 저지 행동이 정당한 항의행동이었다고 주장한다. 대체배송이 불법이고,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행동은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박씨에 따르면, 당시 그는 대체배송을 저지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현장 경찰관에게 충분히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업무방해”라는 대체배송 택배기사의 말만 듣고 조합원을 연행했다고 전했다.

상황이 억울했던 박씨는 대체배송 택배차량 밑으로 들어갔고, 차량 하단 프레임을 붙잡으며 버텼다. 그러자 3명의 경찰이 달라붙어 수갑을 채우고 강제로 끌어 당겼으며, 그래도 안 되자 박씨의 복부에 테이저건을 사용했다. 정신을 잃은 박씨는 차량 밑에서 끌려나왔다. 경찰은 박씨의 얼굴을 무릎으로 짓누른 채 수갑을 채웠다.

또 정신이 돌아온 박씨가 별 저항 없이 “내 발로 가겠다”고 말하자, 한 번 더 등에 테이저건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연행 과정에서 발길질이나, 경찰을 위협할만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개된 연행과정 영상에서도 박씨가 경찰을 위협하는 장면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적법한 직무집행” VS “폭력적 체포”

노조와 지역 시민사회가 울산 경찰의 택배노조 연행과정에 문제점을 지적하자, 경찰은 곧바로 입장을 내고 “과잉대응이라는 주장은 공권력에 대한 의도적인 무력화 시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사기를 저하하는 무책임한 주장을 자제해 달라”고 덧붙였다. 18일 울산경찰청 관계자는 “적법한 직무집행이었다는 입장은 변함없다”고 밝혔다.

경찰이 이같은 판단을 한 근거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10조의2(경찰장구의 사용)에 있다. 테이저건은 경찰무기가 아닌 경찰장구로 분류되는데, 관련법에는 ‘공무집행에 대해 항거할 경우,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그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합리적 판단’이라는 애매한 조항이 있긴 하지만, 현장 경찰관이 복합적으로 판단한 뒤 상황에 맞게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와 시민사회, 인권단체 관계자들의 생각은 크게 달랐다.

노조와 지역 시민사회는 “원청이 노동조합의 적법한 쟁의행위와 업무복귀를 방해하기 위해 실행하고 있는 불법대체배송에 대해 정당한 항의행위를 하고 있었다”며 “그러나 출동한 경찰관들은 그러한 사실에 대해 충분히 확인하지도 않은 채 폭력적인 방법으로 체포부터 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다산인권센터 아샤 활동가는 “얼마 전 경기지역 건설노조 집회 현장에서도 폭행신고가 들어오자, 경찰이 구체적인 정황과 상황파악 없이 현행범 체포하는 경우가 있었고, 1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며 “이런 사례들을 봤을 때, 노동자들이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행하는 노조활동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언론에서 주취자의 폭력 등을 언급하며 공권력 강화 필요성을 제기하지만, 단순히 ‘공권력 강화’로 이 문제를 풀어선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동안 과도한 공권력 행사로 인해 피해를 본 무고한 시민들도 많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시민사회는 경찰의 모호한 테이저건 사용 매뉴얼과 필요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관련해서 한 경찰 고위간부는 “경찰관 피해도 그렇고, 비슷한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음에 관련 교육을 확대시킬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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